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역사인류학
분야
인문과학 > 서양사
저자
장클로드슈미트 ( Jean Claude Schmitt )
발행기관
한국서양중세사학회
간행물정보
서양중세사연구 2013년, 제32권 173~206페이지(총34페이지)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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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프랑스 역사인류학의 역사적, 학문적인 연원은 마르크 블로크와 뤼시앵 페르브가 『아날』지를 창간하면서 주창한 역사학을 중심으로 한 학제간 협동연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초의 역사인류학적 연구인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1924년)은 출판 당시에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고, 1970년대에 역사인류학이 학문적 방법론으로서 성장, 발전하던 시기에 다시 출판되어 재조명을 받게 되었다. 이러한 관심의 변화는 당시 학계에서는 지식인들이 겪고 있었던 탈식민지화의 충격과 그로 인한 문화적 상대주의, 사회적으로는 도시화와 산업화, 그리고 텔레비전 보급에 의한 도시 문화와 표준어의 헤게모니 확산 및 지방색의 소멸 등과 같은 당대의 사회적, 문화적인 맥락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었다. 사회의 변화는 과거 농촌의 “민중문화”에 대한 대중적인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학문적으로는 농민문화에 대한 연구와 이론적인 쇄신이 이루어졌다. 당시 피에르 자케즈 엘리아스의 『교만의 말』과 엠마뉘엘 르루아라뒤리의 『몽타이유』는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역사인류학은 여러 발전 단계를 거치며 성장하였다. 그 중에서 특히 “민속”과 “민중문화”에 대한 연구는 1960-1970년대에 새롭게 부흥하였다. 역사학자들은 아르놀드 방 즈넵의 “통과의례” 이론과 같은 민속학의 연구방법론을 역사학에 적용하였고, 블라디미르 프로프나 미하일 바흐친 같은 “민중문학” 전문가들의 연구로부터 크게 영감을 얻었다. 장 피에르 베르낭, 피에르 비달 나케, 마르셀 데티엔의 고대 그리스 신화 연구나 자크 르고프와 엠마뉘엘 르루아라뒤리의 멜뤼진 설화 연구, 그리고 필자의 성 긴포르 연구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학문 발전과정에서 역사학과 인류학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인류학은 시간적인 요인을 중시하면서 일종의 “역사화” 과정을 겪었다. 역사학이 인류학으로부터 받은 영향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측면에서 제시할 수 있다. 첫째, 역사학자들은 인류학으로부터 “구조”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서 사회조직들의 변화 논리를 공시적으로 분석하는 방법을 배웠다. 둘째, 역사학자들의 문제의식이 확장되었으며, 신화와 전설의 구조적 분석, 가족과 친족관계 연구, 의례와 의식, 음악과 전례 연구 등으로 연구대상의 폭이 확대되었다. 역사학자들은 인류학자들과 같은 대상을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이것은 상호 대화와 학제적인 협동연구를 가능하게 하였다. 셋째, 이러한 확장된 연구들이 제기하는 질문의 배후에는 문화권에 따라 변화하는 몸의 표상과 역할에 대한 거대한 질문이 도사리고 있다. 몸에 대한 연구는 이미 초창기의 인류학 및 “몸의 테크닉”에 대한 마르셀 모스의 선구적인 연구에서부터 근본적인 문제로 제기되었다. 특히, 중세사학자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육화(肉化)가 그리스도교 세계의 종교와 문화의 핵심이기 때문에, 몸은 명백히 중심적인 문제이다. 또한, 자연과 문화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인류학자 필립 데스콜라의 연구는 중세사학자로 하여금 자신의 연구대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것을 다른 문화들과 비교하는 데 도움을 주었으며, 서구의 유대-그리스도교 문화에 뿌리 깊게 박혀있는 자연론적인 태도를 감지하는데 기여하였다. 넷째, 역사학자들의 “표상” 연구는 그들이 몸과 자연의 생물학적인 존재와 물질성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릴 수 있는 위험성을 제기하였다. 그렇지만,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는 감정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오랫동안 특수한 독립 연구분야로 인식되어오던 과학사와 의학사에서 사회사와 문화사에 귀 기울이고 있다. 또한, 이미지의 인류학적 역사 역시 몸에 대한 연구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인류학자 앨프리드 젤의 연구는 이미지가 스스로의 의도를 가지고 있으며, 감정을 일으키고, 행동을 유발하고,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인 관계를 수립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역사학자와 중세사학자에게 있어서 이러한 인류학적인 연구가 지니는 타당성은 무엇보다도 서구의 유비론적, 자연론적인 문화를 세계의 다른 존재론들 및 문화들 사이에서 상대화시킨다는 점에 있다. 역사인류학의 발전에서 보이는 것처럼 역사학에서의 문제제기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였으며, 서로 다른 학문분야 간의 대화에 의해서 새로운 문제와 새로운 방법론, 새로운 연구대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영문초록
    A great deal of French historical research has been placed during the last three decades under the category and banner of historical anthropology. The expression comes from a strong interdisciplinary development that fused historiography and the social sciences at the end of the last century. At stake was, as far as historians were concerned. the merging of methods and questions of ethnologists and social anthropologists. In other words, this was a historical appropriation on the understanding of methods, questions, and objectives concerning the fields of ethnology and anthrop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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