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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AND 간행물명 : 백제문화503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와 의미
정재윤 ( Jae Yun Chu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5~27페이지(총23페이지)
본고의 목적은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규명하는 데 있다. 이를 통해 동아시아 공유문화를 형성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백제의 역할과 문화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백제는 고구려와의 대결 상황에서 중국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으며, 자신에 맞게 재창조하였다. 또한 주변의 나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백제문화를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전파하여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에 따라 공주 지역에서는 산성이 왕성이라는 특징을 보인 공산성과 동아시아 문물 교류를 가장 잘 보여주는 송산리고분군이 등재되었다. 부여 지역에서는 백제의 독특한 굴식 돌방무덤을 완성한 능산리고분군, 평지성과 피난성이라는 왕성 구조를 완성한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도성의 안팎을 구분하는 외곽의 전체가 남아 있는 나성, 대중법회를 개최할 수 ...
TAG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공산성, 송산리고분군,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나성,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World Heritage, Baekje Historic Areas, Gongsanseong Fortress, Royal Tombs in Songsan-ri, Archaeological Site in Gwanbuk-ri and Busosanseong Fortress, Jeongnimsa Temple Site, Royal To
고대 동아시아사상의 백제 삼산
장인성 ( In Sung Cha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29~43페이지(총15페이지)
이 논문은 백제 삼산의 의미와 특징을 드러내기 위해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보이는 각 국의 삼산을 검토하였다. 백제 사비 도성에는 일산 부산 오산의 삼산이 있었다. 삼산에는 신인들이 있어 국가 전성기에는 아침저녁으로 왕래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삼산 신앙은 중국의 삼신산(삼산)에서 유래하였다. 전국시대 중기 이후 성행한 삼신산(삼산) 신앙은 중국의 원유의 조성에 크나큰 영향을 주었다. 진시황은 난지를 조성하고 그곳에 봉래산과 영주산을 축조하였다. 한 무제도 상림원에 속했던 건장궁의 태액지 안에 봉래 영주 방장의 삼신산을 조성하였다. 당도 대명궁의 북쪽에 태액지를 파고 그 안에 봉래산을 만들기도 하였다. 신선이 산다는 삼신산을 궁 안에서 구현하고자 한 시도였다. 백제의 삼산 가운데 일산은 부여읍의 금성산, 부산은 백마강 변의 부산, 오산은 염창리 뒷산으로 비...
TAG 백제, 삼산, 도교문화, 도성, 국가제사, 三山, 國家祭祀, Baekje, Tripartite mountain, Daoist culture, Capital city, Tripartite mountain, State sacrifices
泰安(태안)마애삼존상의 도상과 성격 -竝立(병립)한 二佛(이불)의 존명 추정과 "정치적 서상"으로서 가능성 탐색-
소현숙 ( Hyun Sook So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45~69페이지(총25페이지)
태안은 바다를 낀 백제의 對중국 교통로上에 위치하고 있다. 6세기 말~7세기 초 이곳 백화산 정상에 조성된 마애삼존상은 ‘2불1보살’이라는 동아시아 불교조각사상 유일무이한 형식으로 표현되었다. 비록 보살상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지만, 크기나 양감 등에서 주존은 보살상이 아니라 좌우 양쪽에 위치한 거대한 二佛이다. 6세기 중국에서는 법화경 을 소의 경전으로 하는 석가 다보의 이불병좌 이외에 두 부처를 함께 조성하는 雙身像이 출현하여 유행하였다. 본고는 중국과의 비교 연구를 통해 태안마애삼존상에 나타나는 竝立한 二佛의 존명을 추정하였다. 그런데 二佛의 존명을 밝히는 도상학적 연구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두 부처의 성격을 究明하는 것이다. 장대한 크기, 거주지가 아닌 산 정상에 위치한 점 등으로 미루어 태안마애삼존상의 조영은 대형 佛事에 속했을 것이다. 특히 위덕...
TAG 태안마애삼존상, 이불병립상, 쌍신상, 정치, 서상, Rock-carved Triad Buddhas in Taean, Two Buddhas Standing Side by Side, Statues of Two Buddhas, 雙身像, Politics, Miraculous Image
中國(중국)의 백제학(百濟學) 硏究(연구)에 대한 略考(략고)
전영 ( Young Jeon ) , 양로 ( Ru Rya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71~90페이지(총20페이지)
본문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중국학자들의 백제학에 관한 연구를 세 단계로 나누어 정리하여 논술하였다. 1949~1978년은 중국 백제학 연구의 첫 단계로 백제학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지만 60년대부터 70년대 후반까지 시대적인 요소의 제한 때문에 중국에서의 백제학 연구는 침체기에 들어섰다. 1978~2000년은 두번째 단계로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백제학 연구는 활발하게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이후 연구의 기초가 되었다. 2000년 이후 백제학의 연구는 수적, 질적인 큰 발전을 이루어 많은 연구성과를 도출하였다. 중국의 백제학 연구는 주로 백제와 중국 고대정권과의 관계연구, 한반도에서의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간의 관계 연구, 그리고 백제 본체에 관한 연구로 이루어졌다. 이런 연구를 토대로 문화, 건축...
TAG 백제학, 중국, 연구성과, Baekje studies, China, Research achievements
한국에서 새롭게 출토된 두 건의 백제 사료 연구 -<사리봉안기>와 "行貞觀十九年(행정관십구년)" 가죽 漆甲의 명문을 중심으로-
배근흥 ( Gen Xing Bai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91~117페이지(총27페이지)
2009년 1월,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행한 익산시 미륵사지 西塔수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사리함을 발견했는데, 그 사리함에서 693년 제작된 <사리봉안기>를 포함하여 백제 말기의 많은 유물이 나왔다. 2년 후인 2011년 9월, 공주대 박물관 고고발굴단이 공주시 공산성 유적에 대한 4차 발굴 조사 보고회를 열고, "行貞觀十九年卄一日" 명문을 가진 가죽 칠갑의 출토 사실을 알리고, 나아가 이 칠갑의 다른 한자 명문과 당나라 칼 등에 대한 내용을 공포하였다. 또한, 2014년 9월에는 제7차 출토 발굴의 성과로서 새로운 가죽 칠갑의 명문을 소개했다.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와 공산성 유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견된 한자 명문 등은 모두 한국의 고고학계 및 역사학계에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는 한국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함과...
TAG 한국 고대, 백제사, 사리봉안기, "行貞觀十九年"銘, Ancient Korea, Paekche history, Sarira Feng An Ji, Inscription Zhenguan 19 Year
한국 고대의 지방 郡縣(군현)과 治所城(치소성) -牙山鶴城山城(아산학성산성)을 중심으로-
서정석 ( Jeong Seog Seo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119~144페이지(총26페이지)
최근 발굴자료가 증가하면서 한국 고대의 治所城이 산성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산성 형태의 治所城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져 조선시대에 평지의 邑城이 출현하기 이전까지 계속되었다. 그런데 이러한 治所城에는 鶴城山城에서 보듯이 石壁建物이 성내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石壁建物은 부소산성의 예에서 보듯이 곡물을 저장하던 창고로 이해된다. 각 郡縣은 관내에서 수취한 현물을 일부는 이 창고에 보관하고, 일부는 수도로 운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때 관내의 수취물을 성내로 운반하기 위해 수레를 사용하였다. 그 때문에 治所城의 성문 중 하나는 수레가 출입할 수 있는 능선 쪽에 개설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조선시대 지리지에는 이러한 治所城이 廢城된 상태임을 알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의 廢城은 단순히 治所를 산성에서 평지로...
TAG 치소성, 治所城, 석벽건물, 石壁建物, 창고, 물자유통, 성문, Chisoseong, Stone Wall Building, Store, Castle gate
함안 성산산성 木簡(목간)을 통해 본 新羅(신라)의 지방사회 구조와 수취
김창석 ( Chang Seok Kim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145~177페이지(총33페이지)
성산산성 목간은 대부분 수취품에 매단 짐꼬리표이다. 이때 이뤄진 수취는 급박한 상황에서 임시적으로 행해졌으며, 外位소지자도 조세를 납부해야 했다. 本波는 어떤 지역의 治所가 있던 구역을 가리킨다. 州治, 郡治와 같은 상위 행정촌은 물론이고 일반적인 행정촌도 본파로 불리는 구역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는 지방관이 村主와 더불어 정무를 논의 수행하는 廳舍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본 파는 다시 그 관하에 촌락을 두는 경우가 있었다. 6세기 중엽의 신라 지방사회에서는 郡制가 아직 정착되지 못하여 군과 그 하위의 行政村이 서로 차별화된 행정기능을 발휘할 수 없었다. 그러나 古陀, 鄒文과 같은 일부 군은 관할 지역에 대한 수취에 적극 개입하고 예하의 자연촌까지 郡의 행정력이 미칠 정도로 영역적 지배가 이뤄졌다. 국가의 수취라는 측면에서 自然村과 수취의 단위가 된 自然...
TAG 신라, 함안 성산산성 목간, 지방제도, 수취, 문서행정, 운송, Silla, Seongsan Mountain Fortress Mokkans in Haman, Local Administrative System; Tax Collecting, Documentary Administration, Transport
삼국시대 금호강 유역의 공간 구조와 물자 이동 -押梁郡(압량군)을 중심으로-
박성현 ( Sung Hyun Park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179~203페이지(총25페이지)
본고에서는 押梁郡(경산)을 중심으로 삼국시대 금호강 유역의 교통로를 포함한 공간 구조를 복원하고 시기에 따른 물자 이동의 구체적 양상을 그려보았다. 압량군에는 군치와 3개의 현, 즉 4개의 거점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지리서 등을 통해 그 위치와 전체 영역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압량군치는 임당유적에 비정되는데, 이른 시기에는 토성과 고총이 경관의 중심적 요소였다가 점차 고총이 쇠퇴하고 토성 인근 저습지에 대규모 건물이 들어서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다. 雉省火縣(해안)은 봉무토성과 불로동·봉무동고분군에 비정되는데, 금호강 하안 평지의 봉무동유적에서는 5세기 이후의 대규모 창고군과 도로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경주에서 경산, 대구에 이르는 간선 교통로는 영천 도동 부근에서 갑령을 넘어 상주로 가는 길로부터 분기하여 압량군치를 지난 것으로 파악된다....
TAG 신라, 금호강 유역, 공간 구조, 교통로, 물자 이동, Silla, Geumho River Valley, spatial structure, local administrative system, transportation system
6~7세기 경기북부지역 신라 성곽의 철기 수급체계
김길식 ( Gil Sik Kim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205~247페이지(총43페이지)
본고에서는 6~7세기 신라의 변방인 경기북부지역 성곽에서 출토된 각종 철기들을 중앙인 경주와 지방에서 출토된 철기와 비교 분석하고, 제철 유적, 현지의 철기 제작 유적, 단야구, 성산산성 출토 ‘鐵목간’, 신라 왕경과 그 외곽지대 수공업 공방지와 생산 물품 등의 검토를 통해 6세기 중후엽과 그 이후~7세기 경기북부를 비롯한 지방에 철 및 철기가 어떻게 제작 수급되었는지를 지방지배와 결부시켜 살펴보았다. 6세기 중후엽~7세기에 집중 축성된 경기북부지역 신라 성곽 출토 철기들은 경주와 다른 지방 출토 철기들과 기종구성 및 형식이 공통적이다. 이는 신라 국가의 일원적인 힘이 작용하여 통일된 기술에 의하여 제작되어 엄격한 통제 관리 하에 철기의 수급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철정의 형태와 크기가 대 중 소형으로 규격화되고, 문확쇠나 무기 농공구들이...
TAG 신라, 6∼7세기, 경기북부지역, 신라성곽, , 철기, 중앙, 지방, 주조철기, 단조철기, 廢鐵器, 灌鋼法, 건축부재, 농공구, 무기, 단야구, 생산, 수급, 收取, 지방지배, Silla, 6~7th century, northern Gyeonggi province, Silla fortress, iron, ironware, central, local, cast ironware, forged ironware, unusable ironware, archit
新發見(신발견)<高乙德墓誌銘(고을덕묘지명)>을 통해 본 고구려(高句麗) 末期(말기)의 中裏制(중리제)와 中央官制(중앙관제)
여호규 ( Ho Kyu Yeo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249~284페이지(총36페이지)
이 글은 <고을덕묘지명>의 官名을 검토하여 고구려 말기의 中裏系 官等과 中央官制의 운영양상을 새롭게 고찰한 것이다. 먼저 官歷의 기재방식을 통해 墓誌銘 撰者가 官等과 官職을 구분했을 뿐 아니라, 官等의 昇格을 중시한 사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상事’의 담당을 관등 수여[受]나 관직 임명 [任]과 구분하여 ‘執’으로 기재했는데, 이는 일반 관직과 구별되는 또 다른 계통의 職任이 존재한 사실을 시사한다. <고을덕묘지명>에서는 高乙德가문이 中裏小兄을 수여받은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종래 中裏系官 等을 국왕의 측근세력이나 국왕 근시직으로 파악하는 경향이 강하였지만, 기본적으로 관등의 일종이며, 그 성격은 관등제의 운영과 연관시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묘지명에 나오는 ‘상事’는 왕실이 관장하던 국가의 牧馬업무를 지칭한다. 그리고 국왕근시나 궁중사무는 국...
TAG 고구려, <고을덕묘지명>, 중리제, 중앙관제, 상事, Goguryeo, , Jungli Council, center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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