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의 동점(東漸)과 삼국시대 학술계의 몇 국면
분야
어문학 > 국문학
저자
정환국 ( Hwan Kuk Jung )
발행기관
민족문학사학회·민족문학사연구소
간행물정보
민족문학사연구 2012년, 제50권 43~76페이지(총34페이지)
파일형식
48801129.pdf [무료 PDF 뷰어 다운로드]
  • ※ 본 자료는 참고용 논문으로 수정 및 텍스트 복사가 되지 않습니다.
  • 구매가격
    7,400원
    적립금
    222원 (구매자료 3% 적립)
    이메일 발송  스크랩 하기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국문초록
    이 글은 삼국시대 학술계의 흐름과 그 국면을 조망하고자 기획하였다. 그 양상을 불교의 동점(東漸)에 따른 불학(佛學) 패러다임의 창출과 유학의 제도화에 따른 유학적 체계의 정립이라는 두 코드로 논의하였다. 대상 시기는 주로 7세기에서 10세기까지지만, 7세기 전후에 좀 더 집중하였다. 이때가 대개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이 정립되는 시점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문제는 향후 더 천착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주목한 지점은 불교의 전래와 고승(高僧)의 출현이다. 이 시기 고승들은 사상의 일대 착종이자 신조(新潮)였던 위진남북조시대의 학풍을 호흡하면서 ‘동아시아인’으로서 활발한 학적 교류의 주체였을 뿐만 아니라, 학술과 사상 방면에서 신라의 삼국통일에 밑돌을 놓았다. 따라서 이 고승들의 학적 역량은 초기 한국 학술사의 들머리에 놓인다. 그런데 이들 고승 중에는 출신이 육두품인 경우가 많았다. 한편 이때는 따로 유학(儒學)으로 출신한 육두품도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기 시작하는바, 중심 권력에서 밀려난 육두품 계열은 승려와 유학자로서 당대의 학술계를 정립한 주체가 되었다. 이후 일정 기간 불교계와 유교계, 승려와 육두품들은 지속적인 서학(西學)과 자국 내에서의 제도적 신장 등 제반조건의 성숙에 따라 상호 균형잡힌 학적체계를 이뤄나갔다. 그러다가 신라 하대로 넘어갈수록 유학파(儒學派)가 점점 우위에 서는 형국이다. 불학→ 불학·유학→ 유학의 궤적을 보여준다. 한편, 하대로 갈수록 학계는 유가계 육두품이 불가의 지식과 유가의 지식을 통섭, 길항하는 경향도 드러난다. 7세기 전에는 불가지식인이 유학을 통섭하는 양상이었다면, 9세기에 접어들어서는 유가지식인이 불학을 겸수하는 방향이었다. 이것이 삼국시대 학술사의 형성 및 자기 변모 내지 갱신의 과정이다. 이런 제반 양상을 동아시아의 지적 판도에 유의하여 학술문화의 시각에서 가늠해 본 것이다.
    영문초록
    This thesis views aspects and flow of academic circle in the Tree Kingdoms Period in two codes. One is the creation of Buddhist studies paradigm according to spreading to the East Asia of Buddhism and the other is the growth of Confucian system according to systemization of Confucianism. This study mainly dealt with the period from the 7th cen-tury to the 10th century and especially focused before and after the 7th century, because the period roughly coincides with the time when the Eastern Asia culture and thought were established. In this regards, the both noteworthy points are transmission of Buddhism and appearance of revered monks. The revered monks were not only main figures of active academic exchange as ``a member of East Asian``, breathing academic trend of Wei, Jin Northern and Southern Dynasties of China which was new flow of thoughts at that time. In addition, they also placed cornerstone for the unification of Three Kingdoms by Silla with their studies and thoughts. The academic capacity of monks can be placed on the entrance of early Korean academic history. And among the monks, there were many come from the rank of ``Yukdupum`` that was alienated from center of power. Scholars from the Yukdupum with a background of Confucianism began to appear on the front of history at the same time. Accordingly, they were divided to two groups of monk and Confucian scholars and became subjects who established academic circle. Since then, for some time, Buddhist circle and Confucian circle, monks and Yukdupum had composed mutual balanced academic system continuously. This was possible because all the conditions such as Western Learning(西學), systematical improvement in one`s own country became mature. As time entered later period of Silla, Confucian studies group held dominant position. When viewing the flow, this track is shown; Buddhist studies → Buddhist studies and Confucian studies → Confucian studies. And as time reached later period, in the academic circle, the knowledges of Buddhism and onfucianism were merged by the Confucian group from Yukdupum. Before the 7th century, intellectuals of Buddhism fused Confucian studies but entering the 9th century, on the contrary, intellectuals of Confucianism absorbed Buddhist studies. In the end, it can be seen a process of self-change and that is related the formation of academic history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사업자등록번호 220-87-8778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70-8809-9397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765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9 happynlife.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