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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561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660년 7월 8일간의 전투 재구성
김주성 ( Kim Joosu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7] 제56권 349~365페이지(총17페이지)
660년 7월 백제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8일만에 항복을 하게 된다. 그 8일 동안의 뜨거웠고 긴박한 상황 전개를 살펴 본 것이 본고의 목적이다. 백제의 멸망은 그 뒤 백강전투로 대표되는 왜의 패배와 고구려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이기 때문에 꼼꼼하게 살펴볼 이유가 있다. 660년 6월 20일에 덕적도에 도착한 당군은 신라의 김법민과 7월 10일 합군을 약속하였다. 당군이 20여 일 정도 백제의 공격을 늦추고 있었던 것은 신라군이 돌아갈 시간을 확보해주고 동시에 위력시위를 통하여 백제가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항복하기를 바랐던 까닭이었다. 이 전략은 상당히 효율적인 전략으로, 실제로 백제는 허둥지둥하다가 백강과 탄현을 방어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7월 9일 나당군은 협공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신라군은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격해 들어...
TAG 8일간의 재구성, 황산벌전투, 웅포, 4개의 공격로, 나성, Reconstruction 8 Days, the battle Hwangsanbul, landing Ungpo, four attack routes, outer castle
백제(百濟) 시조(始祖) 구태(仇台)·비류(沸流) 전승(傳承)의 성립과 고구려(高句麗)·공손씨(公孫氏) 관계
이장웅 ( Lee Jangwoo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5~33페이지(총29페이지)
본고는 백제의 복잡한 건국전승을 통해 건국신화를 복원해보려는 입장에서 『三國史記』 百濟本紀에 나타난 백제 건국전승의 한 계통인 解夫婁-優台-沸流 전승과 中國史書에 나타난 仇台 전승에 대하여 분석하였다. 그 결과, 解夫婁의 庶孫으로 나타나고 있는 優台는 高句麗의 官階인 于台 및 중국사서의 仇台와 관련됨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따라 東扶餘의 분열과 고구려 초기의 정치적 변동 및 공손씨 정권과의 관련 속에서 解夫婁-優台(仇台)-沸流 집단의 백제 유입 과정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解夫婁-金蛙-帶素로 이어지던 동부여는 고구려 大武神王의 공격으로 帶素王이 죽음을 당하고 분열하게 된다. 그 가운데 대소의 막내 동생은 曷思國을 세우고, 대소의 사촌동생은 고구려 椽那部에 편입된다. 그리고 갈사국을 세운 曷思王의 손자 都頭는 太祖王 때에 고구려에 복속되어 于台에 임명된다. 于...
TAG 구태, 우태, 해부루, 비류, 백제, 고구려, 공손씨, 연노부, 연나부, 고이왕, Kutae, Utae, Haepuru, Piryu, Baekje, Koguryo, Gongsun Family, Yonnopu, Yonnapu, King Koi, 仇台, 優台, 解夫婁, 沸流, 百濟, 高句麗, 公孫氏, 涓奴部, 椽那部, 古爾王
백제 지방통치조직의 변화와 중방성
김주성 ( Kim Joosu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35~54페이지(총20페이지)
지금까지는 백제의 중앙세력에 관심이 집중되어 지방인과 지방사회에 대한 연구가 희소하였다. 다만 영산강유역은 대형옹관묘라는 호재로 인하여 많은 연구성과가 쌓였다. 그러나 전북은 익산 금마의 미륵사와 왕궁리에 관심이 집중된 나머지 다른 지역은 상대적으로 연구가 소홀하였다. 이제는 정읍 영원면 일대의 270여 개의 석실분에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본고는 중방성을 문헌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이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양직공도와 양서에 기록된 담로제 사료가 웅진시기만이 아닌 한성시기부터 지속된 제도를 기술해주고 있다고 보았다. 고마성이 웅진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수도를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어져 담로제 사료의 고마성이 한성을 가리킬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중방성의 공간적 범위를 웅진도독부의 고사주 사료를 중심으로 살펴...
TAG 담로제, 고마, 중방성, 석실분, Damro, the Castle Goma, the Castle Jungbang, Chamber tomb
여창(餘昌)의 백제연합군과 신라의 전쟁
서영교 ( Seo Youngkyo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55~76페이지(총22페이지)
餘昌은 한강유역을 수복하고 가야에 대한 백제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해 554년 관산성 전투를 결행했다. 12월 백제연합군이 관산성의 중요한 子城인 函山城을 함락시키면서 승리가 거의 굳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재앙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찾아들었다. 승리가 예상되자 아버지 성왕이 餘昌을 위로하기 위해 久陀牟羅塞로 순행하다가 신라군에게 잡혔고, 참수를 당했다. 소문이 퍼지자 백제군은 한강 하류에서 남하해온 신라 新州 김무력 군대에 무너졌다. 餘昌은 倭弓부대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지만 약 3만의 전사자를 낸 관산성 패전의 결과는 바로 나타났다. 554년에서 562년 사이에 가야의 10개국이 차례로 신라에 항복했다. 餘昌은 왜군을 끌어들여 다시 전쟁을 시작한다. 562년 7월 백제와 왜 연합군이 가야지역에 들어갔다. 하지만 신라의 생각지도 못한 白旗欺瞞...
TAG 여창, 성왕, 관산성, 함산성, 구타모라새, 왜궁, 백기기만, 하변신, Baekje Prince Yeochang, Baekje King Seong, Kwansan Castle, Hamsan Castle, Kutamora fortress, Japanese archery, white flag deception, Kawabeno-ohmi, 餘昌, 聖王, 管山城, 函山城, 久陀牟羅塞, 倭弓, 白旗欺瞞, 河邊臣
5세기대 서산 부장리 세력의 성장 배경과 위상
이한상 ( Lee Hansa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77~97페이지(총21페이지)
부장리고분군은 5세기 무렵 서산지역에서 활동한 중심세력의 묘역이다. 묘제로 보면 이전 시기의 전통적 요소를 잇고 있고, 백제사회에서 최고급 물품으로 여겨졌을 법한 위세품이 다수 출토되었다. 고분군의 규모와 출토 유물에 드러난 부장리고분군의 위상은 같은 시기 백제 사회에서 높은 편에 속한다. 부장리 세력 성장의 배경을 보여주는 자료가 예천동유적에서 확인된다. 유적의 일부만 조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위 무덤의 군집도가 탁월하며 철정을 비롯한 철기 부장묘가 많다. 그리고 서북한지역으로부터 수입한 것으로 보이는 철기류, 서아시아에서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중층유리옥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은 기지리유적에도 그대로 이어지며 그것이 장차 부장리 세력 성장의 지역적 기반이 되었을 것이다. 세부적으로는 철소재 혹은 철기 부장의 패턴화, 무장리 탄요의 존재, 조선시...
TAG 서산, 부장리고분군, 기지리고분군, 예천동유적, 금동관, 철산, Seosan, tombs in Bujang-ri, tombs in Giji-ri, Yecheon-dong site, gilr-bronze crown, iron mine
연기(燕岐) 나성리4호(羅城里4號) 목관묘(木棺墓) 출토(出土) 용문투조대금구(龍文透彫帶金具)의 연대(年代)
박보현 ( Park Bohyun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99~114페이지(총16페이지)
세종시 나성리4호 목관묘에서 수하식이 달린 龍文透彫帶金具 1벌이 발굴되었다. 이 대금구는 이른바 百濟地域에서 출토된 가장 古式으로 단정하면서, 동반된 盛矢具金具, 金銅飾履, 長頸小壺, 木棺의 樹種, 金箔靑銅 구슬 등을 고려하면서 百濟 漢城時期의 百濟-倭-新羅·加耶와의 상호관계를 유추하는 좋은 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대금구가 어느 시기에 만들어진 것인지에 대한 고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신라에서 백제 그리고 가야를 거쳐 백제로 라는 관념적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다. 지금까지 출토되는 심엽형 수하식을 갖춘 대금구는 고구려와 신라 그리고 왜 밖에 없다. 따라서 나성리4호 목관묘에서 출토된 대금구는 경주를 비롯한 신라고분에서 출토된 자료와 비교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따라서 과판은 황남대총 남분의 용봉문투조대금구에서 수하식은 금관총과 서봉총...
TAG 용문투조대금구, 황남대총 남분, 기원후 5세기 후반, Open-worked dragon-design girdle-plaque, The great south tomb at Hwangnam, the latter half 1n the 5th century A.D. 龍文透彫帶金具
홍련봉 1·2보루의 축조방식과 구조에 대한 연구
안성현 ( An Seongheun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115~143페이지(총29페이지)
성곽에 대한 기왕의 연구에서는 성벽의 축조수법이나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로 축조시기와 국가를 파악한 후 영토 확장이나 지방지배, 그리고 국경선과 교통로 등을 분석하는데 집중되었다. 즉 정치사적 해석에 중점이 두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성벽이나 성곽 내부의 시기적 경관에 대한 분석이 선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정치사적 해석은 많은 오류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홍련봉 1·2보루의 축조수법과 구조에 대해서 살펴본 결과 두 가지 정도의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먼저 홍련봉 1·2보루와 아차산 일대 고구려 보루의 성벽은 목책 단계를 설정할 수 없으며, 토성으로 축조된 후 석축성벽으로 개축되었다. 그리고 2보루의 경우 외황은 초축시에는 설치되지 않았으며, 치 역시 시기 차이가 있다. 결과론적으로 방어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한 것으로 ...
TAG 고구려, 백제, 보루, 목책, 토성, 석축성벽, 폐성, 중복, 수·개축, 자연퇴적, Goguryeo, Baekje, Achasan Mountain, fort, wooden barricade, earthen fortresses, stone-walled fortress wall, fortress ruin, overlap, contraction·reconstruction, natural sedimentary
백제사신도를 통해 본 백제 복식의 정체성
라선정 ( Ra Sunju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145~166페이지(총22페이지)
본 논문은 회화자료에 묘사된 사신복식을 바탕으로 백제 복식의 원형을 살펴보고, 주변국가 복식과의 비교를 통해 백제 복식의 정체성을 밝히는데 의의가 있다. 백제 복식의 모습을 살필 수 있는 회화자료의 제작시기를 분석한 결과 6세기 대의 복식의 모습임이 확인되었다. 뿐만 아니라 ?形, 帶의 착장 및 위치, 장식 등 상이한 점이 발견되었으나 사신의 위치나 자세, 방향 등 구도가 일치하였다는 점과 회화자료에 모두 묘사된 주변 국가 사신의 복식이 동일하였다는 점을 바탕으로 동일 모본임을 알 수 있었다. 삼국복식의 유사성과 대비되는 내용을 문헌자료를 통해 찾을 수 있었으며, 이는 회화자료에 묘사된 고구려·신라 등 주변국가 복식과의 비교를 통해 실증되었다. 帽의 형태나 장식, 내의의 구조 및 형태 등에서 주변국가와 다른 차별성을 살필 수 있었으며, 이것이 곧 ...
TAG 백제사신도, 백제복식, 정체성, 고유성, 사신복식, Baeoke-Sashindo, Baekje Costume, Identity, Peculiarity, The costumes of the Envoy
익산 연동리가마 출토 전 백제와당의 편년과 제작 주체
조원창 ( Cho Weoncha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167~189페이지(총23페이지)
금번 논고의 대상이 된 익산 연동리 가마 출토 와당 및 綠釉椽木瓦는 발굴조사 결과 미륵사지 출토 瓦例와의 비교를 통해 百濟作으로 추정되었다. 하지만 와당에서 관찰되는 花瓣과 화판 사이의 ``十``자문과 화판의 형태, 그리고 子房 외곽에서의 凹溝는 그 동안 백제 와례에서 확인된 바가 거의 없어 이의 제작 시기와 주체를 의심케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製瓦 속성이 제천 장락사지 및 충주 탑평리사지, 경주 황룡사지·흥륜사지·기림사, 그리고 일본의 鞠智城 출토 와례 등에서 관찰되고 있어 익산 연동리 출토 와당은 백제작이 아닌 7세기 3/4~4/4분기의 통일신라기 와당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이의 제작 주체는 연동리 가마 출토 녹유연목와의 子葉 형태로 보아 익산 미륵사지 와당 및 연목와와 관련된 백제계의 와공으로 판단되었다. 백제 멸망 후 백제계의 와공은 造...
TAG 와당, 백제, 사지, 익산 연동리, 통일신라, roof-end tile, Baekje, temple Site, Iksan Yeondongri, unified Shilla
後百濟 防禦體系 硏究 試論
곽장근 ( Kwak Changkeun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5권 191~215페이지(총25페이지)
우리나라 전통지리학의 지침서인 『山經表』 속 산줄기에 유구와 유물의 속성이 서로 상통하는 산성들이 있다. 이 산성들은 옥수수 낱알모양처럼 방형 혹은 장방형으로 잘 다듬은 성돌을 이용하여 수평으로 줄을 띄워 品자형 성벽 쌓기와 성벽 하단부의 들여쌓기, 장대석으로 성벽 뒤채움을 하고 있는 점에서 강한 공통성을 보였다. 백두대간과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산줄기를 천연의 자연 방어선으로 삼고 대부분 전주로 향하는 내륙교통로가 통과하는 길목에 위치한다. 아마도 후백제의 도읍인 전주를 지키기 위해 후백제가 동쪽에 구축해 놓은 외곽 방어체계로 판단된다. 백두대간 산줄기 입지를 둔 산성들은 지리산 달궁계곡에서 마한부터 후백제까지 계속된 운봉고원 철산지의 보호에 큰 목적을 둔 것으로 보았다. 금남호남정맥은 전북 장수군을 중심으로 진안고원의 철산지와 진안 도통리 초기청자 요지...
TAG 후백제, 견훤, 산경표, 백두대간, 진안 도통리, 봉림사지, Hubaekje, Gyeonhweon, Sangyeongpyo, Baekdudaegan, Jinan Dotongri, Bongrimsa Temple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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