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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래픽 아트`의 가능성에 대한 비판
분야 인문과학 > 기타(인문과학)
저자 이해완 ( Lee Haewan )
발행기관 한국미학회
간행물정보 미학 2017년, 제83권 제3호, 115~153쪽(총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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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
이 논문은 키이란이나 마스가 제안해 온 `포르노그래픽 아트`개념을 비판적으로 검토해보려는 것이다. 이 개념의 옹호자들은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 이면서 동시에 예술작품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우리의 상식적인 선입견에 반하는 것이지만, 논리적으로만 검토해 본다면 그 가능성을 옹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포르노그래피의 본질적 특징은 성적으로 노골적인 재현이면서 보는 이의 성적 흥분을 효과적으로 유발시키는 것이다. 전통적인 양립 불가의 이유들이 있지만 예술이 이 두 요소와 개념적으로 충돌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하기 어렵다. 이점은 `포르노그래픽 아트`와 같은 범주의 가능성을 옹호한다. 그러나 포르노그래피가 성적인 흥분을 목표로 하는 것이 필연적이라면, 그것을 저해하는 기법이나 양식은 미래의 포르노그래피에서도 선택되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예술 감상은 성적 흥분과 양립하기 어려워 포르노그래피 감상과 동시에 진행될 수 없는 성격을 갖는다. 양립가능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동시 감상 가능성은 자신들의 입장에 필요한 것이 아니므로 동시 감상 불가능성이 아무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단순한 논리적 가능성이 아니라 실천적 함축을 갖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로 감상되는 동안은 예술로서 감상되기 어렵다는 관찰은 그들이 원하는 양립가능성의 적극적 해석에 치명적일 수 있다. 이 논문은 이점을 논증하려 한다. 레빈슨은 포르노그래피가 투명하기 때문에 예술과 구별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양립가능성의 지지자들은 이를 비판한다. 실제로 포르노그래피가 투명하다는 주장은 성립하기 어려울 것 같다. 양립가능성의 지지자들은 투명성 논제가 부정되기만 하면 동시 감상 불가능성도 자신들의 편에서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예술 감상 경험의 성격을 분명하게 할 경우, 투명성 논제의 부정만으로는 포르노그래피의 경험과 예술 감상 경험이 동시에 가능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 논문은 이 점을 또한 논증하려 한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어떤 것이 포르노그래피이면서 동시에 예술일 가능성을 위해 제안된 `포르노그래픽아트` 개념은 불필요하거나 불가능하지 않은가 하는 의심을 드러낸다.
 
 
영문초록
In this paper, I critically assess the possibility of "pornographic art" proposed and defended by Matthew Kieran (2001) and Hans Maes (2012). They advocate the thesis that something can be an artwork and pornography at the same time. Given our traditional presupposition that art and pornography are mutually exclusive, showing the possibility of a pornographic work being art is not trivial. However, argument-wise, the proponent of "pornographic art" will find a relatively easy victory against those who take conservative stance, as long as no contradiction can be found between the concept of art and the alleged essential elements of pornography. (Two are normally considered as the essential elements of pornography; sexual explicitness of the representation and effectiveness to serve the sexual arousal of the viewer.) Undoubtedly, many characteristics of currently typical pornographic materials are not even close to the standard of art in anybody`s eyes, yet they can`t weaken the possibility of "pornographic art" because it can be argued that they are not necessary properties of pornography. However, as Maes himself indicates, "pornographic art" should not be just a matter of securing a mere logical possibility. The thesis has some practical significance. In order to actualize what is argued as the practical implication of the notion of "pornographic art" by Maes, an emphasis has to be put on the possibility that a work of pornography, without losing its status as pornography, can also be a work of art. It implies that, in "pornographic work of art," our experience of the work as pornography influences and shapes the way we experience the same work as art. This is a positive understanding of why we need a category like "pornographic art." However, I find a theoretical problem when the proponent of this thesis moves in this direction. If pornography essentially aims for sexual arousal, this fact hinders our appreciation of the thing as an art. That is, a work cannot be experienced as pornography and appreciated as a work of art at the same time. I argue that this impossibility of simultaneous experience would eventually provide grounds for arguing against the compatibility thesis of pornography and art. In the process of advocating my position, I comment on Jerrold Levinson`s position on this matter. He is one of those who deny the compatibility thesis, and he argues for the reason why art (erotic art) and pornography are mutually exclusive. His main reason is that pornographic representation is transparent while art is not. This view has been criticized, and I also believe his transparency claim is hard to maintain, although I accept his stance on incompatibility. My argument is that, even if we grant that pornography is not as transparent as Levinson thinks, its opaqueness is not enough to shake off the criticism based on impossibility of simultaneous experience.
 
 
포르노그래피, 에로틱 아트, 재현, 매튜 키이란, 제럴드 레빈슨, Pornography, Erotic Art, Representation, Matthew Kieran, Jerrold Levi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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