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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山(이산) 芮大僖(예대희)의 西間島(서간도) 亡命(망명)과 憂國詩(우국시)
분야 어문학 > 국문학
저자 이은영 ( Eun Young Lee )
발행기관 우리한문학회
간행물정보 한문학보 2012년, 제27권 253~286쪽(총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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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 논문은 졸고1)의 연구 특성상 연구 대상자 개인 중심으로 서술되지 못한 점을 보완해서 졸고의 연구 대상자 중 한 사람인 伊山芮大僖(1686~1939) 개인에 관해 연구된 논문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졸고에서 밝힌 이산관련 서술을 기본으로 삼아 연구된 논문임을 앞서 밝혀둔다. 이산은 시대적 아픔에 대해 자결로써 자신들의 의지를 드러낼 만큼 강직한 성품을 지닌 두 스승 文忠公宋秉璿과 宋秉珣으로부터 학문을 익힌 淸道지역의 전형적인 유학자이다. 이산은 경술국치를 당하자 두 스승으로부터 익힌 유학자적 양심에 따라 1912년 7월 부여와 고구려의 옛 땅인 民族故土서간도로 망명을 떠났다. 이산은 망명지에서 정통 유학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孔敎會運動에도 동참하였으며, 韓人들의 정착을 돕기 위한 입적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힘썼다. 그러나 1916년 匪賊의 손에 집안사람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일어나 더 이상 망명지에서 부친을 편안히 모실수가 없게 되자 이산은 그해 3월 원치 않는 환국을 하였다. 이에 이산은 고향 청도로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湖西의 옛 공주에 우거하면서 士林의 일로 전국을 유람하며 소일하며 살다가 망명지에서 뼈를 묻지 못한 것을 한으로 여기며 1939년 생을 마감하였다. 이산은 망명생활 중에 망명지에서의 삶과 우국에 대한 정서를 작품으로 풀어내었으며, 환국 후에도 이산의 마음은 여전히 망명지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중간에 망명생활을 접고 환국하였지만 이산이 망명 중에 남긴 작품은 망명지에서 생을 마감하며 많은 작품을 남긴 다른 망명문인들의 작품과 동등한 가치를 인정 받아야 하는 것이다.
 
 
영문초록
This paper studies Dae-Hee Ye(芮大僖, pen name: Yisan伊山, 1686~ 1939)``s life and aims to update the analysis on Yisan``s poems based on my previous dissertation. Yisan was a typical Confucian scholar in Cheongdo region. He was taught by two prominent scholars, Byung-Sun Song and Byung-Soon Song who lived with integrity and took their own lives to show the world the agony of losing their country. Following his two teachers`` lofty Confucian ideals, Yisan left to West-Gando, the land of ancient Korean kingdoms, Buyeo and Goguryeo, in July, 1912. Yisan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to establish Confucianism as the state religion and helped Koreans settle in West-Gando. In 1916, however, one of his family members was killed by a gang of bandits. In March same year, Yisan decided to make the unwanted coming back to Korea to take good care of his father. Instead of going back to his hometown, Cheongdo, he stayed in Hoseo, the old town of Gongjoo, and traveled the nation until his death in 1939 with regret that he did not finish his life in West-Gando. His life in West-Gando and dedicated love for the country were melted down into his poems. His heart was still in West-Gando even after he came back to his own country. Despite his return to Korea, Yisan``s poems created during his exile in West-Gando deserve to be appreciated and valued as much as other patriotic poems written by the literati who ended their lives in West-Gan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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