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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경성 북촌 조선인 극장가의 조직과 종족공간적 구성
분야 예체능 > 연극영화
저자 백두산 ( Baek Doosan )
발행기관 한국연극학회
간행물정보 한국연극학 2017년, 제63권 33~64쪽(총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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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1907-1910년대 중반 연흥사, 장안사, 단성사가 운영되었던 탑골공원 근처 북촌 조선인 극장가의 형성과 조선인 극장가의 공간적·문화적 특수성을 살피는 논의이다. 일제의 재정정리 정책으로 한성의 극장업이 자유경쟁체제로 재편되고 관제개편으로 조선인 관료들이 대량 해고되자관료·상업자본가들은 극장영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초창기 민간극장들이 들어선 탑골공원 일대는 조선인 대상의 일용품 시장을 배후지에 두었으며, 음악 감상과 유흥을 위한 공간으로 전용되고 있었다. 이같은 공간적토양 아래서 1907년부터 탑골공원 일대의 극장가는 저녁 무렵 전통음악 이용한 취군과 관람객으로 붐비는 유흥공간으로 구성되었다. 일제강점 이후 조선인 극장가를 둘러싼 일본식 하족(下足)관습, 극장의 위생, 임검순사 단속에 대한 기록에서는 종족적 차이에 대한 인식, 차별 및 폭력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한편으로 취주나 조선음악 연주는 일제의 금지에도 일본식 극장관습과 혼효되어 유지되었다. 1910년대 북촌 조선인극장가는 종족적 문화를 향유하는 조선인 관객층이 무단통치의 폭력적 상황과 종족적 차별을 일상적으로 체험하였던 `불안`의 공간이었으며, 이는 식민지기 관객성을 주조하는 문화적 특징으로 고착화되었다.
 
 
영문초록
This paper investigates the formation of the Bukchon public theater near Tapgol Park where the Yeongheungsa, Jangansa and Dansongsa operated from 1907 until the mid-1910s, and discusses the spatial and cultural characteristics of public theatre district in Bukchon. The theater industry had turned into market competition due to the financial policies of Japan during the colonial period, and many Korean officials lost posts as part of the public administration re-organization program. In midst of this, Gyeongseong`s political and commercial bureaucrats started to take interest in commercial theaters targeting the middle class. The area around Tapgol Park was part of the city tram route and the main market area for Koreans, as well as a leisurely place where musical events were held, and from 1907 onwards had developed into a theater district which became identified as a place of nightlife where performers and spectators crowded during the evening. After the colonial period, it is evident from documents of Japanese theatrical system, theater sanitation and law enforcement of the theatre that there were perceptions of ethnical differences, discrimination and violence. On the other hand, despite being banned by authorities, musical performances of Joseon continued to exist in a mixed form with Japanese theatrical traditions. During the 1910s, Bukchon`s theater was a place of fear as Koreans routinely experienced violence and racial discrimination, which became one of the main characteristic of spectatorship during the colonial period.
 
 
북촌의 극장, 종족공간, 조선인 극장가, 극장단속, 1910년대, public theatre in Bukchon, ethnic space, Korean public theater district, law enforcement of the theatre, 191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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