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말 12세기초 殷元忠(은원충)의 활동과 사상 경향
분야
인문과학 > 한국사
저자
변동명 ( Dong Myeong Byeon )
발행기관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간행물정보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13년, 제51권 1~32페이지(총3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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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殷元忠은 11세기말에서 12세기초를 살아간 草野의 學人이었다. 無等山 일원에서 은일의 삶을 누리다 국왕의 부름을 받아 중앙으로 올라가 출사하였지만, 미관말직에 재임했을 뿐 뚜렷한 행적을 남기지 못하였다. 자연히 그의 생애를 전하는 기록도 극히 영세하며, 그의 가문이나 世系 역시 알려진 바가 없다. 그에게 관심을 기울인 연구자를 찾기 힘든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은원충은 생존하던 당시 벌써 상당한 명성을 지닌 인물이었다. 지방의 일개 처사에 지나지 않던 그를 국왕이 개경으로 불러 올렸음이 사서에 전한다. 또한 그와 교유했던 李資玄이나 李仲若은 고려중기 사상계에 새로운 기풍이 일도록 고취한 것으로 이름있는 인물들이었다. 비록 그 행적이 도드라져 보이지는 않지만, 은원충은 관심을 베풀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었다. 무등산처사 은원충의 행적을 살피고 더불어 그러는 가운데 드러난 그의 사상 경향과 그 의미를 헤아리려는 게 이 글의 목표였다. 그리하여 당시 고려사회에서 새로운 사상적 풍조가 고개를 들기에 이른 의미를 되새기며, 나아가 그와 같은 신선한 기풍의 진작에 지방지식인이라 일러 무방할 초야의 학인이 나름대로 기여하였음을 이해함으로써, 고려중엽 들어 성장을 거듭하던 지방사회의 한 단면이나마 드러내고자 시도하였다. 무등산처사 은원충은 국왕의 부름을 받기 전부터 이미 지방과 중앙에 그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었다. 가야산에 들어가 수행 중이던 이중약으로 하여금 월출산으로 옮겨가 道家的 수양을 지속하도록 그가 유도하였다든지, 혹은 관직생활을 하던 이자현이 마침내 청평산 문수원에서 은일의 삶을 누리기로 결정하는 데 그가 영향을 미쳤다는 기록 등이, 그러한 증거였다. 또한 은원충은 도가와 풍수지리 그리고 불교 등과 두루 연결된 삶을 누린 인물이었다. 처사라 불리며 이자현이나 이중약과 연계를 맺었던 데서 그의 도가적 취향이 드러나는 것은 물론이고, 道詵의 설을 앞세워 예종에게 남경 천도를 권유하였다는 기록에서는 풍수지리 전문가로서의 그의 명성이, 그리고 선승 翼宗 및 이자현과의 교유에서는 그가 불교계와도 교분을 맺었던 사실 등이 각각 확인된다. 고려중기에 非儒敎的인 삶을 지향하며 은일을 선택한 가운데 무등산에 묻힌 초야의 학인으로서, 지방과 중앙에 그 이름을 알린 이가 곧 무등산처사 은원충이었다. 무등산처사 은원충은 나름의 명성을 바탕으로 肅宗의 부름을 받아 중앙으로 진출하였다. 고려중엽 중앙에서 활동하던 한두 殷氏들, 각별히는 태자시절 睿宗의 후궁이던 은씨와의 연고가 주요한 배경이었다. 개경에 올라간 은원충은 예종과 밀착된 가운데, 이중약을 천거하여 그의 출사에 도움을 주며, 남경 건설과 경영 및 대여진정책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고, 더불어 『해동비록』의 편찬에도 간여하였을 가능성이 있는 등, 왕권을 옹호하고 강화하는 방향에서 활동하였다. 예종과의 연고에 힘입어 중앙으로 진출하였으며, 이후 예종의 측근에서 정치개혁에 참여하여 왕실을 옹호하고 국왕의 정치적 주도권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무등산처사 은원충은 도가적 삶을 지향하였다. 그리고 이중약과의 밀착된 관계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그것은 결과적으로 고려 敎團道敎의 성립을 예비하는 일이기도 하였다. 이중약의 경우와 같이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은원충은 고려중기 도교에서 새로운 바람이 이는 데 나름의 기여를 한 인물이었다. 더불어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고려 풍수지리사상의 새로운 전개에도 간여하였을 가능성이 높았다. 나아가 불교계와의 교분을 통해 거사불교가 대두하고 선종이 부흥하며 천태종이 개창하는 데 연계됨으로써, 은원충은 고려중기 불교계에서 신사조가 대두하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은원충의 그러한 활동이 궁극적으로 국왕 중심의 정치개혁을 뒷받침하는 방향에서 추진된 사실도 또한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대목이었다. 은원충은 고려왕조 하의 정규적인 교육에서 일찍이 멀어진 채 은일의 삶을 선택한 인물이었다. 초야의 일개 학인으로서, 고려중기 들어 신사조의 기풍이 경쟁적으로 고개를 들고 분출하는 데 기여하였다. 非儒敎的 성향의 지방지식인으로서 중앙의 사상계에서 변혁적인 전환의 움직임이 일도록 고취하는 데 두루 간여한, 보기 드문 인물이 곧 은원충이었다.
    영문초록
    Eun Won-chung lived in a remote village as a seclusive scholar from the end of the 11th century to the early 12th century. He was entered in the central government by the King`s calling and left his name on the history book. However, Eun Won-chung had already known to the local and central society before he became a governor. The evidence was the record that he had an effect on the retired life of Yi Jung-yag and Yi Ja-hyeon. Eun Won-chung enjoyed Taoism, Feng-shui, and Buddhism, etc through his life time. We can see that he had a taste for Taoism as he, calling a seclusive scholar, was acquainted with Yi Jung-yag and Yi Ja-hyeon. The fact that he was famous for a Feng-shui expert was confirmed by the document which said that he invited king Yejong to transfer the capital to Namgyeong depending on monk Doseon`s Feng-shui theory. Owing to the fact that he had mingled with Yi Ja-hyeon and the monk Ikjong. it reveals that he had a relationship with Buddhists. Eun Won-chung, while being a scholar who pursued a non-Confucian life, chose the life of a hermit on Mudeung-moutain in the middle of Koryo dynasty. Eun Won-chung entered in the central government owing to his relationship to a lady of the Euns ― a royal concubine of king Yejong. After he came to Gaegyeong, he helped Yi Jung-yag to move for office, and intervened in Namgyeong management and policy-making against Jurchen and the formulation of Feng-shui thought. Eun Won-chung participated in political reform as a king Yejong`s close associate and contributed to support the royal family and strengthen the political leadership of the king. The Taoistic life that Eun Won-chung pursued, contributed to bring about a new trend of the times in Taoism in the middle of Koryo. In addition, because he versed in Feng-shui, he intervened to take a new turn of Feng-shui thought. Furthermore, throughout the relation with Buddhists, he made a contribution to emerging the new stream of Buddhism in the middle of Koryo. As a seclusive scholar in a remote village, he was an uncommon person who contributed to make a big change of movement in the central thinking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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