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서한(李滉書翰)을 통해본 명종대서원(明宗代書院)의 창설(創設)과 운영(運營)
분야
인문과학 > 동양철학
저자
김형수 ( Hyeong Su Kim )
발행기관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정보
퇴계학과 유교문화 2013년, 제53권 21~50페이지(총30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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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서원은 조선중기 이래 사족의 교육?교화기관으로 기능하면서 대표적인 향촌운영기구의 하나로 인식되었다. 특히 17세기 이후 서원은 재지 사림의 중심적 기구로 되었으며, 이후 정치?사회?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서원 창설기의 사림의 종장으로 활동하였던 이황은 서원의 창설에 부단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황은 서원의 창설 및 운영과 관련하여 문인들과 끊임없이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의견을 교환하였으며, 이러한 이황의 서원에 대한 관심은 이후조선에 있어서 서원의 운영과 제향자의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황은 서원의 제향인물을 道學을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물론 이황이 처음부터도학자만 서원에 제향해야 한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처음에는 충절과 도덕 모두제향의 기준으로 설정하였으나, 성주 영봉서원의 위차 및 배향논쟁을 거친 후 道學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하였다. 영봉서원에 배향될 인물로 李仁復을 거명하고, 역동서원에 禹倬을 배향하도록 결정한 것은 모두 道學을 중시한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인복을 ‘名敎에 도움이 된’ 인물로 평가하고, 우탁의 道學者로서의면모를 부각시킨 것도 이황이 고려시대의 인물을 도학을 기준으로 재평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황이 서원의 기능 중 하나로 주장했던 尊賢은 당시 사림들이 이상적인 모습으로 상정한 道學者를 존숭하는 것으로, 당시 사림들의 이상을 그대로반영한 것이었다. 그런 한편 이황은 東國의 인물들만을 제사의 대상으로 삼았다. 이는 존현을 하는 것은 후학들이 모범으로 삼고 따라 배우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중국의 儒賢보다는 동국의 儒賢을 배향하는 것이 좀 더 교화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황은 서원이 담당해야 할 임무를 학문의 창달뿐만 아니라 ‘향촌의 교화’라는사림들의 정치적 목적까지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에, 서원은 강학과 더불어당시 사림들이 꿈꾸었던 향촌 자치공동체의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 하며, 사림의 ‘爲己之學’이 성숙해야만 했다. 이황이 서원에서 講學을 강조하고 講會를 열어 끊임없이 주자학의 이해를 심화시켰던 것은 사림의 정치적 이상을 학문적으로 추구하여 그 토대를 확보하는 것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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