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주 ( Lee Hyun-ju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2017] 제27권 139~165페이지(총27페이지)
본 연구는 만월태후를 중심으로 신라 중대 왕실여성의 자기인식의 형성, 그에 따른 정치적 입지와 역할에 대해 고찰하였다. 왕실여성은 혼인을 전후로 하여 소속과 역할이 달라진다. 특히 중대에는 진골귀족여성이 혼인을 통해 왕실일원으로 소속이 변경된다. 따라서 왕실혼인은 왕실여성의 자기인식이 형성하는 기제로 작용한다. 왕실여성의 자기인식은 정치적 입지의 확립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역할로 표상된다. 즉 소속에 따른 신분의 변동은 심리적 기반의 이동을 가져오고, 이는 정치적 행위로 표출되어 나타나게 된다.
특히 신라 중대의 왕실여성은 혼인을 매개로 하여 진골귀족과 왕실의 접점에 위치한다. 진골귀족여성은 혼인으로 인해 왕실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만월태후는 신라 중대의 왕실여성의 자기인식의 형성과 정치적 역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만월태후는 경덕왕의 왕후이자 ...
한영화 ( Han Young-hwa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2017] 제27권 119~138페이지(총20페이지)
습속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오랫동안 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생성되었으며, 공동체 내에서 사회적 규범으로 작동하면서 관습이 된다. 습속과 관습은 공동체의 구성원들에 의해 자연적으로 생성된 것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구성원들을 규제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였다. 본 논문은 한국 고대사회에서 나타나는 남녀의 결합으로서의 혼인과, 이 관계를 파괴하는 간음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혼인 관계가 파괴되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지만, 그중 간음은 처벌을 동반함으로써 규제의 측면을 가장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남녀의 결합으로서 혼인은 절차, 형태, 구성 등의 의식을 통해 혼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들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행동양식을 제시함으로써 규범화된다. 그리고 이 규범을 위반할 경우, 그리고 규범을 통해 만들어진 관계를 파괴할 경우 범죄로 치부되어 처벌이 수반되었다. 고조선...
양희영 ( Yang Hee-young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2017] 제27권 219~247페이지(총29페이지)
이 글은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폴린 롤랑의 삶과 사상을 살펴본다. 1830년대 전반기 생시몽주의자로서 앙팡탱의 새로운 도덕을 열렬히 수용했을 때부터 1848년 혁명기 ‘공동생산조합 연합’ 건설에 헌신하다 투옥될 때까지 그의 삶을 이끈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의 종식과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평등에 대한 신념이었다. 결혼을 거부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운 어머니로서의 지난한 삶, 노동자 공동생산조합에 대한 헌신과 비판, 유형지 알제리로부터의 귀환 중 맞이한 때 이른 사망은 19세기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복잡성, 그 한계와 가능성을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이 글은 19세기 전반 프랑스의 사회주의자 페미니스트 폴린 롤랑의 삶과 사상을 살펴본다. 1830년대 전반기 생시몽주의자로서 앙팡탱의 새로운 도덕을 열렬히 수용했을 때부터 1848년 혁명기 ‘공동생산조합 연합’ 건설에 헌신하다 투옥될 때까지 그의 삶을 이끈 것은 ‘인간에 의한 인간 착취’의 종식과 남성과 여성의 완전한 평등에 대한 신념이었다. 결혼을 거부하고 홀로 세 아이를 키운 어머니로서의 지난한 삶, 노동자 공동생산조합에 대한 헌신과 비판, 유형지 알제리로부터의 귀환 중 맞이한 때 이른 사망은 19세기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의 복잡성, 그 한계와 가능성을 생생하게 드러내준다.
권순형 ( Kwon Soon-hyung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2017] 제27권 167~191페이지(총25페이지)
열녀는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성리학 수용으로 그 단초가 보이기 시작하여 조선시대에 본격화되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런데 고려시대에는 전 시기에 걸쳐 절부라는 존재가 보인다. 본고는 이 절부와 고려 말 열녀의 관계를 보고자 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수절이 의무가 아니어서 절부는 누구의 강요가 아닌 여성자신의 선택이었다. 절부들은 장성한 아들이 있어도 호주로 파악되었으며 시부모를 봉양하고 아이를 양육하며 집안의 어른으로 살았다. 또한 불교에 귀의하여 제2의 인생을 살기도 하였다. 이처럼 고려의 절부는 남편 사후 신체를 훼손하거나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던 조선의 열녀에 비해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 그 이유는 절부가 기반한 사회구조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즉 고려의 비부계적인 가족제도, 여성 호주, 자녀균분상속, 부처가 동등하게 어버이로서 여겨졌던 사회적 특성 등...
강수옥 ( Kang Su-ok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2017] 제27권 93~117페이지(총25페이지)
중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조선족”이란 이름으로 살아가는 한민족이 약 200만 명에 달한다. 조선족들은 중국이라는 환경 속에서 중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동시에 세계 어느 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보다도 한민족으로서의 강한 민족정체성과 문화정체성을 형성하고 유지해왔다. 중국 조선족은 한반도의 한민족과 같은 핏줄인 동시에 중국 국민이기도 하다.
그들의 의식에는 조선족으로서의 민족의식과 중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의식이 혼재하며 이 같은 이중정체성으로 인해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지금까지 중국 조선족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한 연구는 중국 국내뿐만 아니라 한국을 비롯한 해외에서도 활발히 이루어져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 이주 한민족 2세 여성들의 삶과 정체성 문제에 대한 연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 성과와 문제점을 참고하고 문헌자...
홍윤정 ( Hong Yun-jeong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2017] 제26권 1~26페이지(총26페이지)
미주 한인사회는 1902년부터 대한제국의 공식 이민으로 형성되었으며, 초기 이민자 대부분이 남성이었으므로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면서 한인의 하와이 이민이 금지되어 더 이상 새로운 이민자가 하와이 한인사회에 유입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입국은 허용되었다. 한편 남성중심의 하와이 한인사회의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진 혼인이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1910년에서 1924년 사이 천여명의 사진신부가 하와이로 갔다.
사진혼인으로 하와이에 도착한 사진신부들은 노동이민자였던 남편들보다 근대교육을 받아 계몽된 젊은 여성들이 많았고, 이들은 하와이 한인사회변화의 원동력이 되었다. 하와이 한인사회는 초기 자치회 성격의 단체를 조직하였는데, 1905년 을사늑약 이후 항일독립운동을 위한 정치적 단체로 변모하게 된다. 사진신부들 ...
이미선 ( Lee Mi-seon )한국여성사학회, 여성과 역사[2017] 제26권 171~197페이지(총27페이지)
본고는 중종의 후궁 熙嬪洪氏(1494∼1581)의 생애와 정치적 행보를 살펴본 연구로서, 생애 가운데에 己卯士禍를 중심으로 고찰하였으며,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을 복원하는 데에 주된 목적을 두었다. 이 연구의 주된 자료는 주로 『조선왕조실록』, 『연려실기술』 그리고 『묘지명』 등이며 기타 자료를 활용하였다.
희빈홍씨는 반정공신 洪景舟의 딸이자 鳳城君의 어머니이다. 그녀는 중종반정이후 13살에 부친 홍경주의 공훈에 힘입어 후궁이 되었고, `勳戚政治` 또는 `戚臣政治` 시기에 왕실의 여성으로서 학자 관료인 조광조 일파를 제거하는 데에 조력하였다. 보통 `己卯士禍`로 불리는 이 사건에서 그녀는 중종에게 조광조 일파를 비방하였고 궁궐에 퍼져 있는 유언비어를 전달하는 등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그 결과, 새로운 정치 세력인 사림파를 축출하고 자신이 지지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