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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294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19세기 후반기 유럽의 군사기술 발전과 군대문화
이내주 ( Lee Nae-joo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8권 81~112페이지(총32페이지)
총력전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약 3천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왜 그토록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을까? 이를 설명하는 요인은 다양하겠지만, 직접적으로는 전쟁수행 수단인 무기와 간접적으로는 이를 운용한 인간집단과 관련되어 있다. 즉, 19세기 후반기 이래 크게 발전한 군사기술과 각종 신형무기, 그리고 시대적 변화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 군 사령관들의 무능이 합해져서 대량 살육전의 비극을 초래했던 것이다. 보다 근본적인 측면에서 제1차 세계대전은 유럽 열강들이 19세기 중반 이래 경쟁적으로 추구해 온 산업혁명의 ‘비극적’ 완결판이었다. 철도의 발달은 동원된 수많은 인력을 빠르게 전선으로 운송할 수 있었고, 무기의 대량생산 덕분에 이들을 단기간 안에 무장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기관총, 대포와 같은 화기 및 철조망은 전쟁 양상을 참호전화하면서 방...
TAG 군사기술, 공격지상주의, 기관총, 살육전, 참호전, 군대문화, Military Technology, Cult of Offensive, Machine Gun, Massive Killing, Trench Warfare, Military Culture
사이버전의 이해와 쟁점
박동휘 ( Park Donghui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8권 113~157페이지(총45페이지)
그동안 인간의 전장 공간은 과학의 발전에 따라 육상으로부터 해상, 공중, 우주로 확대되어 왔다. 심지어 최근 군사사와 안보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각국의 정책결정자들은 정보통신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탄생한 사이버공간마저 새로운 전장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부터 사이버공간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인터넷이 새로운 기획의 장으로써 대중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함과 동시에 사이버전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특히, 2000년대에 들어 각국은 사이버공간을 제5의 전장 공간임을 공식화하였고, 사이버사령부와 같은 부대 창설을 통해 새로운 공간에서의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글은 사이버전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환기시키기 위해 최근 미국 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주요 쟁점 사항을 네 가지 줄기로 묶어 소개하고 있다. 첫 ...
TAG 사이버공간, 사이버전, 사이버전쟁, 비국가 행위자, 공격행위의 귀속과 억제, Cyberspace, Cyber Warfare, Cyber War, Non-state Actor, Attribution and Deterrence
「북변헌책의(北邊獻策議)」으로 본 류성룡의 국방대책
최민규 ( Choi Min-gyu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8권 161~194페이지(총34페이지)
본고는 임진왜란 이전 시기 류성룡의 「북변헌책의」를 중심으로 국방대책의 성격을 파악하고 나아가 남인 국방론의 원형을 확인하고자 하였다. 본고에서 주된 자료로 활용한 「북변헌책의」는 북도사변, 즉 1583년에 발생한 니탕개난에 대한 대응책으로 임진왜란 직전의 동인 국방정책의 특징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북변헌책의」는 총 다섯 가지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대책인 “침략의 근원을 막아야 한다.”는 부분에서 기강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엄격한 인재등용법과 감찰제도를 실시함으로 일시적인 군사적 대응보다는 법에 의존한 대민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대책인 수비의 전략을 정해야 한다는 부분에서는 대신에 要 邑 중심의 방어론인 진관체제 복귀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진관체제 논의에서 핵...
TAG 「북변헌책」의 기강의 확립, 성 중심의 전수론, 공납 개정, 둔전론, Bukbyeonheonchaekeui , Establishment of fundamental principles, Fortress-centered exclusively defensive posture, Revision of tributes, Argument on garrison farm
청대(淸代) 이부吏部) 월선(月選)의 축소에 대하여 -선결(選缺)과 현지임용의 관계를 중심으로-
박찬근 ( Park Chan-keun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8권 195~254페이지(총60페이지)
기존 明의 강역 내에서는 인구증가 및 時宜의 변화 등에 따라 지역별로 통치의 난이도가 변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면서 효율적인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청조는 행정적 변화를 꽤해야 했다. 이를 위해 청조는 명대에 시행되었던 인사행정의 방식을 수정하기로 하고, 또는 새로운 용인의 방식을 창안하기도 하였다. 청조 인사행정에서 창안된 방식의 하나로서 기존의 연구에서도 주목되었던 것은 督撫가 시행하는 인사권이었던 ‘題補’와 ‘調補’였다. 본래 督撫의 題補와 調補는 강희연간에 京師에서 거리가 먼 지역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해 京師와의 행정적 소통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곳, 혹은 현지에서의 신속한 행정처리가 필요한 곳 등에서 먼저 시행되었다. 이후 옹정?건륭연간에 督撫가 현지에서 題補를 할 수 있는 題缺 및 調補를 할 수 있는 調缺, 그리고 吏部 月選의 ...
TAG 월선(月選), 제결(題缺), 조결(調缺), 선결(選缺), 시용(試用), 후보(候補), yue-xuan, ti-que, diao-que, xuan-que, spreading official candidates to a provinces(fenfa), shiyong, houbu
백제(百濟)의 시원과 그 국가재건의 성격
김용섭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8권 257~274페이지(총18페이지)
기존 明의 강역 내에서는 인구증가 및 時宜의 변화 등에 따라 지역별로 통치의 난이도가 변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응하면서 효율적인 통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청조는 행정적 변화를 꽤해야 했다. 이를 위해 청조는 명대에 시행되었던 인사행정의 방식을 수정하기로 하고, 또는 새로운 용인의 방식을 창안하기도 하였다. 청조 인사행정에서 창안된 방식의 하나로서 기존의 연구에서도 주목되었던 것은 督撫가 시행하는 인사권이었던 ‘題補’와 ‘調補’였다. 본래 督撫의 題補와 調補는 강희연간에 京師에서 거리가 먼 지역이나, 전쟁의 여파로 인해 京師와의 행정적 소통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하는 곳, 혹은 현지에서의 신속한 행정처리가 필요한 곳 등에서 먼저 시행되었다. 이후 옹정?건륭연간에 督撫가 현지에서 題補를 할 수 있는 題缺 및 調補를 할 수 있는 調缺, 그리고 吏部 月選의 ...
TAG 백제의 시원, 부여, 마한, 국가재건, 정치이념
청산리 전역시 일본군의 군사체계와 독립군의 대응
신효승 ( Hyo Seung Shin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7권 5~36페이지(총32페이지)
독립운동사에서 청산리 전역이 갖고 있는 의미는 매우 크다. 청산리 전역은 강제병합 이후에도 민족의 주권의지가 계속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독립운동의 이념과 방략을 설정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중요성에 비해서 청산리 전역에 대한 실증적 연구는 부족한 편이다. 이로 인해서 일부 일본 연구자는 청산리 전역등에 대해서 그 성과와 의미를 비판하고 평가절하 하였다. 다행히 이러한 비판은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많은 부분에서 극복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의 일본군을 상대로 소수의 독립군이 승리하였다는 형태의 기본적인 전제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군은 러시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상당한 전비를 소모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추가적인 戰線을 만들어 또다시 병력을 투입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수반되기때문에 병력을 중심으로 한 파병은 어려웠...
TAG 청산리, 김좌진, 홍범도, 간도출병, 독립운동, 무장투쟁, 만주, 간도, Cheongsan-ri region, Kim Jwa-jin, Hong Beom-do, Gando dispatch, armed conflict, Manchu, Gando
중국 연변지구 항일 근거지 연구
현진국 ( Jin Kook Hyeon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7권 37~60페이지(총24페이지)
동만주 항일 근거지의 형성은 조선족 반일기지의 형성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시작은 또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기원한다. 1907년 일본이 용정에서 ‘조선통감부임시파출소’를 세우고 1909년 중국 청정부를 압박해 ‘간도협약’을 체결하면서 중국동북 조선족은 정치상, 경제상에서 일제와 청 정부의 이중압박을 받게 되였다. 1910년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후 수많은 조선인들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피해 중국 동북지구로 이주했다. 그중 적지 않은 반일지사와 군중들은 중국 동북지구에서 사립학교와 민족주의 반일단체를 건립하고 다양한 형태로 반일운동을 전개했다. 중국 연변의 반일 무장단체는 연길현 의라구, 왕청현 소왕청, 안도현 처창즈 등지를 근거지로 일본군과 크고 작은 전투를 진행했고 ‘봉오동’, ‘청산리’의 승리를 거두었다. 이 전투의 승리는 민족주의 반일투쟁을 최고...
TAG 연변, 항일전쟁, 항일근거지, 독립군, 독립운동, 무장투쟁, 독립전쟁, Yanbian, anti-Japanese war, guerrilla base, army for national independence, independence movement, armed struggle, independence war
선춘령과 공험진의 위치 고찰에 관한 연구
이상태 ( Sang Tae Lee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7권 63~93페이지(총31페이지)
고려시대 윤관(尹瓘)이 동북면 쪽의 여진족을 물리치고 9성(城)을 쌓았는데 그 위치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학설(學說)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 등에서는 9성의 위치를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에서부터 두만강 유역 일대까지로 비정하였다. 조선후기의 실학자 일부와 근대의 일본인 학자들은 9성의 위치를 길주이남 함흥평야일대로 비정하였다. 일본인 학자 가운데서도 9성 지역을 가장 축소해 보았던 이케우치히로시는 공험진을 함흥평야 일대로 한정하고, 실제 함흥 부근의 고적을 조사하여 9성의 위치를 설정하였다. 이러한 일인 학자들의 학설은 고려나 조선의 국력을 과소평가하려는 식민지 사관에서 출발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이나 『고려사』의 기록을 검토해보면 일인학자들의 주장은 터무니없음을 알 수 있다. 윤관이 설치한 공험진과 선춘령비는 9성 중에 가장 북쪽에 ...
TAG 선춘령, 공험진, 윤관, 세종실록지리지, 백초구령, Seonchullyeong, Gongheomjin, Yun Gwan, the Annals of the Sejong Dynasty, Backchoguryong
기원전 2천년기 후반~기원전 천년기 초 난하수계의 문화변동과 요서지역과의 상호작용
박상빈 ( Sang Bin Park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7권 95~135페이지(총41페이지)
기원전 2천년기 후반~기원전 천년기 초 난하수계는 하류지역과 중상류지역이 각각 서로 다른 문화변동을 겪었다. 하류지역은 위방3기문화에서 장가원상층문화로 변동하였고, 중상류지역은 요서지역에서 유입된 위영자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가 북방계청동기를 특징으로 하는 초도구유적군과 소하남유적군이 연이어 등장하였다. 이러한 난하수계의 문화변동은 요서지역에도 영향을 미쳐 기원전 2천년기 후반에 들어와 위방3기문화 요소가 요서지역으로 유입되었고, 뒤이어 북방계 청동기가 파급되었다. 문화변동과 상호작용은 기후 변동이나 교환(교역)과 정치적 상황 변화와 같은 여러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하였다. 위방3기문화 요소가 요서 내륙 지역과 요하 하구에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광물자원과 소금 등을 매개로 한 교환(교역)이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2차에 걸쳐 난하수계에 유입된 남류...
TAG 난하수계(난河水系), 위방3기문화(圍坊3期文化), 장가원상층문화(張家園上層文化), 위영자문화(魏營子文化), 상호작용, 북방계 청동기, Luan River basin, Weifangsanqi Culture, Upper Zhangjiayuan Culture, Weiyingzi Culture, Interaction Spheres, Northern Bronzes Complex
병합 전후 재조선일본인(在朝鮮日本人)의 만주(滿洲)인식과 만주(滿洲)진출론 -잡지 『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와 『만한지실업(滿韓之實業)』을 중심으로-
이현희 ( Hyun Hee Lee )  연세사학연구회( 구 연세대학교 사학연구회 ), 학림 [2016] 제37권 137~169페이지(총33페이지)
본고는 병합 전후 재조선일본인 사회에서 제기되었던 만주인식을 살펴보고자 한 연구이다. 明治維新이래 대륙진출을 추구한 일본은 러일전쟁을 통해 조선을 식민지화하고 만주로의 침략을 강화하였다. 이러한 가운데 일제의 식민통치기구들은 조선과 만주의 ‘경영’을 놓고 다양한 시도를 하였다. 이에 따라 개항 이래 상인층을 중심으로 경성을 비롯한 조선 각 지역에 이주하기 시작한 재조선일본인들은 러일전쟁의 승리를 계기로 조선을 확고한 상권으로 장악하고, 새로운 진출 대상으로 만주를 인식하게 되었다. 일제의 만주 ‘진출론’에 대해 재조선일본인들은 상당부분 동조하였다. 잡지 『朝鮮及滿洲』에서는 釋尾旭邦을 비롯한 재조선일본인들의 만주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은 조선과 만주를 이주식민지로서 인식하였는데, 특히 釋尾는 조선과 만주의 역할을 ‘농업의 조선’과 ‘기업의 만주’로 분리하...
TAG 재조선일본인, 조선총독부, 『조선급만주(朝鮮及滿洲)』, 『만한지실업(滿韓之實業)』, 만주인식, Japanese residents in Korea, the Japanese Government-General, Chosenoyobimanshu, Mankannozitsugyo, Perspective on Manchu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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