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경서해석의 觀點(관점)과 演變(연변)
분야
어문학 > 국문학
저자
최석기 ( Seok Ki Choi )
발행기관
우리한문학회
간행물정보
한문학보 2012년, 제27권 365~406페이지(총42페이지)
파일형식
0e600553.pdf [무료 PDF 뷰어 다운로드]
  • ※ 본 자료는 참고용 논문으로 수정 및 텍스트 복사가 되지 않습니다.
  • 구매가격
    11,700원
    적립금
    351원 (구매자료 3% 적립)
    이메일 발송  스크랩 하기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국문초록
    이 논문은 조선시대 경서해석의 관점과 그 연변에 주목하여 살핀 것이다. 16세기 李彦迪의 『대학장구』 개정설이 등장함으로써, 주자의 설을 함부로 고칠 수 없다는 관점과 경서는 一家의 글이 아니므로 계속해서 의리를 발명해 나가야 한다는 관점으로 양분되었다. 17세기에는 국내외 정세의 변화로 사상계가 비교적 자유로워 경서해석에 있어서도 주자의 설을 개정하는 설이 다수 나타났다. 그러나 서인계 학자들은 주자학만을 正學으로 보고 나머지는 이단시하는 풍조가 대두되었다. 그리하여 조선후기 경서해석의 관점은 절대존신주자주의의 崇正學·闢異端과 상대존신주자주의의 懷疑精神과 義理發明으로 나누어졌다. 절대존신주자주의는 17세기 후반 서인계 학자들에게서 이념화되었지만,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18세기 이후로는 지방의 학자들이 거의 이 관점을 고수하였다. 상대존신주자주의는 17세기 후반 주로 근기 남인계 학자들에게서 대두되었는데, 18세기 이후로는 소론계 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또한 18세기 후반 이후에는 청대 고증학을 수용한 중앙 학계의 일부 학자들에게서도 나타난다. 상대존신주자주의는 다시 주자의 주석서를 저본으로 하되회의정신으로 의리를 발명하려는 관점을 가진 부류, 古經을 저본으로 하여 독자적으로 새롭게 의리를 발명하려 한 부류, 漢學과 宋學의 장점을 겸취하여 해석하려 한 부류로 나누어진다. 조선시대 경서해석의 관점은, 주자를 존신하여 그 설을 그대로 따르려는 시각을 가진 墨守主義와 주자를 존신하더라도 경서해석은 한 사람이 다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의리를 밝혀 나가야 한다는 의리발명을 중시했던 進取主義로 양분된다. 주자를 절대적으로 존신한 묵수주의는 주자학만을 정통으로 고수하여 경직된 이념을 창출했지만, 의리발명이 학자 본연의 임무임을 강조한 진취주의는 주자학을 상대적으로 인식하여 사상의 변화를 이끌었다.
    영문초록
    This paper focused its investigative efforts on the perspectives of interpreting the Confucian classics and their evolutions. The perspectives were divided into two sects, one of which argued that the theories of Zhu Xi should be not revised indiscriminately by the revision theory of Lee Eon-jeok in Dae-hak-jang-gu in the 16th century. The other sect maintained that the Confucian classics are not the works of a family and thus require continuing efforts to invent the principles of righteousness. In the 17th century, the changing circumstances home and abroad set the ideological community relatively free and led to the emergence of many theories to revise those of Zhu Xi. The scholars of the Seoin School, however, regarded only Neo-Confucianism as the legitimate school and took the rest as heresy. As a result, the perspectives of interpreting the Confucian classics were divided into the 崇正學and 闢異端of 絶對尊信朱子主義and 懷疑精神and invention of the principles of righteousness of 相對尊信朱子主義in the latter half of Joseon. 絶對尊信朱子主義was ideologized by the scholars of the Seoin School in the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and spread throughout the nation since the 18th century, after which almost every local scholar maintained the perspective. 相對尊信朱子主義became prominent usually by the scholars of Geungi Namin School in the second half of the 17th century and was also adopted by the scholars of Soron School since the 18th century. Even some scholars of the central academic school that embraced the bibliographical study of Qing Dynasty started to adopt the perspective in the second half of the 18th century. 相對尊信朱子主義was further divided into the group that tried to invent the principles of righteousness based on 懷疑精神with Zhu Xi``s commentary as the original, the one that tried to invent the principles of righteousness in new and independent ways with 古經as the original, and the one that tried to take the advantages of both Chinese classics and 宋學for interpretation. In Joseon, the perspectives of interpreting the Confucian classics were divided into 墨守主義, which respected and believed Zhu Xi and tried to follow his theories as they were, and 進取主義, which put emphasis on the invention of the principles of righteousness because interpretations of the Confucian classics cannot be covered by one person despite their trust in and respect for Zhu Xi. While 墨守主義that put absolute trust and respect in Zhu Xi kept only Neo-Confucianism as the legitimate one and generated rigid ideologies, 進取主義that emphasized the invention of the principles of righteousness as the fundamental duty of scholars led ideological changes by perceiving Neo -Confucianism relatively.
    사업자등록번호 220-87-8778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70-8809-9397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765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9 happynlife.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