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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515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국가의 화랑정신 호명과 김동리의 문학적 대응 - 『화랑외사』와 김동리 역사 단편소설의 차이를 중심으로 -
전계성 ( Jeon Gye-seong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20] 제72권 103~137페이지(총35페이지)
김동리의 소설에서는 화랑정신이나 신라혼을 추구하는 경향이 발견된다. 이에 대해서는 백형 범부가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연구자 대부분이 범부와 동리가 기본적으로 동일한 세계관을 가졌기에 생성된 텍스트의 성격들도 유사한 관념에 기반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화랑에 대한 범부와 동리의 관념은 신라의 삼국통일과 무관하지 않다는 점에서 일정 정도의 유사성을 지니지만, 두 사람의 화랑에 대한 인식 차이도 간과하기 어렵다. 범부는 건국이념이 절실했던 1950년대 상황에 공명하여 『화랑외사』에서 화랑정신을 정치적으로 전유한 반면에, 동리는 신라인들의 삶의 구경을 그의 역사소설에서 구현하여 전유된 화랑 개념을 회복시켰다. 김동리는 군인으로서의 화랑정신보다는 샤먼으로서의 신라인 자체에 초점을 두며, 삶이 지닌 비극성도 인정하는 쪽으로 사건을 전...
TAG 김동리, 김범부, 화랑정신, 신라혼, 화랑외사, 역사소설, 문학적 대응, Kim Dong-li, Kim Beom-boo, Hwarang Spirit, soul of Silla, Hwarang-oesa, Behind Stories for Hwarang, Historical Novels, Literary Response
신라 하대 불교 정책의 변화와 사찰의 대응 - 이차돈 이야기 창작의 역사적 배경
박광연 ( Park Kwang-you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20] 제72권 139~163페이지(총25페이지)
이차돈에 관한 가장 빠른 시기의 기록은 817년에 만든 <백률사석당기>이고, 『삼국유사』에도 元和연간(806-820)에 승려 일념이 쓴 <촉향분예불결사문>을 싣고 있다. 본고는 9세기에 들어 신라 불교계에서 왜 이차돈 이야기를 창작하고 결사 등의 행사를 열어 그를 기억하려 하였는지 그 배경을 추적한 글이다. 애장왕대(재위 801-809)를 전후한 시기에 이차돈을 비롯하여 아도, 안홍(안함), 원효, 의상, 경흥, 승전 등 신라에서 불교를 수용·공인하는 과정에서 공이 많았던 인물이나 정착 단계에서 덕망이 높았던 고승을 기념하는 비석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이들 고승을 주인공으로 하는 비들은 왕명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경우에도 주인공의 영험한 자취나 국가와의 연관성, 국왕의 칭송들을 주 내용으로 하고 있다. 신라 하대 들어 조정은 정치적·경제적 권...
TAG 백률사, 흥륜사, 이차돈,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 정법전, 성전사원, 영험, 결사, 고승비, 9th century, Silla Buddhism, Baengnyulsa, 栢栗寺, Lee cha-don, King Aejang, Record on the Stone Pillar of Baengnyulsa, Buddhism policy
광평대군부인(廣平大君夫人)의 동래온천행(東萊溫泉行) 경과와 그 의미 - 광평대군과 사별 후 극복을 위한 선택이 끼친 영향 -
이주희 ( Lee Ju-hui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20] 제72권 165~206페이지(총42페이지)
조선 시대에는 왕실 여성들의 외유나 온천행이 있었지만 드물었고, 그 장소도 경기도 부근이나 충청도에 한정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것도 남편과 함께하는 여행에서만 가능했다. 1453년 초 서울에서 출발한 27세의 청상과부 廣平大君夫人 申氏의 행렬이 三浦의 왜인이 득실대는 부산 東來溫泉에 이르렀고, 그녀는 그곳에서 몇 달간 머물며 온천을 했다. 이는 성리학을 숭상하는 사람들의 처지에서 보면 상식을 넘는 외유였다. 당연히 유교 사상으로 무장된 신하들은 이러한 왕실 여성의 행위에 대해 시정과 처벌을 요구하였다. 그렇기에 광평대군 부인에 관한 기록이 實錄에 남았다. 그녀 생활의 好否와 신하들의 간섭 정도는 조선 초기의 정치적 변화와 궤를 같이했다. 1444년 남편 광평대군 이여가 온몸이 수포가 부어오르는 천연두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19세의 그녀에게는 ...
TAG 廣平大君 夫人, 世祖, 癸酉靖難, 東萊溫川, 溫泉治病 旅行, The wife of the Prince Gwangpyeong, King Sejo, Prince Sooyang, Gyeyujeongnan, Dongnae hot Springs, a spa trip for treatment
소재(穌齋) 노수신(盧守愼)과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심학(心學)’으로 맺은 학문 세계
정호훈 ( Jeong Ho-hu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9] 제71권 7~47페이지(총41페이지)
穌齋 盧守愼의 학문에 영향을 미친 인물은 적지 않지만, 스승의 반열에서 그를 가르치고 그의 사유를 이끌며 살찌운 인물로는 晦齋 李彦迪을 꼽을 수 있다. 노수신과 이언적과의 만남은 크게 두 양상으로 살필수 있다. 첫째, 노수신이 그의 나이 27세 되던 해에 이언적을 만나 ‘심학’에 관한 가르침을 받았던 일이다. 이미 얕지 않은 학문적 깊이를 쌓고 있던 노수신은 이때의 만남에서 ‘道問學’보다는 ‘尊德性’의 방법을 중시하는 학문의 의미를 깊이 있게 접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둘째, 이언적 사후, 이언적의 문집과 그의 대표작에 대한 서문을 쓰고, 이언적의 연보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노수신은 이언적의 학문을 ‘心學’으로 규정하였으며, 그의 주자학에 규정되지 않는 독자적 학문 활동을 높게 긍정했다. 이언적으로부터 심학에 대한 지침을 ...
TAG 穌齋 盧守愼, 晦齋 李彦迪, ‘道問學’, ‘尊德性’, 心學, 16세기 중·후반 조선 학계, Roh Su-sin, Lee Eon-jeok, Shimhak, Joseon academia in the mid and late 16th century
이황(李滉)과 노수신(盧守愼), 그 동곡이조(同曲異調)
안병걸 ( Ahn Byung-gul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9] 제71권 49~76페이지(총28페이지)
이 글은 盧守愼의 저작 <夙興夜寐箴解>를 둘러싼, 李滉과 노수신 두사람 간의 해석의 차이를 검토하여, 두 사람의 학문적 성향의 차이를 확인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道學을 표방하였으나, 그에 이르는 방법이 달랐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황은 주자학적 이론에 충실하여 天道와 人道, 마음과 本性, 誠과 敬을 구분하는 분석적 시각을 견지하였다. 노수신은 성리학적 도학 실천을 위한 마음의 한결같음을 강조하였다. 그는 천도와 인도, 성과 경을 구분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합일적, 통합적 관점을 가졌던 것이다. 이것은 노수신이 지은 <인심도심변>에서 확연하게 드러나는데, 그에 앞서 저술한 <숙흥야매잠해>에서도 그 단초가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황과 노수신은 이 주제를 두고 진지한 토론을 진행하였다. 양인 간의 견해차는 분장과 자구 해설, 의미 이해에 이르기까지...
TAG 16세기 조선유학, 李滉, 盧守愼, <夙興夜寐箴>, <夙興夜寐箴解>, , neo-Confucianism in 16 century of Chosun Dynasty, Yi Hwang, Noh Susin, < Sukhungyamaejam, admonition on "Rising Early and Retiring Late >, < Sukhungyamaejamhae >, kyung[Mindfulness]
소재 노수신과 서애 류성룡의 경세론, 그 실천과 의의
정우락 ( Jeong Woo-rak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9] 제71권 77~109페이지(총33페이지)
노수신과 류성룡은 사상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양명학에 대한 인식의 태도 및 경세론이 사뭇 다르게 나타났다. 주자학을 기반으로 하되 양명학을 수용하는 시기와 농도는 물론이고, 格物致知와 尊德性·道問學에 대한 입장, 경세론과 그 실천의 문제 또한 다르게 나타났다. 노수신은 치지를 통해 군주가 마땅히 군자와 소인을 변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개혁적인 인물을 적극 추천하였다면, 류성룡은 제왕학을 明體適用之學으로 요약하고 치세와 난세에 따라 경세를 달리 해야 한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노수신과 류성룡의 경세론은 주자주의 일변도로 치닫는 조선 사상계에 일정한 문제를 제기하였던 점, 양명학적 사유의 시대적 응전과 그 결과를 비교적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 관료형 士林이 지니고 있었던 실천성의 사상적 근거를 보여주고 있다...
TAG 소재 노수신, 서애 류성룡, 경세론, 실천, 주자학, 양명학, 존덕성, 도문학, 비판적 수용, Sojae Noh Su-sin, Seoae Ryu Seong-ryong, theory of governance, practice, Zhu Xi studies, Wang Yangming studies, Jondeokseong, Domunhak, critical acceptance
정경세(鄭經世)·이준(李埈)의 소재관(穌齋觀) -정경세(鄭經世)의 비판적 흡수론과 이준(李埈)의 계승적 변호론을 중심으로 -
김학수 ( Kim Hak-su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9] 제71권 111~160페이지(총50페이지)
조선의 통치 이념은 朱子學이었고, 그 주자학은 사상적 획일성 또는 純血性에 집착하는 과정에서 ‘權力’이 되었다. 이 배타적 권력의 이념적 통제의 감각 장치는 불교·도교 등 여타 敎學 체계는 물론 유학 내부로까지 깊숙하게 침투하여 작동하였다. 그 선봉에 그들에 의해 ‘동방의 주자’로 예칭되었던 이황이 嚴峻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노수신의 학문은 刻苦의 산물이었지만 그 내용은 질실했고, 그 쓰임은 輔君·經世를 목표로 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은 16세기 중엽 조선 학계의 宗主 李滉으로부터 배척을 받았고, 그 배척은 하나의 烙印이 되어 이황 의 후학들에게 대물림되었다. 이 글은 같은 퇴계연원이었지만 盧守愼에 대한 인식은 사뭇 달랐던 정경세와 이준의 시선을 ‘비판적 흡수론’과 ‘계승적 변호론’으로 분절하여 검토한 것이다. 이성형제로까지 일컬어졌던 두 사람은 노수신...
TAG 盧守愼, 李滉, 柳成龍, 鄭經世, 李埈, 退溪學派, 穌齋學脈, 道南書院, No Su-sin, Yi Hwang, Ryu Seong-ryong, Jeong Gyeong-se, Yi Jun, Toegye School, Sojae Academinc line, Donam Confucian Academy
월성해자(月城垓子) 2호號 목간(木簡)에 보이는 존칭어(尊稱語) ‘족하(足下)’에 대하여
李泳鎬 ( Lee Young-ho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9] 제71권 163~190페이지(총28페이지)
월성해자 2호 목간은 4면 문서목간으로 일찍부터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여기서는 제1행에 대해 기왕의 판독과 해석을 살펴보았다. 그 결과 ‘대오지랑(大烏知郞)’은 ‘대조지랑(大鳥知郎)’으로 읽어야 하며, ‘대오(大烏)’는 17관등 가운데 15위의 관등이 아니라, ‘대조(大鳥)’ 또는 ‘대조지(大鳥知)’라는 인명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신라와 백제 목간의 사례나 신라 문헌자료를 통해, ‘万拜’보다는 ‘再拜’로 판독한 견해가 옳음을 살펴보았다. 나아가 再拜란 용어는 문헌상으로 5세기의 사실부터 등장하며, 6세기 진평왕대에 많이 나타나고, 삼국통일 이후 확산되었다. 이는 중국식 문서형식의 수용과 유교적 예제가 정착되어 감을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足下는 ‘발 아래’의 뜻과 존칭어로서 ‘그대’ 정도의 뜻 등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월성해자...
TAG 월성해자, 목간, 존칭어, 족하, 대조지랑, the Moat of the Wolsong Palace, Wooden Strip, the Honorific Language, Chokha, taeojirang
16~18세기 문경 근암서원(近嵒書院)의 변천 -조선후기 서원 변천의 한 사례-
이병훈 ( Lee Byoung-hoon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9] 제71권 191~217페이지(총27페이지)
문경 근암서원은 16세기 중반 상주목사 신잠이 건립한 죽림서당에서 발전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터를 옮겨 중건하면서 근암서당이라 하였다. 1665년(현종 6) 홍언충을 제향하면서 향현사가 되었다. 이후 1669년(현종 10) 이덕형을 병향하면서 근암서원으로 승원하였다. 이처럼 근암서원은 서당에서 서원으로 성장하는 모습과 17~18세기 서원 금령이 시행되던 시기에 이를 피하여 사우에서 승원했던 서원들의 전형을 보여준다. 아울러 김홍미, 홍여하, 이구, 이만부, 권상일 등의 남인계 인사들을 추가로 제향하면서, 도남서원과 더불어 상주 남인계를 대표하는 서원으로 자리했다. 서원으로 승원한 후 기존의 근암서당은 옛 죽림서당 터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이미 수계소가 운영되고 있었기에 추후 潁水邊으로 옮겨 영빈서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영빈서당은 근암서원과 ...
TAG 근암서원, 죽림서당, 근암서당, 영빈서당, 이덕형, Geunamseowon, Geunamseodang, Jookrimseodang, Youngbinseodang, Lee Deuck-hyung
잠은(潛隱) 강흡(姜恰)의 저술로 본 그의 삶과 교류 인맥의 특징
최은주 ( Choi Eun-ju )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2019] 제71권 219~250페이지(총32페이지)
본고는 潛隱 姜恰(1602~1671)의 삶과 교류 인맥의 특징을 살핀 것이다. 강흡은 본래 한양ㆍ파주 출신이었으나 병자호란 직후 가족을 이끌고 봉화 법전으로 피난하여 정착함으로써 이 지역에 진주강씨의 뿌리를 내린 인물이다. 이후 법전의 진주강씨 문중은 영남지역에서는 드물게 노ㆍ소론계를 표방하며 그 역사를 지탱해왔다. 강흡의 삶의 이력과 그가 교류한 인물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법전의 진주강씨 후손들이 표방했던 가학의 전통이 어디에서 근본하는지 그 기저를 탐색해보기 위함이다. 현전하는 강흡의 저술은 문중에서 보관해 온 필사본 『이오당선조유고』와 1912년에 간행한 목활자본 『잠은선생실기』 그리고 1969년에 간행한 석인본 『잠은선생실기』가 있다. 1969년 석인본은 목활자본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필사본 유고와 목활자본 실기 두 본을 비교 검토하여 도출...
TAG 太白五賢, 潛隱 姜恰, 陶隱 姜恪, 봉화 법전, 진주강씨, 법전 진주강씨, 영남 노론, Taebaekohyeon, Kang Heup (pen name: Jameun), Kang Gak (pen name: Doeun), Bonghwa Beopjeon, Jinju Kang family, Beopjeon Jinju Kang family, Yeognam Noron f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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