한국사상(韓國思想) 사학(史學) : 영조의 딸 열녀 화순옹주의 삶과 죽음
분야
인문과학 > 동양철학
저자
박주 ( Joo Park )
발행기관
한국사상문화학회
간행물정보
한국사상과 문화 2012년, 제64권 201~234페이지(총34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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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본 연구는 열녀 화순옹주의 가례와 자살 그리고 부마 김한신의 가문과 인물됨에 대하여 재조명한 것이다. 화순옹주(1720-1758)는 영조의 둘째 딸이며 정빈 이씨(1694-1721) 소생이다. 2세 때 어머니 정빈 이씨가 세상을 떠났으며, 9세 때에는 한 살 위인 오라버니 효장세자(1719-1728)마저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는 13세 때 동갑인 경주 김씨 판돈녕 김흥경의 넷째 아들 김한신(1720-1758)과 결혼하였다. 김한신은 초간택에서부터 계속 첫 번째로 입장함으로써 사전에 부마로 내정되어 있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영조는 노론 김흥경과 혼인관계를 맺어 탕평기반을 구축하게 하였던 것이다. 간택이 끝난 지 한 달 정도 지나 김한신은 그의 집에서 관례를 치루고 뒤이어 월성위(月城尉)라는 부마의 작호가 내려졌다. 사람들은 말하기를 “어진 도위(都尉)와 착한 옹주”라고 했다. 그러나 김한신이 영조 34년(1758) 1월 4일에 39세의 나이에 갑자기 병사하자 화순옹주는 남편의 죽음을 지나치게 슬퍼하여 남편을 따라 죽기로 결심하고 스스로 음식을 끊었다. 이에 부친인 영조가 직접 찾아가서 위로하며 음식을 권하고 다시 장문의 편지를 보내 타이르기도 하였으나 끝내 옹주의 마음을 돌리지 못하였다. 결국 음식을 끊은지 14일만에 화순옹주는 자진하였다. 영조는 한 달 사이에 딸 화순옹주와 사위 김한신의 죽음으로 크나큰 슬픔의 고통을 받았다. 사관은 옹주의 절조를 극찬하였으며, 예조판서 이익정(李益炡)은 화순옹주의 정려를 청하였다. 영조는 자식으로서 늙은 아비의 말을 듣지 않고 먼저 죽었으니 정절은 있으나 불효라 하여 정려를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정려는 정조 때에 와서 세워졌다. 정조는 고모 화순옹주의 종사행동이 왕실에서는 처음으로 있는 열행이라며 극찬하였다. 정조 7년(1783)에 충청도 예산에 있는 화순옹주의 집 마을 어귀에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다. 월성위 김한신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키가 크고 용모가 준수하였다. 특히 글씨를 잘 쓰고 시문에 능했으며, 전각에도 뛰어났다. 그는 영조의 부마가 되었는데도 항상 겸손하고 검소하였다. 그가 39세의 나이로 병사하자 영조는 매우 슬퍼하며 정효(貞孝)라는 시호를 내려주었다. 그는 슬하에 자녀가 없어 맏형 한정(漢楨)의 셋째 아들 이주(이이柱)를 후사로 삼았다. 요컨대 화순옹주는 남편 김한신이 죽자 왕녀의 신분으로서 유일하게 남편의 뒤를 따라 자진을 했다. 어머니가 일찍 세상을 떠나 어머니 없이 자란 슬픔, 오라버니 효장세자의 죽음, 無子, 자신의 병약 등 외롭고 어려운 상황에서 화순옹주는 사랑하는 남편마저 갑자기 죽자 남편을 따라서 죽기를 결심하고 14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애통해하다가 끝내 순절하였던 것이다.
    영문초록
    This research inspects royal wedding ceremony, suicide of Hwa Sun(和順), who is the daughter of the King YeongJo, and her husband Kim Han Shin(金漢藎). Hwa Sun(1720-1758) was the second daughter of King YeongJo and the royal concubine Jeong Bin Lee(靖嬪 李氏). Hwa Sun was obedient, chaste and austere. She married Kim Han Shin at 13 years old and they were the same age. A son-in-law of the King YeongJo Kim Han Shin was ennobled and given the title of Wol Sung Wee(月城尉). But He suddenly died of an illness at the age of 39. Hwa Sun severely grieved at the death of her husband and decided to follow him by fasting. She died after 14 days not to take any food. Meanwhile, her father King YeongJo had tried to change her mind, but failed. King YeongJo also felt deep sorrow for the death of his daughter Hwa Sun and son-in-law Kim Han Shin in a month. A minister of government praised her faithfulness to her husband and asked the King YeongJo to raise the Red Gate Chung-rye(旌閭). King YeongJo did not allow the Red Gate Chung-rye, since she was an unfilial daughter although she had faithfulness. The Red Gate Chung-rye was built in King JeongJo Regime finally. Kim Han Shin was a great-grand father of Chu Sa Kim Jeong Hee(秋史 金正喜). A good writer and calligrapher Kim Han Shin was beloved by the King YeongJo. He was modest and austere, when he was a son-in-law of the king. Since he did not have a child, he adopted Kim Yi Joo(金이柱), the third son of his brother Kim Han Jeong(金漢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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