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魏(북위)정통성과 王卽佛(왕즉불)사상의 구현
분야
인문과학 > 동양사
저자
고혜련 ( Hey Ryun Koh )
발행기관
한국고대학회
간행물정보
선사와 고대 2012년, 제37권 31~61페이지(총31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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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이 논문은 탁발선비족의 북위(北魏386∼534)가 외래종교인 불교(佛敎)를 그 종교적 역할과 더불어 한족(漢族)을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사용하였음을 밝히고자 하였다. 이는 북위불교의 특징인 왕즉불사상(王卽佛思想)이 불상 조상에 구현되고 북위지배자의 정통성을 확립시켰다고 보는 것에 근거한다. 탁발선비는 대선비산에 기원을 두고 남하하여 서진(西晉265∼316)을 군사적으로 후원하여 중원에 진출하였다. 서진이 멸망하고 전진(前秦351∼394)이 비수전투에서 동진(東晋317~419)에게 패하자 화북지방의 주도권을 갖게 된 탁발선비는 386년 북위를 건국한다. 이와 같은 건국배경으로 인하여 선진 연구자 W. A. Wittfogel과 田村實造는 북위왕조를 정복왕조에 귀속시키지 않고 침투왕조라 일컫는다. 침투 왕조는 5호 16국과 북조의 여러 나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민족이 중국의 일부나 전부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점차적으로 화북지역으로 내려와 살다가 국가를 건설한 왕조를 말한다. 4세기경화북지방을 차지하게 된 북위의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면 침투왕조의 성격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약 150여년 존속한 북위왕조가 운강과 용문석굴과 같은 거대한 불교석굴을 도읍지인 평성과 낙양에 조성하게 된 이유를 문화사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았다. 즉 북위의 불교문화는 호천신(胡天神)을 숭배하는 선비(鮮卑)문화와 한족(漢族)문화가 접촉하여 문화접변을 일으키면서 발전하였다. 또한 불교문화는 한족과 탁발 선비족 사이의 문화적·사회적 격차를 완충하는 역할도 해주었으며, 중화사상(中華思想)에 입각한 한문화에 대한 문화적 열등감을 상쇄해 주는 탁발 선비족의 대체문화(代替文化)라고 볼 수 있다. 북위는 평성과 낙양에 운강과 용문석굴을 축조하여 외래종교인 불교를 고유문화로 발전시켰으며, 결과적으로 북위는 불교문화국가로 승화한 것이다. 따라서 효문제이후 적극적인 漢化정책이 실시되고 있지만 불교문화의 漢化는 재고의 여지를 남겨둔다. 북위불교는 왕과 부처를 동일시하는 왕즉불(王卽佛) 사상의 구현이었다. 이는 운강16굴에서 20굴까지의 담요오굴 본존불의 15m~20m 거불(巨佛)로 조상되고 『위서』에 의해서 5거불은 북위를 건국한 도무제부터 문성제까지 5황제의 화신(化身)이 조상된 것이다. 또한 효문제와 그를 수렴첨정한 풍태후(馮太后442-490)를 상징하는 쌍굴형 석굴과 이불병좌상을 통하여 북위왕조가 지배자의 정통성을 왕즉불 사상으로 구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북위는 불교의 ‘왕이 곧 부처’인 왕즉불 사상을 통하여 한족(漢族) 백성들 앞에서 이민족 지배자의 권위와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하였고, 현세에 ‘부처가 다스리는 나라’인 불국토(佛國土) 사상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탁발선비는 불교석굴사원의 축조를 통하여 탁발선비의 호천신을 불상(佛像)으로 조상하므로 써 자신들의 기원을 불교화(佛敎化)한 것이다.
    영문초록
    This thesis is endeavored to clear that the Buddhism used as ruling policy of the Northern Wei (北魏), which of Dynasty ruled northern China from 386 to 534. It was founded by Tuoba Xianbei(拓跋鮮卑), which is one of different ethnic group of Sino-barbarian dichotomy(華夷思想) in China. It is treated by the view of acculturation between the culture of Tuboba Xianbei and Han(漢)-Chinese, both of that were changed by a foreign religion Buddhism. It was a fact from that were built the Grottos Yungang and Longmen(龍門石窟) after emperor Taiwu(reg. 423~452) who unified northern China in 439. Because the ruling class of Northern Wei needed urgently the Buddhism as a substitution culture(代替文化) against Confucianism of Han Chinese, who were fixed the Sinocentrism(中華思想) since Han(漢BC 202∼AD 220) Dynasty. The perspective Sinocentrism regards China to be the center of civilization which is superior to all other nations and ethnic group. It made also the thought of Han-Chinese(華) and Non-Chinese(夷). Therefore, it was an era of political turbulence and intense social and cultural change when the Non-Chinese Tuoba Xianbei occupied in North China, in which time would be placed the foreign religion Buddhism as a substitution culture firmly established in China. They tried to establish their legitimacy toward Han-Chinese through the thought of "king is Buddha(王卽佛)". The five colossal Buddha statue in Tanyao(曇曜)-Grottos, Yungang(雲岡石窟) were embodied according to ‘the history of Wei(魏書)’ five emperor, which were probably an incarnation from the first emperor Daowu(道武帝reg. 386∼409) to emperor Wencheng(文成帝reg. 452~465) in Northern Wei-Dynasty. Consequently, the thought of "king is Buddha(王卽佛)" in Buddhism brought Tuoba Xianbei culture to change that also became the origin of Tuoba Xianbei into the Buddhism and that was regarded Northern Wei Dynasty as the Buddha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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