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발행기관
간행물  
발행연도  
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AND 간행물명 : 백제문화503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사비기 백제 왕릉의 새로운 인식 -익산 쌍릉(대왕릉)을 중심으로-
이문형 ( Lee Moon Hyou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1권 5~37페이지(총33페이지)
일제강점기 일제는 식민지 통치를 합리화하기 위해 우리나라 전국에 산재한 수 많은 유적을 파 헤쳤다. 100년이라는 한 세기가 흐른 지금, 당시 조사되었던 많은 유적들이 우리나라 학자들의 손을 거치면서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는데 익산 쌍릉은 그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익산 쌍릉은 오금산(해발 180m) 서쪽 능선 말단부 낮은 구릉에 2개(대왕릉·소왕릉)의 원형분이 남-북 방향으로 180m 떨어져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다. 2017년 대왕릉의 재조사를 통해 백제 사비기 왕릉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자료와 함께 일제 강점기 조사 후 관대 위에 놓은 목함(木函) 내부에서 한 사람 개체분의 유골이 수습되었다. 유골의 자연과학적인 분석 결과 고령의 남성으로 확인되었으며, 연대측정결과 백제 제30대 무왕에 가깝다는 결과도 발표되었다. 본 논문은 쌍릉과 관...
TAG 백제, 사비시기, 익산쌍릉, 무왕, 대왕릉, 횡혈식석실, 판축, 수릉, Baekje Kingdom, Sabi period, Twin Royal Tombs in Iksan, King Mu, tunnel stone chamber tombs, big royal tomb, Banzhu, 版築, tomb for life, 壽陵
2~4세기 곡교천 유역 묘제 변천과 집단의 동향
조성윤 ( Seong-yoon Cho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1권 39~84페이지(총46페이지)
본고에서는 2~4세기 곡교천 유역 내 분묘와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과 편년을 시도하였고, 이를 통해 묘제의 변천과 분묘 축조집단의 동향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분석 결과, 묘제의 변천 과정을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1단계(단경호-원저발-유개대부호)는 2세기 중엽, 2단계(단경호+평저발)는 2세기 후엽~3세기 후반, 3단계(단경호+평저발+원통형토기)는 3세기 후반~4세기 전반으로 설정하였다. 곡교천 유역에서는 2세기 중엽 이후 중류역 북안의 용두리 진터 일대에서 분묘 축조집단의 존재가 확인되었고, 3세기 전반 이후에는 용두리 진터에서 밖지므레 일대로 분묘 축조집단의 확대 내지는 분화가 일어나는 모습을 예상할 수 있었다. 또한 3세기 중엽 이후 밖지므레 집단은 대규모 분묘군을 조영한 집단으로 성장한다. 분묘군 내에서는 집단 내 위계 구조가 ...
TAG 곡교천, 중류역, 2~4세기, 원삼국, 마한, 주구토광묘, 밖지므레 유적, Gokgyo-river, middle basin, 2nd century to 4th century, Mahan, Proto-Kingdoms, Jugu togwangmyo, Bakjimeure site
공주 반죽동 추정 대통사지 발굴조사 내용과 성과
조원창 ( Cho Weon Cha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5~30페이지(총26페이지)
공주시 반죽동 197-4번지 유적은 2018년 1월 15일부터 53일간에 걸쳐 발굴조사가 진행되었다. 해당 지 역의 남동쪽으로 약 150m 떨어진 지점에는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되는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으로 130m 떨어져서는 금강의 지류인 제민천이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다. 조사지역은 한옥 신축사업과 관련하여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결과 구지표면으로 추정되는 4개의 층위가 검출되었고, 이 중 Ⅴ층은 해발 19.8~20.1m로서 백제 웅진기에 조성된 대지조성토로 파악되었다. 그리고 18.0~19.8m까지는 모래층이 조사되었고, 그 아래층은 암반층으로 확인되었다. 각 층위에서는 백제시대 유물이 다양하게 출토되었다. ‘대통’명으로 보이는 인각와를 비롯해 지두문 암막새, 유단식 암막새, 연화문 수막새, 연목와, 부연와, 소조상, ...
TAG 대통사지, 기와, 토층, 폐와무지, 발굴조사, Daetongsa temple site, Roof tile, Soil Layer, Tile dump, Excavation Survey
백제(百濟) 대통사(大通寺)의 위치에 대한 시고(試考)
서정석 ( Seo Jeong Seo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31~53페이지(총23페이지)
대통사는 백제 웅진기의 대표적인 사찰이자 寺名과 寺域을 알 수 있는 最古의 백제 사찰이다. 그러한 대통 사의 창건에 대해서는 『삼국유사』에 간단한 설명이 붙어있다. 따라서 백제 성왕 때에 공주시내에 대통사가 창건되어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위치가 어디이고, 어떠한 구조로 되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웅진 천도 직후에는 濟民川 동쪽이 서쪽보다 먼저 개발되었을 터인데, 동성왕 20년(498)에 웅진교를 가설하는 것을 보면 제민천 동쪽은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르렀고, 그 이후에는 제민천 서쪽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대통사는 웅진교 서쪽에 자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침 최근 반죽동 197-4번지 일대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대통사와 관련된 것으로 믿어지는 많은 양의 유물을 수습하였는데, 그런 ...
TAG 대통사, 웅진교, 반죽동, 양나라, 당간지주, Daetongsa Temple, Woongjingyo Brige, Banjukdong, Liang Dynasty, 梁나라, Dangganjiju, Flag Pole Supporting Rocks
공주 반죽동 출토자료로 본 백제 대통사의 위상
李炳鎬 ( Lee Byongho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55~89페이지(총35페이지)
이 글은 공주 반죽동 197-4번지와 그 주변에서 출토된 기와 및 소조상 등 출토유물을 분석하여, 그러한 유물들이 기존 백제 사원 연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검토하기 위해 작성되었다. Ⅱ장에서는 반죽동 일대에서 출토된 유물을 소개하고 기술적 특징을 검토했다. 반죽동 출토 와당은 문양의 차이에 따라 원형돌기형과 판단융기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양자는 와당을 성형하는 방식이나 수키와를 접합하는 기술이 약간 다르다. 암막새의 경우 指頭文과 先端 有段式, 일반적인 암키와가 암막새로 轉用된 것 등 3형식이 있다. 공주 지역에서 처음 발견된 소조상은 소형 파편으로 적갈색을 띠며 태토에 모래가 섞이고 뒷면이 평평하다. 심목을 사용한 흔적이 있고 머리와 몸통을 따로 제작하여 접합했다. 이곳에서는 ‘大通’이 날인된 문자기와, 무령왕릉 벽돌과 동일한 문양전, ‘大通之寺...
TAG 瓦當, 암막새, 塑造像, 塔內塑像, 興輪寺址, 飛鳥寺, roof-end tiles, concave roof-end tiles, clay-molded objects, internal clay figurines, the site of Heungnyunsa Temple, Asukadera
백제 웅진 도성기의 지형경관
이홍종 ( Lee Hong-jong ) , 안형기 ( Ahn Hyong-ki ) , 조보람 ( Cho Bo-ram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91~119페이지(총29페이지)
본고에서는 공산성 주변과 제민천 주변의 고지형을 분석한 후, 공산성 주변의 유적 분포를 통해 백제 웅진 도성기의 지형경관을 추정해 보고자 하였다. 한성백제의 도성 경관, 공주, 부여, 그리고 세종 나성리유적은 ① 하천 본류에 위치 ② 기원전 2세기 전후에 형성된 충적단구 ③ 충적단구는 하천을 이용한 물류집하, 운송 혹은 교통의 요지로 이용 ④ 충적단구 옆 독립구릉 혹은 산지와 연결된 돌출된 구릉이 존재하며 이곳을 성으로 활용 ⑤ 구릉과 충적단구 사이 하도의 흔적 등의 유사한 지형조건을 갖추고 있다 풍납토성은 자연제방, 몽촌토성은 독립된 구릉에 입지한다. 두 토성 사이는 커다란 단구가 존재하는데, 퇴적 및 침식작용에 의한 평탄화가 넓게 이루어져 있어 선착장, 교역품 관련 각종 시설물과 이를 위한 집단 취락 등이 입지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다. 나성...
TAG 충적지 고지형, 백제 도성, 공산성, 나성리유적, 웅진천도, 지형경관, Alluvial terrain, paleogeomorphology, Baekje capital, the Gongsanseong fortress, the Naseongri site, Capital relocation to Ungjin, Landscape
성왕(聖王)의 대통사(大通寺) 창건(創建)과 량(梁) 무제(武帝)
蘇鉉淑 ( So Hyunsook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121~141페이지(총21페이지)
『삼국유사』에 의하면, 웅진의 대통사는 신라 법흥왕이 양 무제를 위해 양 대통 원년, 즉 527년 건립했다. 그런데 이 기록은 당시 웅진 지역이 백제의 도성이라는 역사적 사실과 부합하지 않아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했다. 심지어 ‘웅진 대통사’의 존재 여부조차 부정되기도 했지만, 최근 대통사지로 전해지고 있는 공주시 반죽 동에서 또다시 ‘大通’銘 와당이 정식 발굴됨으로써 백제 대통사의 존재가 확실해졌다. 본고는 그동안 대통사 창건과 관련해 많은 의문을 불러 일으켰던 세 가지 문제, 즉 연호를 채택한 사찰 이름의 가능 여부, 창건 시기, 창건 목적 등에 대해 중국의 사례를 통해 그 해답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먼저 寺名의 경우, 6세기 전기 북위 도성 낙양에서 황제의 연호를 채택한 景明寺와 正始寺의 존재를 확인 함으로써, 양 무제의 연호를 채택한 대통사의 ...
TAG 대통사, 大通寺, 백제, 百濟, 성왕, 聖王, 양무제, 梁武帝, 전륜성왕, 轉輪聖王, Daetongsa Temple, Baekje, King Seong, Emperor Wu of Liang Dynasty, Cakravartin King
백제 성왕과 대통사 - 대통사지의 역사적 의미 -
노중국 ( Noh Choong Kook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141~157페이지(총17페이지)
대통사는 527년 백제 성왕에 의해 세워졌다. 최근 발굴조사에 의해 백제 유물이 출토된 공주시 반죽동의 대통사지가 대통사가 세워진 곳임이 밝혀졌다. 성왕은 “백제를 다시 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아버지 무령왕의 뜻을 이어받고, 양나라 무제가 동태사를 건립하여 불교치국책(佛敎治國策)을 편 것을 본받아 새 정치를 펴기 위해 대통사를 세웠다. 대통사는 한국고대 사찰 가운데 창건 주체, 시기, 위치, 목적을 알 수 있는 가장 빠른 사찰이어서 한국고대 불교사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자료가 된다. 따라서 문화재청과 공주시는 대통사지의 전모를 밝히기 위한 체계적인 학술발굴을 해야 한다.
TAG 대통사, 동태사, 양 무제, 불교치국책, 새 정치, Daetongsa temple, Tongtai temple, Emperor Wu of the Liang dynasty, a policy of governing the country using Buddhism, new politics
평안시대(平安時代)의 예(穢) 관념과 공간
김은정 ( Kim Eun-ju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159~183페이지(총25페이지)
본 논고의 목적은 고대 일본사회에서 穢 관념의 실태를 공간이라는 관점을 통해 해명하는 데 있다. 고대 일본사회에서 부정 관념의 일종인 穢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존재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어떠한 사물과 현상에 대해 부정하다는 가치를 부여한 행위 그 자체가 갖는 보편성이었다. 실제로 부정한 것으로 인식된 사물과 현상에서 보편성은 찾아 볼 수 없으며, 그것은 각 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양성된 가치 관에 의해 결정된 것이었다. 養老율령의 시행세칙으로 9세기에 편찬된 式에는 부정 관념의 일종인 穢가 등장한다. 이 穢에 따르면 인간 과 동물의 죽음, 출산, 피, 육식, 화재 등은 부정한 것이었으며, 이러한 것들을 접촉한 사람은 신성한 존재인 神과 접촉할 수 없었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고대 일본에서 式이 편찬되기 이전 즉, 奈良시대에는 이러한 ...
TAG 不淨, , 천황, 평안경, 22社, 보편성, 역사성, sense of impurity, Kegare, the Emperor, Heian-kyo, 平安京, 22 shrines, universal sense, historicity
백제 유민(遺民)인가 신라 이민(移民)인가? - 련운항(連雲港) 토돈석실묘군(土墩石室墓群) 묘주(墓主)들의 신분에 대한 재해석 -
장학봉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9] 제60권 183~197페이지(총15페이지)
강소성(江蘇省) 연운항시(連雲港市) 경내에 있는 현존하는 ‘토돈석실(土墩石室)’유적은 고고학계에서 그 성격이 춘추 오(吳)나라의 군사시설 이라는 설에서 당나라의 무덤이라는 설로 바뀌었다. 단 그러한 ‘토돈석실묘’는 동시기적이나 통시적으로 비교하더라도 매우 독특한 존재이다. 필자는 구고(舊稿)에서 그 묘주(墓主)의 신분이 당나라 때의 신라 이민(移民) 이라는 주장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관점에 대하여 한국의 학자는 ‘백제 유민(遺民)’설을 제기하였다. 본고에서는 ‘이민’과 ‘유민’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당대(唐代)의 역사 문헌에 근거하여 ‘토돈석실묘’의 묘주인은 어떤 돌발적인 정치사건에 의해 형성된 ‘유민’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쳐 사람들이 빈번하게 왕래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이민자(移民者)들이며, 이러한 집단(社會圈)는 분명히 문명 왕래의 결과 라고 보고자 한다...
TAG 당조, 唐朝, 토돈석실묘, 土墩石室墓, 통일신라시대, 이민사회, 移民社會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