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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한국체육사학회 AND 간행물명 : 체육사학회지578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인천의 레슬러 ‘임배영(林培榮)’의 삶
조준호 ( Cho Jun Ho ) , 박규태 ( Park Kyu Tae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9] 제24권 제1호, 31~53페이지(총23페이지)
본 연구는 레슬러이자 지도자이며 행정가로, 초기 인천레슬링과 경기도체육의 기틀을 세운 임배영에 주목하였다. 연구목적은 그의 삶을 재조명하여 체육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하였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임배영은 인천에서 스승 김석영을 만나 레슬링에 입문했으며 제2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둘째, 임배영은 지도자로서 천동문, 김제덕, 김화경, 최영길, 김문기 등 국가대표 선수 40여 명과 세계챔피언인 장창선 등 다수의 레슬러를 양성했다. 셋째, 임배영은 체육행정가로서 경기도체육회 사무국장 및 상임부회장으로 17년간 재직하며 경기도의 전국체전 3회 우승의 신화를 이끌었다. 그는 정치인이자 체육원로로서 활약했고 대한체육회 이사 및 인천체육인회 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국체육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한국 남자 핸드볼 전성기에 대한 고찰 - 1988 서울올림픽대회를 중심으로 -
천호준 ( Cheon Ho-jun ) , 김지훈 ( Kim Ji-hun ) , 최승아 ( Choi Seung-ah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9] 제24권 제1호, 55~71페이지(총17페이지)
본 연구는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남자핸드볼 국가대표 팀에서 주축으로 활동했던 참여자들의 구술을 통해 우리나라 남자 구기 종목 사상 첫 은메달을 획득하게 된 과정을 알아보는데 있다. 연구 참여자들의 반 구조화된 심층면담을 통해 참여자들의 과거 기억과 현재의 구술을 비교,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79년 유재충 감독이 국가대표 지도자로 부임하면서 우리나라 남자 핸드볼 전성기 준비과정이 시작됐다. 둘째, 우리나라 남자핸드볼은 아시아뿐만 아니라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핸드볼 발전에 기여했다. 셋째, 핸드볼 전성기를 부활시키기 위해서는 선수를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과 세계적인 경기 기술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 중요하다. 추가적으로 감독, 주장, 선수로 활동한 참여자들은 이 시기의 일을 비슷하거나 혹은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다. ...
한국레슬링의 1980년 모스크바올림픽대회 불참에 관한 연구
조준호 ( Cho Jun Ho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4호, 1~22페이지(총22페이지)
본 연구는 대한민국 레슬링의 모스크바올림픽대회의 도전과 불참의 과정을 살펴보고자 했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한민국 레슬링은 강한 훈련과 해외 전지훈련, 새로운 협회장 취임과 국가대표 선발전 등을 실시하며 모스크바올림픽대회의 금메달에 도전하였다. 둘째, 소련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최초의 올림픽대회 개최에 큰 주목을 받았고 이에 답 하듯 화려하고 웅장한 시설로 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소련은 대회직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며 무리수를 두었다. 셋째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레슬링은 모스크바올림픽에 도전했으나 결국 정부와 올림픽조직위는 미국과 동조하며 1980년 5월 17일, 최종 출전 불가방침을 내렸다. 이어 대한체육회는 국가대표 레슬러를 비롯한 선수단을 위로하기 위해 ‘위로의 메달’을 지급하였다. 이는 레슬러를 비롯한 올림픽 출전선...
한국 여자창던지기 이영선 구술사 연구
정범철 ( Chung Bum-chul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4호, 23~40페이지(총18페이지)
본 연구는 한국 여자창던지기 기록에 있어 큰 역할을 한 이영선의 활동과 업적을 구술과 경기기록사적 두 가지 측면으로 접근하여 한국체육사에 미친 영향을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에 대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등학교 시기, 그녀는 공 던지기를 시작으로 운동을 통해 꼭 성공하겠다는 강한 동기를 품었다. 중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창던지기 선수로 성장한 그녀는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고등학교 때는 한국 신기록을 수립하며 국내 1인자가 되었다. 둘째, 그녀는 대학교와 실업시절 국가대표선수로서 유니버시아드 우승과 아시안게임 2연패를 비롯한 활약 그리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국위를 선양하며 아시아 최고가 된다. 셋째, 그녀는 한국체육대학교의 석사와 박사, 조교생활, 그리고 국가대표후보 상비군 전임지도자를 거쳐 육상교수와 한국육상 선수 최초로 세계육상연맹의 여...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관한 구술사적 연구 - 제6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중심으로 -
김상천 ( Kim Sang-cheon ) , 김지영 ( Kim Ji-young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4호, 41~55페이지(총15페이지)
본 연구는 제6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참가자들의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역사의 현장으로 불러냄으로써 한국 태권도 역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정립하는데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연구 참여자들의 구술 기록을 토대로 도출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제6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참가이전에 선수들은 태권도가 월드게임과 아시안 게임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이어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에 대한 기대와 체육연금의 혜택까지 굉장한 기대감이 있었다. 둘째, 제6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참가 중 선수들은 대회가 진행되는 가운데 세계대회에 출전한 선수들의 경기력과 운영면에서 성장하여 우리나라와 대등한 경기를 펼친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금메달 8개와 동메달 1개를 따내며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셋째, 제6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참가 이후 선...
88 서울올림픽의 유치과정에 관한 연구
김재우 ( Kim Jae-woo ) , 최지훈 ( Choi Ji Hoon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4호, 57~73페이지(총17페이지)
본 연구는 88 서울올림픽의 유치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서울올림픽의 유치신청과정부터 유치활동, 유치결정에 이르기까지의 전 과정을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고 있다. 서울올림픽 유치의 움직임은 제42회 세계사격선수권대회(1978. 9. 24-10. 5)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세계사격선수권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한국은 1979년 9월 체육과 스포츠 정책을 심의·관장하는 국민체육심의회의 회의를 통하여 올림픽대회 유치를 결의하였고, 박정희 대통령은 이를 인가하여 동년 10월 8일 서울시는 올림픽대회 유치를 공포하였다. 박정희 대통령의 서거 이후 정국의 혼란 속에서 최규하 정부는 올림픽 유치를 꾸준하게 준비하였으며 이후 전두환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서울시는 재차 올림픽대회 유치를 결의하여 IOC에 개최신청서를 제출하면서 올림픽 유치는...
한국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발전사(1946∼1993) - 명예와 전통이야기 -
안진규 ( An Jin-kyu ) , 우재홍 ( Woo Jae-hong ) , 위승완 ( Wie Seung-wan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4호, 75~89페이지(총15페이지)
이 연구는 문헌분석방법을 사용하여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명예와 전통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를 밝히는데 목적이 있다. 이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첫째, 1946년 2월 8일 1기생이 입교함과 동시에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역사는 시작된다. 이는 육·해·공군 사관학교 축구반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파악된다. 둘째,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은 개교와 함께 학교의 교육목적에 부합되도록 운영되었으나, 1954년 삼사체전이 개최됨에 따라 군인정신인, 감투정신 함양, 즉 오직 승리에만 목적을 두고 집중·운영되었다. 셋째, 축구반은 체육부 활동반 중 특별반으로 분리되어 체육부활동 시간 외 새벽, 야간 그리고 방학기간에는 전지훈련(합숙훈련) 등을 이용하여 훈련하였다. 넷째, 해군사관학교 축구반의 공식적인 대회실적은 1951년부터 나타나며 1952년 제33회 전국체...
연산군시대의 궁중연향과 여악의 재분석
고경희 ( Ko Kyounghee ) , 최영란 ( Choi Youngran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4호, 91~104페이지(총14페이지)
본 연구는 조선조 연산군의 삶과 함께 궁중연향과 여악을 재분석하였으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연산군시대의 궁중연향은 이전시대의 진풍연과 달리 향응(饗應)이 주가 된 곡연으로 설행되었다. 연산 조에 수시로 열린 궁중연향은 여악제도의 증편을 가져오게 되었다. 이는 종래의 양반중심의 여악풍속을 왕 중심의 여악 풍속으로 변화되는 기회가 되었다. 지방관기들이 채홍사들에 의해 연방원으로 유입되면서 궁중무용과 민속무용이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또한 곡연에 부족한 인원을 침선비와 의녀로 대체하면서 의녀들이 본격적으로 여기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러한 여악제도의 확대는 궁중연향 규모가 더 방대해지고 가무형태까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특히 연산군에 의해 처용무가 1인무, 2인 대무 또는 대규모의 군무로 추어졌을 뿐만 아니라 여성적 특성이 강조된...
미군정기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의 처리에 관한 연구
이승수 ( Lee Seung-soo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3호, 1~15페이지(총15페이지)
본 연구는 미군정기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가 어떻게 처리되었는지에 대해 선행연구에서 심층적으로 논의하지 못했던 점들을 제도사의 관점에서 분석, 고찰하여 그 의미를 찾는데 목적이 있었다. 연구방법은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와 관련한 1차 자료를 중점적으로 분석, 검토하였고, 그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미군정당국의 군정법령 시행에 따른 귀속재산 처리과정은 체육·스포츠단체에 대한 미군정당국의 독점지배 기반을 창출하는데 기여하였다.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의 처리과정에서 이 단체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인물들이 처리과정에 참여하여 인적으로도 미군정당국의 독점지배 기반을 뒷받침하는 과정이 되었다. 미군정당국은 점령 초기에 일본인의 사유재산권을 보호하고, 그 과정에서 ‘연고자’에게도 처리하였다. 그러한 사례 중 하나가 재단법인 강도관 조선지부였고, 이 단체와 연...
TAG The Chosun branch of Kodokan, Judo, US Military Government, Lee Kyung-suk
한국역도의 뚝심, 원신희의 삶
하웅용 ( Woong Yong Ha )  한국체육사학회, 체육사학회지 [2018] 제23권 제3호, 17~35페이지(총19페이지)
원신희는 근성과 뚝심의 역도인으로 아시안게임 첫 3관왕은 물론 국내외 괄목할 만한 경기성적을 올렸으며, 지도자로써 후진양성에 힘써 세계 속에 한국역도를 자리매김하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다음의 결론으로 역도인 원신희의 삶을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 그는 운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있는 유년기를 지냈으며, 건강을 중시하는 부친의 영향으로 강건한 체력을 소유할 수 있었다. 둘째, 그의 삶에서 중요한 점은 수많은 신기록과 메달을 획득한 것보다는 부상과 부진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었다는 것이다. 셋째, 원신희가 성취한 아시안게임 3관왕은 그의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스포츠과학과 적절한 경기작전이 만들어낸 유효한 결과였다. 넷째, 그는 지도자로써 수많은 제자들을 육성하였고, 이제 그들과 함께 한국역도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본...
TAG Won Shin Hee, Korean Weightfting, Life Story, Oral Hi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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