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원록(尋院錄)』을 통해 본 18세기 전반 도산거원(陶山書院)의 방문과 그 의미
분야
인문과학 > 동양철학
저자
김명자 ( Myung Ja Kim )
발행기관
경북대학교 퇴계연구소
간행물정보
퇴계학과 유교문화 2013년, 제53권 51~84페이지(총34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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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본고에서는 1720년 12월 20일부터 1745년 1월 21일까지 도산서원 ?尋院錄?에 기재된 4,935명을 대상으로 방문인원과 목적, 방문객의 거주지와 성씨, 지방관의 방문 현황 등을 분석했다. 『심원록』에는 한해 평균 200여 명이 방문사실을 기재했다. 1728년(352명)과1733년(639명)에는 방문객이 이례적으로 많은데, 이는 영남안집어사 朴文秀의 도산서원 방문과 퇴계 이황의 致祭에 따른 것이다. 방문객의 대부분은 이황의 학문과 덕행을 흠모하여 방문했으며, 과거에 급제했을 때, 도산서원 근처에 오고 갈때, 享祀?居齋?출판?玩樂齋의 관리 등의 이유로 방문하기도 했다. 방문객의 거주지와 성씨를 살펴보면, 236개 성씨가 8개 道65개 지역에서 도산서원을 방문했다. 그 가운데 안동 권씨, 진성 이씨, 의성 김씨, 전주 이씨, 광산김씨, 영천 이씨, 봉화 금씨, 청주 정씨, 전주 류씨 등의 순으로 방문이 이어졌으며, 지역별로는 예안?안동?영주?순흥?영해?예천?봉화?영양 순이다. 지방관의 경우, 경상감사 22명 가운데 11명이 방문했으며, 예안현감 9명은 부임한 그달에 모두 도산서원을 참배했다. 안동을 비롯한 인근 고을 수령의 방문도잦았는데, 지방관의 당색과 무관하게 이황에 대한 존경과 학문적 계승 입장을 나타냈다. 물론 중앙정치에서 영남 남인을 배제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와 더불어도산서원이 영남 남인의 정치적 중심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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