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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502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조선후기 왜관요의 자원 수급
허현정 ( Heo Hyunjung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205~239페이지(총35페이지)
왜관요(倭館窯)는 임진왜란 이후 왜관에 설치되어 대마번(對馬藩)의 구청자기를 제작하였던 가마이다. 임진왜란 이후 왜관은 절영도에 설치된 뒤 두모포, 초량으로 이전되었다. 왜인구청등록의 기록을 살펴보면 두모포 왜관 때 처음으로 왜관요를 운영한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서 왜관요는 이전에 왜관 밖에 설치되었으나 이후 왜관 내부로 들어간 것으로 적혀있다. 대마번에서 개요를 요청하는 서계를 보내고, 이를 동래부사가 장계로 경상감사를 통해 예조로 보내며, 예조에서 이 개요를 승인하였을 때 비로소 왜관요가 운영되었다. 이 과정에서 대마번은 왜관요에서 사용될 도토와 약토, 땔감 등을 함께 구청하였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사기장 및 옹기장도 요청하여 왜관요에서 원활히 도자기를 만들 수 있도록 안배하였다. 자기를 제작하는 인원은 일본에서 구청한 조선인 사기장, 옹기장, 일꾼...
TAG 왜관요, 왜관요의 운영, 도토의 이동, 사기장, 일본 구청, Waegwanyo, Operation of Waegwanyo, The movement of Potter's clay, Potters of Joseon, Japanese Requested Porcelain
1876년 ‘개항’의 개념적 의미와 역사적 성격
전성현 ( Jeon Sung-hyun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241~280페이지(총40페이지)
개항이라는 용어는 1876년 이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조일수호조규, 이른바 강화도조약 체결과정에 비로소 사용된 새로운 용어였다. 그렇다면, 이 용어가 지닌 개념적 의미는 무엇일까? 이를 위해 개념사 연구방법론 가운데 하나인 ‘의미장’ 분석을 통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의미장 분석에 의하면, 개항은 만국공법에 기초한 조약에 의해 이루어졌다. 또한 자유로운 통상, 거주, 통행이 가능한 공간과 그에 따른 외교공간의 출현이 가능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의미는 1876년 개항을 통해 일부 관철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것은 뒤늦게 이루어지기도 했다. 그 의미는 개항의 개념 속에 지속되었던 것이다. 한편, 1876년 조선의 개항을 둘러싼 조일 간의 조규 체결과정을 살펴보면, 개항의 역사적 성격도 확인할 수 있다. 개항을 규정한 조규 등...
TAG 개항, 1876, 1407, 의미장, 조일수호조규(부록), 부산구조계조약, open port, the semantic fields, Joseon-Japan Treaty, Busan Port Concession Treaty
무형문화재 정책 변화에 따른 <동래 기영회>의 무형문화재적 가치
김형근 ( Kim Hyung-kun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281~320페이지(총40페이지)
본 논문은 무형문화재 정책 변화, 더 정확하게는 ‘지정 범주’의 확대로 인하여 그간 무형문화재로서 검토되지 않았던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고 있다. 국가무형문화재를 지정 관리하는 문화재청의 정책 변화에 따라 부산시 또한 향후 부산시무형문화재 신규 지정변화 필요성이 있다. 이에 ‘동래 기영회’를 하나의 샘플로 삼아 논의를 진행하였다. 지금까지 국가 및 시도에서는 전통적으로 공연 및 기능을 무형문화재로 삼아왔지만, 최근에는 전통지식, 구전전통, 관습 등의 범주가 유네스코의 영향으로 추가되었다. 본격적으로 최근의 국가무형문화재에서 신규로 지정된 종목들은 이 분야들이며, 향후에도 이 분야의 지정이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로 인하여 시도에서도 이러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하여 확대된 영역에 맞는 위원회 인적 구성과 예비 종목에 대한 리스트업(lis...
TAG 무형문화재, 부산시무형문화재, 기영회, 耆英會, 부산 동래, , , 생활 관습,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Intangible Cultural Heritages of Busan-city, Kiyounghoe, Dongnae in Busan, Kye, Life Practices
일제강점기 손진태 채록 부산지역 민요의 성격과 의의
박경수 ( Park Kyung-su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321~357페이지(총37페이지)
이 글은 일제강점기에 손진태(1900~1960년대 중반)가 조사, 채록한 부산지역민요 자료들을 여러 문헌에서 찾는 작업을 한 후, 이들 부산지역 민요 자료가 갖는 성격과 의의를 고찰하는 목적에서 진행된 것이다. 손진태가 조사, 채록한 부산지역 민요 자료는 ① 문예지 『금성』(1924. 1~2)에 ‘손중자(孫重子)’란 필명으로 발표된 14편, ② 김소운이 편찬한 『언문조선구전민요집』(1933)에 수록된 83편, ③ 미발표 유고 원고 수록 민요 자료 50편, ④ 민요론에서 인용된 민요 자료 17편 등으로 전체 164편이 된다. 손진태가 조사, 채록한 부산지역 민요는 대부분 1922년 8월부터 1931년 4월 이전까지 걸쳐 있다. 이들 자료는 당시 부산지역 민요의 전승 국면과 특징을 이해하는 데 매우 소중한 자료이며, 대부분 손진태가 직접 현장...
TAG 손진태, 부산지역 민요, 장소애, 장소성, 모심기 노래, 아리랑, 장타령, 각설 이타령, 민요 전사 방법, 동요, 부요, Sohn Jin-tai, Busan Folk Songs, Topophilia, The Placeness, Planting Oral Songs, Arirang, Jang-taryeong(i. e. Song of Markets), Gakseoli-taryeong(i. e. Song of Beggar), Folk Song Recording Method, Children's Oral Songs, Female Folk Songs
해방기 부산지역 음악단체의 활동과 음악극 창작
남영희 ( Nam Young-hee ) , 이순욱 ( Lee Soon-wook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359~412페이지(총54페이지)
이 글은 서양음악을 중심으로 해방기 부산음악사의 실상과 의미를 실증적으로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당시 부산지역에서 발간된 신문잡지 매체, 교우회지, 협회 기관지, 음악교재, 공연팸플릿 들의 일차문헌을 통해 음악단체의 조직과 활동, 음악매체의 발간, 노래운동과 음악극·한국오페라 창작활동을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해방기 부산음악사를 근대계몽기부터 축적해 온 부산의 문화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음악사회의 성장 동력을 구축한 시기로 새롭게 규정할 수 있었다. 해방기의 특징적인 현상인 좌우대립 양상은 지역 음악사회에서 뚜렷이 찾아보기 어려웠으며, 부산 음악인들은 다양한 단체를 결성하여 순수한 음악 활동을 추구하거나 교육, 음악회를 통한 사회적 기부 들의 사회 참여활동에 더 적극적이었다. 260명의 회원과 통영지부를 두었던 경남음악협회는 『음악주보』 발행, 학생...
TAG 해방기, 부산, 매체, 경남음악협회, 음악주보, 음악극, Liberation period, Busan, Media, Kyeongnam Music Association, Weekly music magazine Eumak Jubo, Musical drama
다층모형을 이용한 부산지역 중장년층의 정주의식에 미치는 영향요인 분석
문경주 ( Moon Kyung-joo ) , 장수지 ( Chang Su-jie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413~448페이지(총36페이지)
본 연구의 목적은 부산지역중장년층의 정주의식에 미치는 영향요인을 분석하고 그들의 정주의식을 제고할 정책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관련 선행연구와는 달리 개인수준의 요인과 지역수준의 요인이 포함된 다층화 데이터를 이용한 다층모형을 통해 부산지역의 중장년층의 정주의식에 미치는 개인요인과 지역사회 요인을 통합·분석하였다. 분석결과에 의하면, 부산지역 중장년층의 정주의식에 미치는 영향요인에 있어서 개인수준에서는 남성보다는 여성이, 주관적 계층의식이 높을수록, 연령이 높을수록 그리고 거주기간이 길수록 정주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지역수준에서는 인구증가율이 높고, 고령화비율이 높은 지역 그리고 문화 관련시설 인프라가 잘 갖추어지고 사회안전망 역할을 하는 사회복지예산의 비중이 클수록 정주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개인수준과 지역수...
TAG 중장년층, 정주의식, 다층모형, 지역사회, 에이징 인 플레이스, the middle-aged, settlement consciousnes, multi-level model, local community, Aging in place
주민등록인구와 추계인구의 차이와 그 함의 (1970-2016) -부산을 중심으로-
김대래 ( Kim Dae-rae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449~492페이지(총44페이지)
한국의 공식인구통계는 주민등록인구와 추계인구 그리고 인구센서스가 있다. 이 가운데 주민등록인구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추계인구이며 인구센서스는 가장 적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국가와 달리 지역차원에서는 이러한 인구통계 사이에 역전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러한 역전에 주목하여 부산의 추계인구와 주민등록인구의 차이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부산의 주민등록인구가 증가하는 국면에서는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많았고,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하는 국면에서는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적었다. 추계인구와 주민등록인구 사이에 역전이 나타난 것은 1989년이었다. 한편 두 계열의 인구통계에서 성비는 1988년이 전환점이었다. 크게 보아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클 때에는 추계인구에서 남자인구가 여자인구보다 많거나 같았고,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적을...
TAG 주민등록인구, 추계인구, 인구센서스, 부산, 성비, 전출입, residence population, population projections, population census, Busan, migration
근대 한국 전화번호부의 소장상황과 1924년판 부산 전화번호부 자료 해제
윤상길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20] 제39권 493~536페이지(총44페이지)
한국의 공식인구통계는 주민등록인구와 추계인구 그리고 인구센서스가 있다. 이 가운데 주민등록인구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추계인구이며 인구센서스는 가장 적게 나타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국가와 달리 지역차원에서는 이러한 인구통계 사이에 역전이 발생할 수 있는데, 그러한 역전에 주목하여 부산의 추계인구와 주민등록인구의 차이를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보았다. 부산의 주민등록인구가 증가하는 국면에서는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많았고, 주민등록인구가 감소하는 국면에서는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적었다. 추계인구와 주민등록인구 사이에 역전이 나타난 것은 1989년이었다. 한편 두 계열의 인구통계에서 성비는 1988년이 전환점이었다. 크게 보아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클 때에는 추계인구에서 남자인구가 여자인구보다 많거나 같았고, 추계인구가 주민등록인구보다 적을...
임진·정유재란기 동래 지역의 전황 -일본군의 주둔 동향과 조선의 대응을 중심으로-
김경태 ( Kim Kyong-tae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19] 제38권 1~39페이지(총39페이지)
이 논문에서는 임진·정유재란기 동래와 부산의 실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전쟁 기간 동안 현재의 부산 지역은 전쟁의 중심에 있었다. 조선에 상륙한 일본군은 최초 상륙 지점인 부산과 동래에 대규모의 성을 쌓고 침략의 기지로 삼았다. 이곳은 일본에서 오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과 일본군 병력 및 물자가 최초로 도착하는 장소이자, 조선에서 일본으로 가기 위해 거쳐야만 하는 창구가 되었다. 일본군은 믿을만한 책임자를 임명하여 이 지역을 관리했고, 이곳에는 항상 넉넉한 병력과 군량이 구비되어 있었다. 강화교섭이 시작되면서 조선 주둔 일본군의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이 지역은 주요 기지로서 유지되었다. 강화교섭의 실무 협상은 이곳에서 이루어졌고, 일본으로 파견된 명과 조선의 사신도 이곳을 거쳐 일본으로 향했다. 강화교섭이 결렬되자, 부산과 동래는 다시 전쟁 체제를...
TAG 임진왜란, 임진전쟁, 정유재란, 동래, 부산, 기장, 가덕, 왜성, 모리 요시나리, 毛利吉成, Imjin Waeran, Imjin War, Japan’s second Invasion(1597), Dongnae, Busan, Gijang, Gadeok, Waeseong(Japanese Fortress), Mori Yoshinari
임진왜란 이후 조(朝) · 일(日)간의 국내사정과 통신사 파견 -회답겸쇄환사(回答兼刷還使)파견을 중심으로-
김문자 ( Kim Moon-ja )  부산광역시사편찬위원회, 항도부산 [2019] 제38권 41~80페이지(총40페이지)
본고는 임진왜란 이후 1607년 제1차 回答兼刷還使를 파견한 朝·日간의 국내외 사정을 중심으로 살펴보았고, 이후 정기적으로 일본에 파견된 통신사 활동에 대해 검토하였다. 조선시대 후기 통신사가 파견된 목적과 배경은 시기별로 차이를 보이지만, 조선 국왕이 일본의 최고 통치자에게 보낸 ‘정치·외교사절’로 ‘선린우호’를 표방한 점은 동일했다. 특히 여기서는 일본 측이 조일 국교 문제를 조속하게 타결하려 했던 사정을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국내 권력 장악 과정과 연동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았다. 그 결과 1607년 회답겸쇄환사 일행은 조선 국왕의 회답 국서를 전달하면서 결국은 ‘명분 없는’ 전후 처리에 대한 매듭을 지었다는데 의의가 있었다. 또한 회답과 쇄환이라는 명분도 중요했지만 결국 일본의 무력에 대응하기 위해 파견되었던 이 일행은 정치·외교적인 사행...
TAG 임진왜란, 통신사, 회답겸쇄환사, 에도막부, 정치외교사절, Imjin War, mission, Reply and Prisoner Repatriation Envoy, Edo Bakuhu, political and diplomatic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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