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진민사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례적 성격
분야
인문과학 > 민속학
저자
김미영 ( Kim Mi-young )
발행기관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간행물정보
영남학 2017년, 제62권 245~280쪽(총36쪽)
파일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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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문초록
    이 논문은 의성김씨 문중 사우인 오토산 진민사鎭民祠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의례적 성격을 조명하려는 목적에서 작성되었다. 진민사는 의성군 사곡면 토현리 오토산五土山에 자리하고 있으며, 제향인물은 의성김씨 중시조 김용비金龍庇이다. 그는 고려 명종 때 의성지역에 거주하면서 민란을 평정한 공적을 세워 지역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진민사는 그 공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사당이다. 이처럼 당시 김용비가 세운 공적은 지역공동체를 넘어 국가의 위기를 구한 것이기 때문에 그를 위한 추모공간인 진민사 역시 지역성에 기반한 공묘公廟로서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이러한 사실은 진민사가 의성읍내 관아 근처에 세워졌다는 점을 통해서도 입증된다. 이후 진민사는 퇴락과 화재 등으로 수차례에 걸친 중수와 이건 등을 거듭하다가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읍내에 자리하고 있던 사당이 헐리면서 지금의 오토산으로 옮겨간다. 이때부터 오토산은 단순한 자연경관을 넘어 의성김씨의 상징적 제의공간으로 자리잡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진민사의 주도권은 지역사회로부터 의성김씨 문중으로 점차 넘어오게 되는데, 그 기점은 성리학적 가문의식이 형성되기 시작하는 16세기 무렵이다. 즉, 문중의식의 강화로 인해 후손들은 혈통적 근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이는 결국 진민사에 대한 주도권을 행사하려는 결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이에 반해 의성읍민들 역시 진민사를 공공의 지역유산이 아니라 혈통적 차원에서 인식하게 됨으로써 결국에는 특정 성씨의 사묘私廟로 간주하게 된다. 그런데 진민사의 제향인물인 김용비는 의성지역 출신으로, 지역민들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난적亂賊을 물리치는 공적을 세웠으며, 또 지역에 뼈를 묻었다. 이는 특정 혈통을 넘어 모든 후대인들의 귀감龜鑑이 될 만한 행적이며 우리 모두가 추구해야할 보편적 가치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진민사, 나아가 진민사가 자리한 오토산은 단순히 특정 혈통의 뿌리가 깃든 장소가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본받을만한 정신문화를 간직한 공간으로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진민사가 특정 가문과 혈통을 넘어 지역의 문화유산으로 거듭나야할 이유라고 할 수 있다.
    영문초록
    The purpose of this paper was to review historical cultural value and Ritual Character of Jinminsa Shrine of Oto Mountain, which is a family shrine of Uiseong Kim Family. Jinminsa Shrine is located on Oto Mountain in Tohyeon-ri, Sagok-myeon, Uiseong-gun. The enshrined person is Yongbi Kim, the second progenitor of Uiseong Kim Family. During the reign of King Myeongjong, he lived in Uiseong and was held in high esteem by residents for successfully suppressing a riot. Jinminsa Shrine is a shrine constructed to admire his achievement. Since the achievement of Yongbi Kim at the time saved the entire nation from crisis beyond regional community, Jinminsa Shrine was considered as an elite shrine based on regionality. This is also shown by the fact that Jinminsa Shrine was built nearby the government office of Uiseong-eup. Jinminsa Shrine was repeatedly repaired and rebuilt because of ruining and fire. After the demolition of Jinminsa Shrine in Uiseong-eup with the lecture hall demolition order in 1868, it was rebuilt on Oto Mountain. Ever since this time, Oto Mountain became a symbolic place for Uiseong Kim Family beyond simple natural landscape. During this process, the hegemony of Jinminsa Shrine was gradually shifted form the community to Uiseong Kim Family. This shift started in the 16th century when the neo-Confucian family consciousness began to settle in. In other words, with the increase of family consciousness, descendents paid greater attention to the origin of the family and showed efforts to gain the hegemony of Jinminsa Shrine. On the other than, residents of Uiseong-eup also started to recognize Jinminsa Shrine as a private shrine of a specific family without regionality. However, Yongbi Kim the person enshrined at Jinminsa Shrine lived in Uiseong, risked his life to protect residents by defeating rioters, and died in this place. His deeds present a role model to future generations and a universal value to be pursued by all, not limited to a specific family. In this sense, Jinminsa Shrine and Oto Mountain where Jinminsa Shrine is located are not simply places for a family but have value and meaning as places that keep the exemplary spirit and culture for modern people. This is the reason why Jinminsa Shrine should be transformed into a cultural heritage of the re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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