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이전 시기 "동인(東人)"의식의 구조와 그 변천 -단군(檀君)인식과 기자(箕子)인식 및 화이론(華夷論)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야
사회과학 > 사회학
저자
김태희 ( Tae Heui Kim )
발행기관
한국민족학회
간행물정보
민족학연구 2009년, 제8권 119~144페이지(총26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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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이 논문은 근대이전 시기 한국사 속에 존재하였던 민족의식의 한 표출양상이라 할 수 있는 동인의식(東人意識)에 대해 살핀 것이다. 동인의식은 고려가 강력한 외세인 몽골제국의 침입에 맞서는 시기에 형성되었다. 동인의식은 단군과 기자를 매개로 고유성과 보편성, 종족성과 세계성, 자주의식과 문명의식을 조화롭게 결합시켰다. 특히 기자인식은 화이관에 입각한 문명의식과 함께 상대적 독립성을 확보하는 절묘한 장치였다. 그러나 기자는 문명의식과 함께 중화주의의 침식과 융합을 허용하는 미묘한 존재이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근대 이전 시기의 동인의식이 중화라는 보편적 문명으로 보강되거나 중국 중심의 타자준거(他者準據)적 사유에 의해 공허해지는 현상들이 교착되었다. 내외적 충격을 계기로 단군인식과 기자인식의 결합구조는 논자에 따라 다양한 변주를 낳았다. 현실세계에서의 열패감을 자존의식의 회복과 문화의식의 고취로 대응하고자 했으며, 주자성리학의 지배적 지위가 더욱 공고히 되면서 화이론 또한 강화된 형태를 띠게 되었다. 중화에 결코 문화적으로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소중화의식은, 아예 유일한 중화임을 자처하는 조선중화주의로 나아갔다. 화이론은 보편적 선진문명에 대한 적극적 태도를 낳고 세계적응에 긍정적 기여를 했지만, 심각한 한계도 드러냈다. 소중화의식 내지 조선중화주의가 갖는 자존의식에도 불구하고, 화이론은 타자준거적 성격을 잠재하고 있었다. 관념적 명분론에 가려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분별과 배제의 논리는 과잉된 배외의식과 자폐를 초래하여, 세계를 객관적으로 보고 현실을 타개해 나가는 것을 방해하였다. 역사상 북벌론의 귀추가 이를 잘보여준다. 또 한국 근대내셔널리즘 형성기에 위정척사 계열이 지도력 상실한 것이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기자조선이 탈락한 것은 화이론의 종말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문초록
    This paper is to examine the cognition structure and its change of national consciousness or the equivalent before modern times. In the late Goryeo Dynasty, Dongin-Consciousness(東人意識) was formed against strong foreign power, the Mongol Empire. There were Dangun(檀君) and Gija(箕子) on the base of Dongin-Consciousness. While Dangun symbolized the originality and the identity, Gija was perceived as the messenger of the universality and the civilization. Comming from Hwai-Theory(華夷論), the cognition structure of Gija connoted both civilization and independence. The respect for Gija did not mean to be subject to Chinese civilization. After two war, Joseon-Joonghwa theory changed viewpoint from China-centric to Joseon-centric. But it was still in Hwai theory. Joseon-Joonghwa theory was good for self-respect, but made it difficult to adapt to the new surroundings because of excessive antiforeign and close attitude. Overall reflection on this problem made Silhak scholars to try to overcome Hwai-Theory. As China-centric world was gone and western Europe-centric world came, Gija was unnecessary and Dangun remained 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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