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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294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고려 성종대 실시되었던 사면과 그에 수반된 은전에 대한 분석-특히 송(宋)·요(遼)의 책봉 및 동(東)·서(西)·경(京)의 행차 때 실시된 것들을 중심으로-
윤훈표 ( Yoon Hoon Pyo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4권 159~211페이지(총53페이지)
본 논문은 고려 성종대 실시되었던 사면과 그에 수반되었던 은전 등에 관하여 분석하였다. 제1대 군주였던 태조대부터 제6대였던 성종대에 이르기까지 총 16회의 사면이 실시되었다. 그런데 성종대에만 11회의 사면이 단행되었다. 그 이전에는 겨우 5회만 실시되었다. 성종을 제외한 다른 임금들은 재임 기간 중 평균적으로 단지 1회만 단행한 셈이다. 더불어 그에 수반되었던 은전도 매우 풍성한 편이다. 이렇게 전임 국왕들보다 자주 사면을 실시했던 이유를 밝히는 것이 본 논문의 기본 목표이다. 사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속하는 것이 동기다. 무슨 이유로 사면을 실시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기 때문이다. 성종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즉 전임 임금들이 내세웠던 동기뿐만 아니라 새로운 경우들을 추가시켰다. 새로 추가되었던 것들 중에는 중국의 송, 거란으로부터 冊封을 ...
TAG 성종, 사면, 은전, 책봉, 서경, 동경, King Seongjong, amnesty, special faver, investiture, Seokyong(Western Capital), Dongkyong(Eastern Capital)
서산 정석해의 민족운동과 민주화운동
이기훈 ( Lee Ki Hoon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4권 213~238페이지(총26페이지)
정석해(1899~1996)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신앙인으로 생활하면서도, 어린 시절부터 한학에 대한 소양을 쌓으면서 지사로서의 태도를 갖추었다. 또 중등학교 재학 시절 독립운동가와 교류하며 강한 민족의식을 지니게 되었다. 연희전문 문과 2학년 재학 중에 3·1운동을 맞이한 정석해는, YMCA 간부로서 만세 시위에 참여하고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배포하는 등 시위의 확산에 기여했다. 3·1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간 정석해는 김동평이 주도한 비밀 조직에서 무기의 반입, 국내 연락, 요인 호위 등 만주와 국내의 운동 조직을 연결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목숨을 걸고 수행했던 이때의 민족운동 경험은 이후 해방 이후 현실 참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상하이를 거쳐 유럽에 유학하는 동안에도 흥사단과 유학생 모임 활동을 지원하는 등 민족운동에 대한 지원을 ...
TAG 정석해, 민족운동, 3·1운동, 민주화운동, Tseung Suk Hai, Nationalism movement, March 1st movement, Democracy movement
정석해의 교유관계와 연희대학교
도현철 ( Do Hyeon Chul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4권 239~275페이지(총37페이지)
본고는 정석해의 교우 관계와 교육 행정 활동을 살펴봄으로써, 정석해 개인뿐만 아니라 해방 직후부터 1960년에 이르기까지 연희대학의 역사와 대학 교수의 현실 인식과 사회적 실천 활동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정석해는 동료 교수들 간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사적인 유대감과 함께 학교와 사회의 대소사를 논하고 진실의 구현, 정의의 실천에 앞장섰다. 그는 동료 대학교수들과 4·19 혁명과 6·3 한일협정 반대 시위 그리고 연세대학의 학원 자율화, 민주화에 참여하였다. 특히 그는 연희대학의 학원의 자율화와 민주화를 추구하여 권위적이고 비합리적인 태도를 수정해갔다. 그의 이러한 지식과 행동은 연세대학의 학교 운영이나 후배 교수의 교육 연구 활동에 큰 영향을 주었다.
TAG 정석해, 김윤경, 지식 네트워크, 연희대학, 학원 민주화, Tseung Suk Hai, Kim Yoon-Kyeong, Knowledge Network, Yonhi University, democratization of academy
여말선초 ‘성리학’ 연구의 논점들
이상민 ( Lee Sang Min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4권 279~310페이지(총32페이지)
본 논문은 여말선초 성리학 연구에 대해 검토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 본고에서는 기왕의 ‘성리학’ 연구에서 나타난 논점들을 나름대로 정리하고, 이들 각각의 문제제기들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기왕의 연구들에서는 성리학이 여말선초의 역사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와 같은 입장에 입각하여 1) 성리학은 이 시기 주류 사상의 변화를 야기한 중요한 요인이며, 2) 고려 말 정치세력들을 중심으로 성리학은 한 차례 분화되었으며, 3) 이들은 조선 건국 후 융합되어 16세기까지 질적인 변화 없이 한반도에 전파되었다는 입장이 정착되었다. 다만 이후의 연구들에서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었는데, 이는 1) 고려 말 정치·사상적 변화는 성리학 성리학자들과 무관하며, 2) 이 시기에 사상적 분화는 일어나지 않았으며, 3) 성리학은 15...
TAG 여말선초, 성리학, 정도전, 이색, 삼강행실도, 소학, 불교, 척불론, 화이, 중화, Joseon, Koryo, Neo-confucianism, Jeong Do Jeon, 鄭道傳, Lee Saek, 李穡, Illustrated Guide to the Three Relations(Samgang haengsil-to, 三綱行實圖), Xiaoxue(Sohak. 小學), Chan Buddhism, anti-Buddhism argument
조선후기 중화의식의 변용과 그 성격 -조선중화의식의 실상에 대하여-
양양 ( Yang Yang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3권 5~32페이지(총28페이지)
17세기 명청교체 이후 전통적 중화질서가 무너짐에 따라, 일본을 비롯된 일부 동아시아 국가들은 점차 전통적 중화의식에서 탈피하여 독자적인 자국 중심의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은 오히려 중화 문명을 전유함으로써 스스로 중화의 계승자가 되는 길을 택하였다. 조선후기의 이러한 사상적 특징은 20세기 초반에 일본 식민학자와 한국 민족주의 학자들에 의해 사대적, 정체적인 것으로 규정되었으며, 심지어 조선 망국의 원인으로도 지목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에 이르러 국가민족의식의 발전에 따라 한국학계에서는 구래의 식민사관을 바로잡으면서 새로운 역사 인식을 발흥시키기 시작하였다. 아울러 일부 학자들은 조선후기의 중화의식으로부터 후대 민족주의의 뿌리를 찾으려고 시도하기도 했으며, ‘조선중화주의’를 둘러싸고 한민족의 주체성이나 진보성과 관련된 문제들을 ...
TAG 조선후기, 중화의식, 사상적 근원, 변용 양상, Late Joseon Dynasty, Chinese Ideology, Ideological roots, Characteristics of transfiguration
러일전쟁 이후 일본육군의 팽창과 징병(徵兵) 관구(管區) 변화
신효승 ( Shin Hyo Seung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3권 33~62페이지(총30페이지)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군대 해산 이후 무장저항은 대한제국 군인을 비롯하여 민중까지 아우르는 국권회복운동으로 발전하였다. 1910년 강제 병합 이후에는 독립운동으로 구체화하여 국외 독립군기지 건설 등 국외까지 운동범위를 넓혔다. 민족의 저항 의지는 일본의 무력에 대항하면서 보다 대상과 범위가 명확해졌고, 활동 역시 구체적으로 발전하였다. 그 중심에는 일본의 식민지배와 함께 일본군이 기반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은 대한제국을 보호국화하였지만, 지배력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당시 국제 정세와 일본 국내 상황은 대한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에는 불충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육군은 일본 내 주도권 확보를 위해 대한제국을 영향력 아래에 두고자 하였다. 하지만 대한제국을 통한 일본육군의 주도권 확보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사실...
TAG 일본군, 징병 관구, 2개 사단 증설, 일본육군, 일본군 군비확장, Japanese Army, Draft District, Two more division for Japanese army, Expansion of army
1960~70년대 초 괴산가축사양조합의 협동조합운동 연구
김소남 ( Kim Sonam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3권 63~111페이지(총49페이지)
본 논문은 1960년대 충북지역에서 메리놀회 사제들이 전개하고 추동한 신협운동과 1968년 1월 괴산지역에서 장제남 신부에 의해 괴산가축사양조합이 설립되는 배경 및 과정, 1960~70년대 초 중앙목장과 고마목장, 백양목장과 매전목장의 축산사업과 특징, 소수가축신협과 매전가축신협, 고마가축신협 등 목장이 소재한 농촌부락에서 소대부를 중심으로 한 가축신협의 설립과 초기 운영내용 등을 살펴보았다. 1968년 1월 장제남 신부는 괴산성당의 주요 평신도들과 함께 소수면 입암리에서 괴산가축사양협동조합을 창립하였으며, 미국의 메리놀외방선교회와 한국가톨릭구제회, 영국의 옥스팜재단(OXFAM) 등으로부터 외원자금을 끌어와 중앙목장과 매전목장 등을 설치하였다. 당시 괴산가축사양조합은 괴산성당의 공소가 있는 농촌부락들에서 마을지도자들의 요청에 기반하여 목장들을 세우...
TAG 괴산가축사양조합, 메리놀외방선교회, 협동조합운동, 가축신협, 중앙목장, 농민교육원, Goesan Livestock Rearing Co-operative, America’s Maryknoll Foreign Missons Society, Co-operative Movements, Livestock Credit Unions, Joongang Ranche, Peasant Education Centers
한초(漢初) 출토(出土) 편목(篇目)의 특징과 그 의의
장호영 ( Chang Hoyoung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3권 113~143페이지(총31페이지)
先秦秦漢시기의 문헌은 대부분 篇단위로 유통되었다. 戰國時代에 이르러 문헌의 수집은 수집자의 관심사나 필요를 중심으로 수집되었고, 『上博楚簡』 등의 자료에는 이미 유사한 주제의 문헌이 篇단위 이상으로 묶여있었을 가능성이 논의된다. 또한 秦의 통일 직전 편찬된 『呂氏春秋』는 편찬 당시 이미 여러 篇으로 이루어진 구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러한 배경의 연장선에서 漢初의 篇目은 보다 큰 문헌의 구성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당시 篇目은 아직 성숙하지 못했으며, 이는 銀雀山漢簡孫子兵法에 대한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해당 篇題木牘을 통해 孫子의 대표저작 13편을 다른 저작과 구분하며 당시 독자의 중층적 인식을 확인할 수 있다. 銀雀山漢簡守法守令等十三篇은 체계를 갖춘 다원적 문헌의 편집본으로 당시 유통된 문헌 구성중 하나로 보인다. 다른 예시인 阜陽漢簡의...
TAG 銀雀山漢簡, 阜陽漢簡, 篇目, 目錄, 孫子兵法, YinQueShan Han bamboo slips, FuYang Han bamboo slips, Lists of chapters
1930년대 상해시정부(上海市政府)의 공영집단주택(公營集團住宅) 관리(管理) -평민주소(平民住所)를 중심으로-
유현정 ( Yu Hyun Jung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3권 145~180페이지(총36페이지)
이 논문은 근대 상하이에서 붕호구의 팽창 과정과 그 해결책으로 공공 임대주택인 평민주소를 설치, 운영하는 과정에서 상하이시정부, 조계 당국, 상하이시민들의 대응 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상하이가 근대 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주거 공간이 상품화되었고, 임대료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수많은 도시 하층민들은 도시 곳곳에서 棚戶區를 이뤄 거주하였다. 도시미관, 치안, 위생 등을 이유로 붕호구는 租界와 華界의 시정 당국 모두에게 단속 대상이었으나, 그 처리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상하이시정부는 붕호민의 이주대책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平民住所’는 상하이시정부가 붕호민의 이주를 위해 건설한 공영 집단 주택이다. 평민주소 건설은 본래 南京國民政府가 民生사업으로서 입안한 사업이었다. 비록 국가 재정문제로 인해 지방 정부에 이관했을지라도, 이 사업은 중앙 정부의 근대 ...
TAG 평민주소, 붕호구, 주택 정책, 민생, 신생활운동, Pingminzhusuo, shantytown, housing policy, public welfare, the New Life Movement
전후 홍콩식민정부의 중의학(中醫學) 정책과 홍콩 화인(華人) 사회 -1948~1961년 중의약 관련법 개정을 중심으로-
김민서 ( Kim Minsuh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9] 제43권 181~226페이지(총46페이지)
홍콩식민정부는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 통치를 원칙으로 화인 사회 문화에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制定法과 法院을 통해 사회를 통제해 나간다. 그 과정에서 ‘과학’과 ‘문명’ 표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홍콩의 토착적 관습들은 점차 침식된다. 그간의 홍콩 中醫學**에2)대한 이해와 연구도 이와 같은 관점을 공유한다. 최초 근대식 병원으로 세워진 중의 전문병원인 東華醫院내에서 전통의 중의학은 서양의학으로 대체되거나 대폭 축소되었고, 중의사는 사망증명서 발급의 권리가 없었으며, 특정 전염병과 助産, 齒科, 眼科라는 주요한 진료 과목을 잃었던 점이 부각되었다. 하지만 소위 ‘서양의학 패권’ 논리만으로는 홍콩의 중의학, 특히 전후 시기의 의료위생제도 바깥에서의 중의학의 지속성과 활발함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인구의 급증과 정치적 불안 등 변화하는 전...
TAG 香港史, 中醫學, 中醫師, 中藥, 東華醫院, Hong Kong, Chinese Medicine, Chinese Herbalist, Tung Wah Hospitals, 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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