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욱 ( Dong Wook Kang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2007] 제11권 7~43페이지(총37페이지)
深齊 曺競燮 (1873-1933)은 우리 역사상 암흑기라 할 수 있는 일제침략기에 傳統 性理學的 世界觀을 바탕으로 밀려오던 외세의 文物에 抵抗하며 평생을 보낸 韓末 嶺南의 유학자이다. 심재는 한 스승을 모시고 꾸준히 정진하기보다는 의문이 나는 점이 있으면 그때그때 칠정을 구하는 형태의 수학을 하였다. 深齊는 자유분방하고 개방적인 태도로 어느 한 스승에게 배우기보다,당시 멍망이 있는 학자들에게 찾아가 두루 학문을 수학하였다. 심재가 慶尙 左道와 右道의 碩學들을 두루 찾아 執? 할 수 있었던 것은,그의 개방적인 태도와 더불어 지역적으로 좌도와 우도의 경계 지점인 昌寧을 중심으로 활동한 관계로 이들에게서 폭넓은 학문을 전수 받을 수 있었다. 심재는 학문적으로는 퇴계학맥을 따르는 선비들과의 사승 사우 관계를 밀접하게 맺고 있지만,남명학에 대한 관심도 남달랐다. 이...
임종진 ( Jong Jin Lim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2007] 제11권 45~72페이지(총28페이지)
韓末 영남의 성리학자인 深齋 曺兢燮의 수양론을 기본 주제로 삼고 있는 본고에서는 수양론을 단순히 修養에 대한 이론만을 지칭하는 개념으로국한시키지 않고 수양과 관련된 폭넓은 논의를 의미하는 말로 사용하고자한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하면서 심재의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면, 무엇보다도 먼저 철저하게 朱子-退溪의 학설을 계승하는 태도를 견지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심재가 理氣論이나 心性論 그리고 修養論 등 性理學과 관련된 체계적인 이론을 별로 남겨놓지 않은 이유를 유추해 보면, 이미 그러한 것과 관련된 先賢의 글이 충분히 있는데, 더 말한다는 것은 군더더기에 불과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둘째로는, 섬재의 마음[心]에 대한 분석이 그의 수양론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마음과 관련된 심재의 기본 입장은 통합과 균형의 논리를 토대로 해서, ...
강구률 ( Goo Youl Kang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2007] 제11권 73~99페이지(총27페이지)
이 논문은 深齊 曺競燮 의 詩世界의 諸樣相을 살펴보기 위해 기획되었다. 물론 그것은 深齊 생애의 흐름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 있다. 논의의 편의를 위해 深驚의 생애를 修學期, 暫隱期, 遊覺期, 退藏期등 4기로 나누고 그 각각의 시기에 특정적으로 나타나는 시세계의 특정을 추출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深齊 시세계의 제양상이 蘊蓄과 對備, 關心과 隱逸 ,그리고 遊覽과 歷史, 省察과 覺醒으로 특징을 지울 수 있었다. 첫 번째로는 自己完成을 위한 學問的 蘊蓄과 미래에의 쓰임에 對備한 노력의 면모를 들 수 있다. 두 번째 특정으로는 비록 시대적이고 숙명적인 요인으로 인해 강요된 은둔생활을 하였지만 여전히 현실 문제에 대해 일정한 관심을 소유하면서도 자기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하려는 隱逸의 모습을 지녔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은둔생활에서도 나름대로의 판단과 인식 ...
김진균 ( Jin Gyun Kim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2007] 제11권 101~122페이지(총22페이지)
深齊 曺競燮 (1873-1933)은 경학문장에서 우뚝하게 일가를 이루었다는 평을 받는다. 그는 근대적 변환을 우주의 큰 변고라 여기고 전통적 질서의 회복을 기대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초년에 관심을 가졌던 문장보다는 도덕을 수양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라 여겼다. 그렇다고 문장을 전혀 배제한 것은 아니고, 문장과 도덕을 함께 완성하는 방향으로 논리를 전개하였다. 참된 문장을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참된 도덕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도덕적 성취를 문장 성취의 전제로 여긴 것인데,그런 점에서 일반적인 文以載道論의 자장 안에서 미묘한 변주를 보인 것이다.
신승훈 ( Seung Hun Shin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2007] 제11권 123~149페이지(총27페이지)
심재는 전형적인 중세적 지성이다. 그러나 전형적이라 해서 전형적인 모습을 지키는 데에 그쳤던 것은 아니고, 시대의 변화와 위기의 상황에 맞게 대응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그의 대응이 자 과 講學의 방향이라고 해서 그를 격변기의 소극적인 지식인에 불과하다고 비판해서는 옳지 않다. 심재에게 국가가 이미 망하는 상황은 학자 개인의 힘으로는 돌이킬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평생을 바쳐 이루려고 했던 것은 ‘吾道’의 守護였다는 것을 이유로 그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전근대적이라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심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학문의 방향에서 충실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심재의 학문은 ‘通涉’과 ‘會通’이라는 두 가지 말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의 학문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그 경계를 넘나들며, 그 ...
권영호 ( Young Ho Kwon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2007] 제11권 153~193페이지(총41페이지)
농경사회에 기반을 두고 형성되고 전승된 세시풍속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소멸과 약화의 길을 걸었다. 그 결과 농촌에서조차 명절 중심으로 세시풍속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최근 들어 전통문화의 계승이라는 명제가 문화산업화라는 시대적 추세에 힘입고 있으나, 세시풍속은 그러한 분위기에서 비껴서 있다. 기실 세시풍속의 관광자원화는 원론적으로는 가능성이 크다고 볼 수 없다. 그렇지 못한 현실에는 세시풍속이 삶의 일상성과 현장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큰 요인으로 보인다. 이러한 점에서 경북지역 세시풍속의 바람직한 계승을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일은 긴요하다고 할 것이다. 경북지역 세시풍속의 전승으로 회복하고 사회변화에 알맞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교육현장에서 세시풍속을 체험하는 기회를 많이 갖는 것이 필요하고, 공동체적 성격이 두드러지는 세시풍속을 복원하고 보존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