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채만식의 「심봉사」와 「흥부傳」을 대상으로 텍스트에 형상화된 ‘가족’과 ‘자본’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살피고자 하였다. 「심청전」의 결말이 어느 쪽을 지향하는 가는 일차적으로 서사의 초점을 누구에게로 둘 것인지와 연관이 있다. 「심봉사」는 기존의 구성과 달리 서사의 초점을 심청에서 심봉사로 이동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그 연장선에서 심봉사는 출세지향적 욕망을 강하게 지닌 인물로 변형되는데, 여기서 심청은 아버지인 심봉사의 세속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구화되는 특성을 보인다. 이 점은 심청의 죽음과 심봉사의 눈뜸에 대한 욕망과 좌절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나타났다. 이러한 맥락에서 심봉사가 스스로 자신의 눈을 찔러 다시 맹인이 되는 행위는 가족을 희생의 대상으로 삼은 전통적 가족제도와 가부장의 무능함에 대한 처절한 응징을 ...
김명희 ( Myoung-hee Kim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현대유럽철학연구[2021] 제60권 277~305페이지(총29페이지)
중국이 개혁개방을 내세우고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실행한지 35년이 넘은 시점인 2013년에 위화(余華)의 『제7일(第七天)』이 출판되었다. 중국의 21세기는 세계무역기구(WTO)의 가입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 유인 우주선 션저우(神舟;Shen Zhou)호의 비행 성공, 2010년 상하이엑스포(EXPO)의 원만한 개최와 함께 계속되는 고속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성장의 결실을 제대로 분배하지 못한 결과 빈부격차가 갈수록 커졌고, 이런 상황은 사회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글은 위화의 소설 『제7일』에 나타난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인간’에 관해 고찰해 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첫째, 사회주의 시장경제 속의 불평등이 작품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경제적 인간의 죽음...
김윤희 ( Yun-hee Kim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현대유럽철학연구[2021] 제60권 245~276페이지(총32페이지)
오늘날 국민경제학의 상상은 (신)고전경제학에서 자본주의를 국가 내부로 사유할 수 있는 지식을 마련하고, 역사학파에서 지역 또는 국가의 특수성과 사회윤리가 부가됨으로써 온전히 등장할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이글에서는 한국에서 국민경제에 상상이 등장하고 확산했던 과정을 고찰한다. 나아가 이 과정에서 유교윤리의 관계성이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이경배 ( Kyeong-bae Lee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현대유럽철학연구[2021] 제60권 205~243페이지(총39페이지)
동·서의 근대, 동·서의 자본주의 사이에 차이는 존재하는가? 차이가 존재한다면, 우리는 이 차이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이 차이는 왜 중요한가?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논문은 우리의 근대성이 서구로부터 이식된 근대성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는 가운데 동·서 근대가 양산한 공통의 문제로서 과학기술문명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자 하며, 다른 한편으로 유교 전통의 영향사 아래 형성된 우리 근대의 특수한 정체성 찾기라는 당위명제를 토대로 개진된 동아시아 근대의 근대성을 다룬 선행논의들을 고찰하고자 한다. 따라서 논문은 첫째, 서구 근대성의 근본특징에 대한 철학적 진단을 시도하며, 둘째, 유교 근대화론이라고 할 수 있는 ‘유교자본주의’, ‘중층 근대성론’ 혹은 ‘능력주의 합리성’의 핵심 주장을 검토하고, 이 논의 내부에 내재해 있는 유...
이희용 ( Hee Yong Lee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현대유럽철학연구[2021] 제60권 181~202페이지(총22페이지)
본 논문은 가브리엘 마르셀의 실존적 인간이해를 형이상학적이고 해석학적으로 규명하고자 하였다. 지성능력과 감성능력에 있어서 인공지능(AI)이 인간을 능가할 시점이 임박한 현대에 있어서 인간실존에 대한 전면적인 논의는 불가피해졌다. 그렇지만, 인간실존에 대한 현대적 논의는 기술과학의 주도에 따라 협소화된 새로운 차원의 윤리적 지평위에 놓여 있어, 전통적으로 다루어져 왔던 인간됨의 의미, 우리의 삶을 의미있게 만드는 인간본연의 가치에 대해서는 차폐되어지고 있다. 이런 현대적 논의 상황을 문제시하면서, 차이와 융합을 강조하는 소통과 개방의 시대에 오히려 학문적 논의에서 도외시 되고 있는 형이상학적이고 실존적인 인간이해를 다시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본 논문은 마르셀이 분석한 깨어진 세계에서 인간실존이 소외(疎外)와 절망, 좌절로부터 오히려 자기존재의 궁극적 근원에...
이윤미 ( Yoon-mi Lee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현대유럽철학연구[2021] 제60권 133~180페이지(총48페이지)
이 논문은 니체에 대한 해석 방식과 1981년 파리에서 이루어진 가다머와 데리다의 논쟁에 근거하여 두 철학자의 사유 방식의 차이를 제시함과 동시에 더 나아가 차이 속에서 유사성을 고찰함으로써 상호간의 대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가다머와 데리다의 차이는 니체에 대한 둘의 상이한 해석과 해석학과 해체주의의 갈래에서 두 철학이 지향하는 바에서 제시된다. 가다머는 니체의 사유에서 주체 철학의 정점을 보았으며 이를 형이상학적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기에 그는 니체적 사유로부터 벗어나 존재에 대한 이해의 과정으로서 대화적 변증법을 중심에 둔 철학적 해석학을 전개한다. 반면 데리다는 니체에게서 진리의복수성이 긍정되고 있음을 보았고 이로부터 전통 형이상학의 극복으로서 차이의 놀이에 대한 사유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가다머와 데리다 사이의 이러한 차이에도 ...
본 논문은 현대의 시대적 문제로서의 허무주의와 그것의 극복에 대한 하이데거의 논의를 다룬다. 이를 위해 여기서는 먼저 하이데거의 니체해석을 살펴보며, 그 안에서 무의 경험을 존재 자체에 대한 새로운 현상으로 전환시킨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전환이 허무주의 극복의 단초라는 점을 밝혀낸다. 먼저 우리는 허무주의와의 대결을 위해 하이데거가 수행한 니체 해석을 다루었고, 그것은 각각 니체가 말한 중요개념으로서 허무주의 자체를 제외한 다섯 가지 개념, 즉 ‘신의 죽음’, ‘가치의 전도(가치의 무가치화)’, ‘힘에의 의지’, ‘위버멘쉬’, 그리고 ‘동일한 것의 영원회귀’이었다. 그 이후 우리는 이러한 니체 해석에서 드러난 허무주의의 극복이 실패하였으며, 이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 하이데거가 허무주의를 존재역운의 마지막 단계이자 존재가 스스로를 떠나보낸 존재망각의 현상으...
230년 전 J.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이 『파놉티콘』(1791)을 출간하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새로운 정보 통신의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권력 장치에 있어서도 새로운 방식의 진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제 파놉티콘을 넘어 이른바 디지털 파놉티콘의 시대가 도래한 셈이다. 이러한 디지털 파놉티콘의 환경에서 특정 권력 지배층은 더욱 교묘하게 국민을, 국민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하여, 자신들의 권력 행사를 실현시켜 나가고 있다. 이러한 파놉티콘/디지털 파놉티콘의 장치 하에 감시는 더욱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권력 지배층은 국민을 내편/네 편으로 분할하고, 사회체제에 순응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방역을 명분삼아 특정 권력이 행사하는 정치 행위의 구...
박치완 ( Tchi-wan Park )한국현대유럽철학회, 현대유럽철학연구[2021] 제60권 37~74페이지(총38페이지)
러시아와 중국이 그 중심에 있는 유라시아는 최근 정치적·경제적으로, 현실적·담론적으로 국제 뉴스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그런데 유라시아가 뉴스에 등장하면 할수록 90여 개국으로 구성된 유라시아의 문화적 중층성과 다양성은 희석될 수밖에 없다. 만일 이렇게 유라시아가 초국가주의적 렌즈와 러시아의 ‘대유라시아’나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에서처럼 오직 정치적·경제적 관점에 따라 접근되는 데 그친다면, 이는 곧 유라시아의 주변국들이 감당해야 할 ‘문화의 재난’ 쯤은 감수하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문화는 각 지역-로컬에서 대를 이어 전승되고 유지되는 단위 공동체의 고유한 유산이다. 글로벌 패권, 즉 경제의 세계화로부터 유라시아의 주변국들이 자신의 문화를 지켜내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가 탈영토화되면, 이에 비례해서 국가의 정체성도 희석되기 마련이다. ...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려는 이론적 작업들이 확대되면서 애덤 스미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도 등장하였다. 이는 경제적 자유주의자이자 자유방임주의자로 알려는 스미스에게서 다름 아닌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찾고자 한다는 점에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스미스와 신자유주의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를자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해석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을 신자유주의에서 찾는 자기 모순적 해석이라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미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무엇을 주장하는지를 서술할 것이다. 그리고 스미스의 사상을 ‘자연적 자유의 정의로운 실현’으로 재구성하면서 이러한 입장이 신자유주의와 다를바 없음을 주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