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인문과학 > 동양사 > 한국고대학회 > 선사와 고대
항마성도상과 신라 화엄종 미술의 형성 -부석사 무량수전 촉지인 불좌상 해석의 몇 가지 문제점-
분야 인문과학 > 동양사
저자 주수완 ( Soo Wan Joo )
발행기관 한국고대학회
간행물정보 선사와 고대 2012년, 제37권 63~88쪽(총26쪽)
파일형식 78200506.pdf [다운로드 무료 PDF 뷰어]
판매가격 5,600원
적립금 168원 (구매자료 3% 적립)
이 자료를
논문의 미리보기 2페이지를 PDF파일로 제공합니다.
 
연관 논문
통일신라시대 비로자나불상의 신라적 변용과 특성 -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금동아미타불좌상의 조성과 의미 -
陜川 淸涼寺 石造佛坐像의 양식적 특징에 관한 연구 - 신라하대 경남지역의 불교문화 형성과 관련하여
浮石寺 無量壽殿 塑造佛坐像 硏究 - 특히 신라 화엄종 주존불상 도상의 화엄교의적 성격과 관련하여
창녕 관룡사 용선대 석불좌상의 새로 발견된 "명문"과 "양식" 문제 -
 
 
국문초록
이 논문은 부석사 무량수전에 봉안된 본존불을 도상학적으로 재고찰한 것이다. 편단우견에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법당의 서쪽에 앉아 동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불상은 지금까지 법당의 편액이 무량수전이라는 것과 원융국사비문에 의거하여 아미타불이라고 해석되어왔다. 아울러 신라에 화엄종을 전한 의상대사가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셨다는 점을 통해 그가 화엄 신앙 이상으로 아미타 신앙을 중요하게 생각했었음을 강조해서 언급해왔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몇 가지 점에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보고자 한다. 우선 원융국사 비문에서 무량수전에 아미타불을 봉안했다고 기술하고 있지만, 원융국사가 기술한 부석사의 모습이 지금의 부석사와 같은 모습인지는 단언할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현재의 무량수전은 의상이나 원융국사 당시에는 강당이었고, 지금은 사라진별도의 금당이 존재하여 그 안에 아미타불이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송고승전』에서 의상이 아미타불 신앙을 실천하기 위해 서쪽을 등지고 앉는 법이 없었다고 하였는데, 과연 이러한 신앙형태가 실제 의상의 시대에 불상을 동향(東向)하여 봉안하는 방식으로 구체화되었을 것이라는 증거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오히려 화엄신앙의 측면에서 볼 때 부석사 무량수전의 불상봉안 방식은 보드가야의 정각상을 모델로 했을 가능성이 더욱 높다. 비록 의상이 중국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항마촉지인의 성도상이 유행하기 전이었으나, 의상이 신라로 귀국한 뒤에도 끊임없이 중국 불교교단의 정보를 입수하고 있었다는 몇몇 사실을 통해 새로운 정각상 도상을 받아들여 처음으로 신라에 구현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다. 여기서 만약 지금의 편단우견 항마촉지인 불좌상이 과연 의상에 의해 그렇게 이른 시기에 구현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면, 문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만약 지금의 상이 의상 창건기의 모습과 무관한 것이라면, 통일신라시대에 항마촉지인 편단우견 불좌상이 석가모니 외에 아미타불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기존의 통념은 역시 부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은 부석사 무량수전 본존불이 석가모니 정각상인가 혹은 아미타불인가를 단정적으로 논의하기 보다는 분명하게 석가모니 정각상의 요소를 지닌 도상이 정말로 아미타불로 해석되었다면, 왜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되었을까에 대하여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보아야 한다는 문제제기로서 그 의의를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영문초록
This essay is for an iconographic re-approach to the Buddha image in Amitabha Hall of Buseok-sa temple. This Buddha image of Bhumisparsa-mudra(touching the earth gesture) with wearing the robe of exposed-right-shoulder style which faced to the east direction has been interpreted as a Amitabha Buddha according to the name of hanging board of the hall and the epigraph of Wonyung the Royal monk(圓融國師). Further more, it was accentuated that the tendency of buddhist idea of Uisang the great monk(義湘大師) was based on Amitabha religion more than Avatamsaka faith. But in this essay, new approach would be tried in some aspects for the Buddha statue. First of all, even the inscription of Wonyung`s stele told that the Buddha statue of Amitabha Hall was exactly Amitabha Buddha, nobody can have confidence that the Amitabha Hall was the very same shrine with today`s Amitabha Hall which we could see. Because it is presumed that at the time of Uisang and Wonyung, there was another shrine in Buseok-sa at the lower place of Amitabha Hall as a main shrine of this temple. And Amitabha Hall of these days performed as an assembly Hall originally. Furthermore, according to The Monks Biographies until Song Dynasty(宋高僧傳), Uisang never turned his back on the west side for his Amitabha faith, but there is no any evidence that his faith really can be embodied as Buddha image enshrind as faced to the east direction. On the contrary, the situation around this Buddha image can be well explained by Avatamsaka faith as a Vajrasana Buddha image motif of Buddagaya in India. Even though Uisang had been turn back to Silla before this Vajrasana type image became popular in Tang Dynasty, but it is not impossible that the Buddha image of Buseok-sa inspired from Vajrasana type image considering that Uisang kept the interest continually in the movement of the Chinese Buddhist order after his leaving China. And this international interest make it possible that the new iconographic buddha can be appeared in Silla so fast. If it is raised as a question that the Buddha image of Buseok-sa which shows vajrasana motif is not a same buddha with Uisang enshrined originally, all the problems are going back to the beginning to conclude : If this Buddha image is not refer to the original Buddha image of Uisang, the hypothesis that the Vajrasana image can be applied not only Sakyamuni but also Amitabha should be also abandoned. This essay did not tried to insist whether the Buddha image of Buseok-sa is Sakyamuni or Amitabha. The more valuable question is that why the Sakyamuni image of Vajrasana is applied as an Amitabha buddha image. This iconological question may supply more plentiful art historical idea.
 
 
부석사, 浮石寺, 항마촉지인, 降魔觸地印, 정각상, 正覺像, 의상, 義湘, 화엄종, 華嚴宗, 원융 국사, 圓融國師, Buseok-sa, Bhumisparsa-mudra, Vajrasana, Uisang, Avatamsaka, Wonyung
 
 
도움말
본 논문은 참고용 논문으로 수정 및 텍스트 복사가 되지 않습니다.
 
 
추천자료
[공무원]한국사 기출 모음집(1990년~2006년)
한국사 레포트
정기고적답사자료집(2000.2. 전남 지역)
무신정권과 대몽항쟁
[역사] 불상에 관하여
불상에 관하여 레포트
한국사 요약정리
[철학]한국철학사
[사학] 친일파 99인 자료
동양윤리 중요사항 정리
오늘 본 자료
오늘 본 자료가 없습니다.
장바구니 담은 자료
장바구니가 비어 있습니다.
이 간행물 인기자료
일반논문 : 몽촌토성 출토 전 백제와...
신라 삼국통일의 역사적 의미 ( The H...
한성기(漢城期) 백제(百濟) 도성(都城...
문명대,임효재 교수 정년기념 논총 : ...
일반논문 : 남한지역(南韓地域) 고구...
이 간행물 신규자료
중국내(中國內) 고구려산성(高句麗山...
동북공정 종료 후 중국학계의 고구려 ...
Retrospection and Prospection on Hi...
The Trend of Research on Koguryo an...
고구려사(高句麗史)에 있어서의 이주(...
저작권 정보
본 학술논문은 한국학술정보㈜ 각 학회간에 저작권 계약이 체결된 것으로 HAPPY학술이 제공하고 있습니다. 본 저작물을 불법적으로 이용시는 법적인 제재가 가해질 수 있습니다.
 
서비스이용약관 | 개인정보취급방침 | E-mail 수집 거부 | 제휴 및 광고문의 | FAQ
이메일 무단 수집 거부
본 웹사이트에 게시된 이메일 주소가 전자우편 수집 프로그램이나 그 밖의 기술적 장치를 이용하여 무단으로 수집되는 것을 거부하며, 이를 위반시 정보통신망법에 의해 형사처벌됨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게시일 2003년 4월 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