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학편 : 일본의 강화도조약 인식의 변천과정
분야
사회과학 > 기타(사회과학)
저자
김흥수 ( Heung Soo Kim )
발행기관
공군사관학교
간행물정보
군사과학논집(구 공사논문집) 2013년, 제64권 제1호, 21~41페이지(총21페이지)
파일형식
2b200029.pdf [무료 PDF 뷰어 다운로드]
  • ※ 본 자료는 참고용 논문으로 수정 및 텍스트 복사가 되지 않습니다.
  • 구매가격
    6,100원
    적립금
    183원 (구매자료 3% 적립)
    이메일 발송  스크랩 하기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국문초록
    강화도조약에 대한 현행의 일반적 인식은 일본이 조선의 대외 개방을 강요하기 위해 강화도사건을 일으켰으며 이 사건을 구실로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조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일본의 조약개정운동이 본격화되는 1890년대에 비로소 등장한 인식으로 조약 체결 당시의 인식과 큰 차이를 보인다. 조약체결 당시에는 정한론자의 논리적 근거를 박탈케 한 국내 정치적 의미와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여 동양의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한 전략적 가치에 이 조약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청일전쟁 직후에는 조약체결 과정에서 박규수, 오경석 등 개화파의 능동적 역할이 비로소 주목 받기 시작했다. 강제 병합 직후인 1910년대에는 강제병합의 원인과 관련하여 강화도조약이 이해되었다. 이처럼 강화도조약은 일본의 조선정략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인식이 변천하였던 것이다. 강화도조약이 실증을 바탕으로 하여 학문적으로 연구된 것은 1920년대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이 시기의 연구는 지금처럼 강화도조약의 불평등성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양국의 國交 再開라는 한일 관계사의 연장에서 파악한 점이 특징적이다. 이렇게 볼 때 강화도조약에 대한 현행 일본의 인식은 1910년대의 인식과 유사하고, 1920년대 이후의 실증적 성과마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영문초록
    A current general view of the Ganghwa Treaty is that Japan intentionally caused Ganghwa incident to open the border gates of Chosun, and used that incident as an excuse to make Chosun sign the unequal treaty. This view, however, appeared only after 1890s when Japan`s treaty revision movement began to gain pace. It shows a great difference from the view uphold when it was signed. When the treaty was signed, the belief that it had a strategic strength that helped maintain the balance of power among the countries in Asia and a political strength that undermined the logical ground of "subdue Korea" advocators was popular. After the First Sino-Japanese War, the active role of Gyusu Park, Kyungsuk Oh, and other Revolutionary Party members’ in signing the treaty finally came into the spotlight. During 1910s, immediately after Japan`s annexation of Korea, the Ganghwa Treaty was perceived with regard to the cause of the annexation. This view held that as Korea rejected the diplomatic paper informing the Meiji Restoration, "subdue Korea" debate arose, The Unyo incident and the Ganghwa Treaty followed, for it was Japan’s intention to open the border gates of Chosun. The perception of the Ganghwa Treaty had been changed in relation to Japan`s political scheme towards Korea as shown above. It was after the 1920s that the Ganghwa Treaty was academically studied based on proofs. The notable characteristic of the studies of this age is that they did not focus on the inequality of the treaty as the studies do now, but rather focused on studying the treaty in the aspect of reestablishing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two countries in the context of Korea-Japan history. In this perspective, the contemporary Japanese`s perception of the Ganghwa Treaty is similar to that of the 1910s, and failed to reflect upon the concrete outcomes from the studies that were done after the 1920s.
    사업자등록번호 220-87-87785 대표.신현웅 주소.서울시 서초구 방배로10길 18, 402호 대표전화.070-8809-9397
    개인정보책임자.박정아 통신판매업신고번호 제2017-서울서초-1765호 이메일 help@reportshop.co.kr
    copyright (c) 2009 happynlife. steel All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