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발행기관
간행물  
발행연도  
발행기관 : 한국한시학회541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고경명 제화시의 의경과 미적 특질
황수정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2012] 제20권 199~234페이지(총36페이지)
본 연구는 霽峯 高敬命(1533~1592)의 제화시에 대한 연구이다. 그의 제화시에 나타난 의경과 미적 특질을 규명하기 위한 것이다. 제봉의 제화시는 총16題 88首로 다양한 제재를 구성하고 있다. 작시의 연원 또한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제봉은 시인의 감식안으로 새로운 의경을 창출하였다. 그의 제화시의 情景交融 형상과 의경 측면을 고찰하였다. 먼저 畵意의 시적 승화이다. 제봉은 화가가 묘사하고자 한 畵意를 간파하고 그것을 시적으로 승화시켰다. 화면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에 멈추지 않고, 시인의 감식안을 발휘하였다. 내면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한 심원하면서 달관적인 의경을 구축하였다. 두 번째는 畵境의 확대를 통해서 시의를 구축하였다. 虛實相生의 조화를 이루는 예술의 경계를 말한다. 제봉은 자신의 심미인식으로 화가가 미처 표출하지 못한 화...
TAG 제봉, 고경명, 제화시, 화의, 화경, 의경, 미학, 탈속, , 霽峰,高敬命,題畵詩,畵意,畵境,意境,美學,脫俗,興
지천(芝川) 황정욱(黃廷彧)의 삶과 시
김종서 ( Jong Seo Kim )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2012] 제20권 235~270페이지(총36페이지)
芝川 黃廷彧의 삶은 임란을 전후로 하여 영예와 치욕의 극적 변화를 보인다. 임란 전에는 璿系의 잘못된 점을 씻고 돌아와 元勳에 책봉되고 최고의 품계로 관작이 올라가는 동시에 弘文館 大提學을 맡아 당대 詞林의 宗匠이 되었다. 1592년 임진년의 변란이 발생하면서 왜군에게 포로로 잡혔다. 이듬해 왜적에게서 풀려나 돌아오지만 그가 적진 중에서 취한 항복 권유문으로 인해 적지 않은 오해를 받아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던 東人의 탄핵을 받아 吉州에 유배되었다. 1597년에 풀려나지만 끝내 복관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황정욱은 ``館閣三傑`` 또는 ``湖蘇芝``의 한 사람으로 해동강서시파 시인으로 분류된다. 그는 근체시에 뛰어났으며 특히 칠언율시에 뛰어나 노수신의 오언율시와 더불어 모두 천 년 이래의 절창으로 평가된다. 그의 시는 남아있는것이 많지 않지만 ...
TAG 지천, 芝川, 황정욱, 黃廷彧, 황정견, 黃庭堅, 진사도, 陳師道, 강서시파, 江西詩派, 해동강서시파, 海東江西詩派, 관각삼걸, 館閣三傑, 호소지, 湖蘇芝, Jichun, Hwang Jeongug, HaDongGangSeoSiPa, GangSeoSiPa, Hosoji, GuanGagSamGeol
저촌(樗村) 심육(沈육)의 절후시(節候詩) 연구(硏究)
성범중 ( Beom Joong Seong )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2012] 제20권 271~297페이지(총27페이지)
저촌 심육은 학자로서는 비교적 많은 2,200제에 이르는 한시를 남긴 인물이다. 그는 삶의 대부분을 전국을 유람하거나 강학하면서 보내었다.시세계는 대체로 기행시와 생활시로 나누어 볼 수 있고, 작품은 聲病에 구애받지 않고, 시의 표현이나 시상의 精粗와 工拙을 따지지 않으며, 남의것을 效빈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의 다양한 사물들을 시적 소재로한 생활시를 많이 창작하였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계절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사물의 모습과 감회를 담은 절후시이다. 이 논문은 절후의 규칙성을 기본 틀로 설정하여 절후와 현실의 관계에 따라 저촌의 절후시를 ``절후상의 당위와 현실의 괴리``, ``절후상의 당위와 현실의 조화``, ``절후에 따른 감회와 흥취``로 범주화하여 고찰한 것이다. 절후상의 당위와 현실의 괴리를 다룬 시는 기대와 어긋나는 현실에 대...
TAG 저촌, 심육, 기행, 생활, 절후, 절후시, Jeochon, 樗村, Shim-Yook, tour, everyday life, seasonal changes, poems on the seasonal changes
조선 선비의 꽃구경과 운치 있는 시회
이종묵 ( Jong Mook Lee )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2012] 제20권 299~335페이지(총37페이지)
조선 시대 문인들은 계절 따라 피는 꽃을 완상하면서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조선 초기 校書館, 藝文館, 成均館 등에서 봄이면 살구꽃을 구경하면서 술을 마시는 紅桃宴이 있었고 초여름 장미가 피면 그 아래 술을 마시는 薔薇飮을 베풀었으며 한여름에는 푸른 소나무 아래 피서를 하면서 술을마시는 碧松飮을 열었다. 이와 같은 국가적인 宴會 외에도 조선 시대 문인들은 동료나 벗과 서로 어우러져 꽃구경과 함께 詩를 짓는 모임을 가지는 것이 관례였다. 봄날 진달래나 살구꽃이 피면 꽃구경을 위한 賞花會를 열고 꽃지짐을 만들어 안주로 삼아 술을 마셨다. 여름에는 避暑를 위한 술자리를 열고 연꽃을 완상하였는데, 연꽃의 잎과 줄기를 이용한 술잔을 만들어 술을 마셨다. 또 국화의 계절인 가을에는 9월 9일 重陽節의 풍류를 즐기기 위하여 국화를 감상하는 모임인 賞菊會를 가졌...
TAG 시회, 詩會, 상화회, 賞花會, 벽통음, 碧筒飮, 피서음, 避暑飮, 상국회, 賞菊會, 매화음, 梅花飮, 난로회, 煖爐會, flower-viewing parties, lotus flowers parties, chrysanthemum appreciation parties, plum appreciation parties, stove meetings
충남 보령의 영보정(永保亭) 제영시(題詠詩) 연구
구본현 ( Bon Hyeon Gu )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2012] 제20권 327~362페이지(총36페이지)
충남 보령의 水軍節度使營 성내에 있던 영보정은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하여 수많은 제영시의 창작 배경이 되었던 곳이다. 좁은 포구를 통해 밀려든 淺水灣의 바다가 둥근 호수 모양을 이루고, 그 주변으로 산봉우리들이 연이어 펼쳐지는 지세 때문에 영보정 일대는 산, 강, 호수, 바다의 모든 풍광을한데 지닌 기이한 경관을 자랑하였다. 영보정의 명성은 조선 전기 朴誾의 제영시 덕분에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박은이 지은 <營後亭子> 다섯 수가 영보정 경관의 특징인 ``기이함``을 온전히 담아낸 典範으로 인식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후 박은 시의 뛰어남을 칭송하거나, 그 내용을 용사 또는 점화하는 영보정 제영시들이 다수창작되었다. 한편, 李安訥은 박은의 뒤를 이어 ``奇異``를 특징으로 하는 영보정 제영시를 지었으나 ``難澁``에 빠지는 병폐를 보였고, ...
TAG 충남 보령, 영보정, 永保亭, 제영시, 題詠詩, 기이, 奇異, 박은, 朴誾, 이안눌, 李安訥, 이춘영, 李春英, 양경우, 梁慶遇, 정래교, 鄭來僑, Boryeong[보녕, 保寧] city, Chungnam[충남, 忠南] province, Yeongbojeong, Recitative Poems, [jeyeongsi], Bak Eun, extraordinary, Yi An-nul, Yi Chun-yeong, Yang Gyeong-wu, Jeong Rae-g
도봉산(道峯山) 한시(漢詩) 연구(硏究)
안순태 ( Soon Tae An )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2012] 제20권 373~399페이지(총27페이지)
근대 이전 도봉산은 서울의 산이 아니었다. 도성에서 가깝지도 않았을뿐더러 金剛山과 같은 名山처럼 일부러 찾아 나설 만큼 볼거리가 많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 않은 문인들이 도봉산을 찾아 시문을 남겼는데, 본고에서는 도봉산을 두고 지은 名篇을 중심으로 한시에 드러나는 도봉산의 공간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였다. 도봉산이 지니는 다양한 공간적 함의를 살피기에 앞서 劉希慶과 朴世堂이 도봉산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 도봉산을 두고 지은 시들을 살폈다. 유희경은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고 도봉산에서 시묘살이를 하면서 도봉산과 인연을 맺었고 南彦經을 도와 도봉서원을 건립했으며 만년에 도봉산에 깃들어 살다가 죽어 도봉산에 묻혔다. 한편 박세당은 수학기에 도봉산과 인연을 맺은 이후 수락산 西溪에 머물면서 도봉산 밖에서 도봉산을 애호하였다. 고려 시대부터 도봉산은 여러 佛刹...
TAG 도봉산, 道峯山, 도봉서원, 道峯書院, 조광조, 趙光祖, 불가(佛家)의 도장(道場), 도맥(道脈) 계승의 산실(産室), 일상적 공간, 추억의 공간, 한양(漢陽)의 지표(指標), Dobong Mountain[道峯山], Dobong Seowon, Cho Kwangjo, spiritual place of Buddhism, cradle of inheriting moral doctrine, daily space, sign of Seoul
남명시(南冥詩)에 구현된 그의 정신세계
변종현 ( Jong Hyun Byun )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연구 [2012] 제20권 163~198페이지(총36페이지)
남명 조식(1501∼1572)은 세상에 나아가 공업을 이룩하기보다는 도를 구하여 德化를 이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였고, 항상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벼슬에 대한 꿈을 단념하고 실천 유학에 힘쓰면서 인재를 교육하며 王道政治가 구현되기를 꿈꾸며 살았다. 그리고 은일지사들이 민생과 국정을 외면하고 獨善을 일삼는 데 반해 남명은 국정을 적극 비판하기도 하고 민생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남명의 사상은 수양론에 치중되어 있다. 남명은 성리에 관한 이론을 전개 하기보다는 자신의 심성을 잘 수양해 덕성을 함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남명은 만년에 敬과 義를 강조하면서, 안의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敬이고, 밖의 일을 결단하는 것은 義라고 하였다. 남명 사상의 요체는 <神明舍圖>에 들어 있는데, 이...
TAG 왕도정치, 王道政治, 수양과 성찰, 修養과 省察, 영사시, 詠史詩, 현실인식, 영물시, 詠物詩, 선비정신, 도학시, 道學詩, 자기 성찰, Politics of Kingship, Development and Introspection, Youngsasi, Awareness of Reality, Youngmulsi, Mind of Classical Scholar, Dohaksi, Self-introspection
성호(星湖) 이익(李瀷)의 시문학(詩文學) 연구(硏究)
김동준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작가연구 [2012] 제16권 5~51페이지(총47페이지)
남명 조식(1501∼1572)은 세상에 나아가 공업을 이룩하기보다는 도를 구하여 德化를 이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였고, 항상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벼슬에 대한 꿈을 단념하고 실천 유학에 힘쓰면서 인재를 교육하며 王道政治가 구현되기를 꿈꾸며 살았다. 그리고 은일지사들이 민생과 국정을 외면하고 獨善을 일삼는 데 반해 남명은 국정을 적극 비판하기도 하고 민생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남명의 사상은 수양론에 치중되어 있다. 남명은 성리에 관한 이론을 전개 하기보다는 자신의 심성을 잘 수양해 덕성을 함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남명은 만년에 敬과 義를 강조하면서, 안의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敬이고, 밖의 일을 결단하는 것은 義라고 하였다. 남명 사상의 요체는 <神明舍圖>에 들어 있는데, 이...
회와(悔窩) 안중관(安重觀)의 삶과 시
이종묵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작가연구 [2012] 제16권 53~81페이지(총29페이지)
남명 조식(1501∼1572)은 세상에 나아가 공업을 이룩하기보다는 도를 구하여 德化를 이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였고, 항상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벼슬에 대한 꿈을 단념하고 실천 유학에 힘쓰면서 인재를 교육하며 王道政治가 구현되기를 꿈꾸며 살았다. 그리고 은일지사들이 민생과 국정을 외면하고 獨善을 일삼는 데 반해 남명은 국정을 적극 비판하기도 하고 민생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남명의 사상은 수양론에 치중되어 있다. 남명은 성리에 관한 이론을 전개 하기보다는 자신의 심성을 잘 수양해 덕성을 함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남명은 만년에 敬과 義를 강조하면서, 안의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敬이고, 밖의 일을 결단하는 것은 義라고 하였다. 남명 사상의 요체는 <神明舍圖>에 들어 있는데, 이...
국포(菊圃) 강박(姜樸)의 시세계(詩世界)
여운필  한국한시학회, 한국한시작가연구 [2012] 제16권 83~130페이지(총48페이지)
남명 조식(1501∼1572)은 세상에 나아가 공업을 이룩하기보다는 도를 구하여 德化를 이룩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인식하였고, 항상 나라를 걱정하고 백성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살았다. 그는 일찍부터 벼슬에 대한 꿈을 단념하고 실천 유학에 힘쓰면서 인재를 교육하며 王道政治가 구현되기를 꿈꾸며 살았다. 그리고 은일지사들이 민생과 국정을 외면하고 獨善을 일삼는 데 반해 남명은 국정을 적극 비판하기도 하고 민생의 고통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남명의 사상은 수양론에 치중되어 있다. 남명은 성리에 관한 이론을 전개 하기보다는 자신의 심성을 잘 수양해 덕성을 함양하는 데 힘을 기울였다. 남명은 만년에 敬과 義를 강조하면서, 안의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敬이고, 밖의 일을 결단하는 것은 義라고 하였다. 남명 사상의 요체는 <神明舍圖>에 들어 있는데, 이...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