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廣開土王碑(광개토왕비)의 성격과 5세기 高句麗(고구려)의 守墓制改編(수묘제개편)
분야 인문과학 > 동양사
저자 정호섭 ( Ho Seob Jeong )
발행기관 한국고대학회
간행물정보 선사와 고대 2012년, 제37권 131~158쪽(총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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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광개토왕비를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텍스트의 작성과 텍스트의 성격 구명을 통한 텍스트의 기초적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입장에서 텍스트를 분석해 보고자 하였다. 필자가 광개토왕비를 이해할 때 항상 의문시되었던 점은 1-2부와 3부의 문장 형식이 너무나 차이가 있다는 점과 광개토왕을 위한 비에 장수왕의 행위까지 같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이 점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때 광개토왕비의 성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긴다. 광개토왕비의 핵심적인 내용은 수묘에 관한 것이 아니라 훈적에 관한 것이었다. 광개토왕만을 위한 수묘비는 아니었고, 훈적비를 세우는 과정에서 수묘제 개편이라는 훈적 내용을 부가적으로 기술한 것이었다. 원래는 연대기 형식의 훈적 내용을 담은 텍스트와 교언이나 제령과 같은 공문서 형식의 텍스트가 별도로 존재하였는데, 훈적비를 세우면서 이 두 문서가 합쳐지게 된 것으로 이해된다. 광개토왕의 교언이나 제령 역시도 큰 범주에서는 훈적의 내용에 포함시킬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수묘인들은 국도로 사민된 존재들로 여겨진다. 5세기 수묘제 개편의 핵심은 기존 구민들을 대체하여 신래한예로 수묘인 연호를 전면적으로 대체한 것에 있다. 신래한예만으로 수묘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장수왕은 수묘의 법칙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차출하였는데, 이들은 종래 다른 왕릉에 배정된 수묘인 연호들 이외에는 상정하기 어렵다. 법칙을 모를까 염려한 장수왕은 기존에 왕릉 수묘인으로 배정되었다가 광개토왕의 교언에 의해 수묘인 연호 구성에서 제외되었던 연호들을 수묘인 연호로 재편제하였다. 1 : 10의 비율을 보이는 국연과 간연으로 구성된 수묘인 연호들은 계층적으로 일정한 차이를 가졌을 것으로 짐작된다. 즉 국연은 수묘의 책임을 지는 일종의 조장 역할을 하는 豪民집단, 간연은 下戶에 해당되는 집단이지 않았나 여겨진다. 또한 330家의 수묘인들은 국내성 시기의 고구려 왕릉 전체를 수묘인들로 한 왕릉의 수묘인 연호는 33家로 이해된다. 광개토왕이 수묘인 연호들의 ‘差錯’ 현상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각 왕릉 곁에 수묘인 연호를 분명하게 새겨 기록하게 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구려 수묘인 연호를 영구적으로 불변하도록 구성한다는 목적성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의 문제는 수묘인 매매 문제였다. 광개토왕은 먼저 구민들의 노동력이 사고 팔리는 상황을 직시하였다. 그런데 비에 보이는 매매금지령은 구민들을 수묘인 편제 속에서 제외되고 신래한예로 대체하는 상황에서 내려진 것이고, 신래한예의 사회경제적 위상이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였기 때문에 신래한예들의 인신 매매까지도 염두에 둔 강력한 매매금지 조치로 이해할 수 있다.
 
 
영문초록
This paper examines the Kwanggaetowangbi(廣開土王碑) with deep attachment to its context in order to figure out the feature of it and the reform of Koguryo`s Sumyo system. This analysis begins with a basic understanding of the text by investigating the script production process and its charactersitcs. The discrepancy in the sentence formation between section 1-2 and 3 of the text and the fact that the achievements by King Jangsu were carved onto a monument for King Kwanggaeto attracted the author`s interest. When these issues are taken into consideration in a multi-dimensional perspective, features of the Kwanggaetowangbi can be properly understood. While the main content of the Kwanggaetowangbi is regarded to be more about achievements of the King rather than the guardian of tomb, it was basically a monument in celebration of achievements. In particular, it was not about the guardian solely dedicated to the King Kwanggaeto and the reform of the Sumyo system in the 5th century and an achievement of the King were added as supplements during the erection process. Originally, there existed records of accomplishment attained in a chronical order and in a form of official document such as flattery and edict on institutions and laws. It seems that these two are combined in the erection process. It is due to flattery or edict proclaimed by the King Kwanggaeto also was regarded to be inclusive in a broader category. In Koguryo, the guardian of tomb is regarded as a subject commissioned by the edict of the King. The main content of section 3 which covers Sumyo system in the 5th century presents the entire reform of guardians into inhabitants of newly acquired territory(新來韓穢) by making them as replacements for existing people in the operation of the Sumyo system. In a troubled situation with the conduct of Sumyo system only with inhabitants from newly acquired territory, the King Jangsu recruited informed people with knowledge on Sumyo system, therefore they cannot be assumed to be the same as the past ones except guardians era name assigned to other royal tombs. In this sense, era name designated by flattery of the King Kwanggaeto which was exclusive to the constitution of other era names were reformed again into an era name of guardian by the oder of the King Kwanggaeto. It is deemed that era names of guardian which consisted of ``Kukyun``(國烟) and ``Kanyun``(看烟) at a ratio of 10 to 1 held fixed differences at a stratum. That is, Kukyun had played a role of tribunician responsible for guardian, while Kanyun is regarded to have been a group of third level era name. Also, 330 family names were to protect the whole royal tomb of Koguryo and guardian`s era name inscribed in a royal tomb is to be understood as 33. It can be presumed that the King Kwanggaeto erected a monument adjacent to a tomb of his predecessor to resolve the Chachak(差錯) problem.. This seems to have functioned to hinder the issue of era name`s Chachak. It also implied a purpose to constitute era name of Koguryeo`s guardian as a permanent being. Thereafter, the issue being left over was sales of guardian. At first, King Kwanggaeto perceived the trade of labour of the third-level people. Yet, the ban on trade in the monument was proclaimed when inhabitants were excluded from the Sumyo system and replaced by the inhabitants from newly acquired territory, and this policy seems to be a strong ban on trade of labour including new people`s human trafficking due to relatively lower social and economic status of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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