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학적 측면에서 본 한민족의 정체성
분야
사회과학 > 사회학
저자
유태용 ( Tae Yong Yu )
발행기관
한국민족학회
간행물정보
민족학연구 2010년, 제9권 83~118페이지(총36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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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한국의 구석기시대에 사람들은 분명히 한민족의 정체성을 논할 만큼 현재 한국인의 직계조상으로 간주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한민족의 정체성은 이 땅에 처음으로 정착생활을 영위했던 신석기시대의 빗살무늬토기인들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처음 발을 디뎠던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한민족이라는 것은 어느 한 시점에서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닌 장기간에 걸쳐 형성된 구성체이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한민족의 정체성도 구석기시대까지 소급하여 다루었다. 비록 동아시아의 구석기문화는 지역적으로 구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출토되는 아슐리안형 주먹도끼(bifacial core hand axe)는 중국과는 다른 출토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주먹도끼 자체가 전혀 출토되지 않는다. 따라서 아슐리안형 주먹 도끼는 한국 구석시시대의 중요한 특징으로 부각되고 있다. 신석기시대 문화의 대표적 토기는 빗살무늬토기로서 신석기시대 중기 전반(6,500 B.P.)에 이르러 한반도 서북지방이나 동북지방까지 등장하였고, 중기 후반(5,500 B.P.)에는 한반도 전 지역에 걸쳐 분포하였다. 반면 중국 중원의 신석기문화인 仰韶文化期에는 彩陶가 주로 사용되었고, 일본에서도 신석기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죠몽토기(繩文土器)이며, 일본九州지방에서 출토되는 빗살무늬토기는 한반도의 남해안에서 전해진 것이다. 한국의 청동기시대는 무문토기의 사용, 비파형동검의 제작, 지석묘의 축조 등에서 중국이나 일본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비파형동검 같은 청동기의 종류나 형식, 무문토기나 홍도 같은 토기의 형태나 재질, 그리고 지석묘나 석관묘 같은 묘제의 형식 등은 중국이나 일본의 청동기시대에서 나타나지 않은 한민족의 특징을 나타내는 유물들이다. 초기철기시대의 고고학적 유물로는 세형동검, 점토대토기, 흑도장경호, 다뉴세문경, 청동령 등이 있으며, 이러한 유물 조합상은 중국 중원이나 일본과는 매우 다른 것이다. 게다가 초기철기시대에 한국적 특성을 갖는 유물의 분포지역이 요동과 한반도로 범주화되는 경향을 나타낸다. 다시 말해 고고학적 측면에서 한민족의 정체성이 더욱 뚜렷하게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삼국시대에 삼국은 각기 그들이 위치한 지역에 따라 국가적 정체성이 확립되어 나아간다. 먼저 고구려는 壙口長頸四耳壺나 壙口甕등의 토기가 사용되었고, 백제는 초기에 黑色磨硏土器와 長卵形土器, 그리고 중기에는 三足土器와 鳥足文土器가 사용되었으며, 신라는 초기에는 와질토기를 사용하다가 나중에 회청색 경질토기로 교체되었다. 그리고 고구려와 백제는 積石塚을 造營하였고, 삼국 모두 주변의 다른 나라들보다 많은 성곽을 축조하였다. 따라서 삼국시대는 중앙집권체제를 바탕으로 한민족의 정체성이 점차 광역적으로 발전되어 나아갔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기 한민족의 정체성은 아무래도 삼국이 지역을 기반으로 정립한 상태이므로 제한적이고 未完의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 땅에 한민족이 살았던 시간이 무척이나 길었고, 그에 비례한 시간만큼 공간적 활동범위도 변화무쌍하였다. 때문에 구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고고학적 현상을 하나로 묶어서 설명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이웃 중국 중원이나 섬나라 일본과는 확실히 고고학적 유물에 각인된 문화의 코드가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영문초록
    The concept of a certain nation is in the viewpoint of identity not only based on the regional space but also distinguished from other peoples. In this sense, The Korean identity must be begun at the time of occupation of people in the land of Korea. In this article, I try to get the understanding what the Korean identity is in the archaeological aspects and how this identity have been formed in the Korean history. First, although Asheulian handaxes are uncovered in the chinese continent, the genesis of archaeological materials regarding the identity of Korean ethnicity is possibly related with Asheulian style handaxe made by Homo erectus. That`s because of the fact that Asheulian style handaxes were frequently excavated in the midwest of Korean peninsula more then any other conturies of East Asia. Second, Chulmun pottery with comb-pit decoration was sign of Korean Identity in the neolithic Age. Chulmun potteries were discovered in the Korean Peninsula and Manchuria. The shape of Chumun potteries were flat in Northern Korean Peninsula and Manchuria and round in west and south of Korean peninsula. Third, the archaeological materials such as Mumu pottery, dolmen, and Pipa type sword are recognizable for the Korean identity in the bronze age. In East Asia, Mumun potteries are uncover in the Korean peninsula, dolmens are distributed throughout the Korean peninsula, Manchuria, and North Kyushu. Pipa type swards are also discovered in Korean occupation areas like north east China and Korean peninsula. Fourth, the remains such as narrow type swords, bronze bells, bronze mirrors, Chumtodae pottery, etc, were able to recognize as a sign of Korean identity in the early iron age. Narrow type swords, so called Sehyung sword, were uncovered in the Korean peninsula and east Manchuria. Chumtodae pottery with round clay stripe was also uncovered in the Korean peninsula and Manchuria. Chumtodae pottery culture is related with black Pottery with Long-necked Jar and bronze and iron artefacts. Fifth, archaeological material aspects of three kingdoms period are more diverse for categorizing Korean identity. In Koguryo and Baekche kingdoms, lots of stone-filed tombs were built for mortuary practices of royal family and upper elite. However, the stone compiled wooden chamber tombs were used for burial system in the Silla Kingdom. Three kingdoms were also practiced building fortresses for defence and administration of country. In summarizing this article, it is sure that the time goes on, Korean ethnic group have lived in Korean peninsula and Manchuria for long time. Because the occupational areas of Korean were either increased or decreased, the Korean identity in the archaeological aspects is appeared at diverse features. As a result, Korean Identity of archaeology is distinguished with those of China and Ja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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