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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AND 간행물명 : 백제문화503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백제 무왕대의 정국변화와 미륵사 조영
강종원 ( Jong Won Ka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285~310페이지(총26페이지)
『三國遺事』무왕조와 <舍利奉安記>의 내용은 무왕대 미륵사가 조영된 사실을 말해 준다. 그런데 이들 두 자료는 미륵사 창건 주체와 시기 등에 있어서 상이한 내용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 자료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 대한 충분한 검토와 이해가 필요하다. 그 동안 미륵사의 조영 문제를 밝히는데 있어 『三國遺事』 무왕조가 논거의 핵심이었는데, 미륵사지 서탑에서 <舍利奉安記>가 출토됨으로써 미륵사의 조영주체로 沙託왕후의 존재, 조영시기도 무왕 40년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렇지만 『三國遺事』 무왕조가 일정부분 역사적 실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익산지역은 무왕의 성장지이자 정치적 기반이었다. 그로 인해 무왕은 익산경영을 통해 왕권을 안정화시켰으며, 그 과정에서 미륵사가 창건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무왕은 즉위후...
TAG 미륵사, 사리봉안기, 무왕, 선화왕비, 사씨왕후, 제석사, Mireuksa, Saribongangi, King Mu, Queen SunHwa, Queen Sa, Jeseoksa
백제(百濟) 喪葬儀禮(백제상장의례)의 硏究(연구) -(금강유역)錦江流域 상장의례 遺蹟(유적)의 意味(의미)-
이남석 ( Nam Seok Lee ) , 이현숙 ( Hyun Sook Lee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311~335페이지(총25페이지)
喪葬儀禮는 인류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통과의례이지만, 절차적 행위로 기록되지 않을 경우 영속적이고 명시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특징 때문에 구체화하기 어렵다. 그런데 최근 중서부 지역, 특히 금강유역의 百濟권역에서 이루어진 유적발굴 결과 백제 상장의례의 이해를 증진시킬수 있는 것들이 발견되었음에, 이의 검토를 통해 기왕의 이해를 보다 진전시켜 보았다. 백제의 상장의례와 관련된 시설로 墳墓區域에 남겨진 유구로 공주 송산리 고분군의 방단적석유구, 공주 수촌리 고분군내 적석유구, 공주 웅진동 유적의 분묘와 공반 조성되어 있는 건축유구, 그리고 부여 능산리 능사의 북편 건물지 후면의 석축유구를 주목하여 보았다. 그리고 천안의 정촌 유적이나 아산의 갈매리 유적도 세종 평기리나 서천 봉선리 유적과 더불어 3~4세기 무렵의 상장의례 시설로 살필 수 있는 자료이다...
TAG 백제 상장의례, 백제묘제, 횡혈식석실묘, 의례, 송산리고분군, Funeral rituals, Baekje graves, Ritual, Chember tombs, Songsanri-Gobungun
2015년 발행 초등사회 5-2(역사) 구성에 대한 비판적 검토
김주성 ( Joo Seong Kim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6] 제54권 337~354페이지(총18페이지)
초등교과서는 발행되자마자 역사교육연대회의에서 오류를 검토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사실을 정확하게 기술한다는 것은 역사의 기본인 만큼 꼭 수정되어야 할 것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교과서가 전체적으로 정합성을 갖는 체제를 갖추는 일이다. 이런 관점에서 초등교과서의 내용을 목차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고려편의 ‘세계와 활발하게 교류한 고려’는 고려가 아랍과 빈번한 교류를 했다는 점을 염두에 둔제목으로 사실과 달라 ‘문벌귀족사회인 고려’로 수정해 보았다. 이어서 대단원과 중단원의 정합성을 고려하면서 목차를 수정해보았다. 그리고 중단원과 소단원의 정합성과 소단원과 서술의 정합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하여 아동들의 흥미와 인지발달 정도에 맞춘 서술로 생활사와 문화사 중심의 서술이 아직 학계에서 구체적인 연구성과를 얻지 못한 점이 있어 ...
TAG 초등교과서, 정합성, 목차, 생활사, 문화사, Elementary school textbooks, the integrity, the table of contents, the life history, the cultural history
武寧王(斯麻) 卽位過程 檢討
최욱진 ( Wuck Jin Choi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5] 제53권 5~26페이지(총22페이지)
곤지의 아들인 무령왕(사마)은 곤지가 왜국으로 향하던 도중 태어나 곤지의 뜻에 따라 백제로 보내졌다. 백제에 머물고 있던 사마는 곤지가 왜국에서 귀국하자 곤지를 도와 정국에 참여하게 되었다. 곤지는 사마 그리고 귀국시 함께 한 세력 등과 더불어(곤지계) 문주왕을 도와 해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견제하였지만, 결국 제거되고 말았다. 곤지의 사후 사마는 곤지계를 이끌며, 반해구세력의 구성세력으로서 참여하였다. 그리고 반 해구세력은 결국 해구를 중심으로 한 세력을 제거할 수 있었다. 이후 왕위를 놓고 문주계와의 정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왜국에서 들어온 이모제인 모대가 진씨 등의 지지를 받게 되자 결국 왕위를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동성왕은 즉위 이후 경쟁자였던 사마를 정국운영과정에서 배제하고 다양한 세력의 참여 속에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아갔다. 하...
TAG 무령왕, 사마, 동성왕, 모대, 곤지, 정변, 백가, 국인, King Muryeong, Sama, King Dongseong, Modae, Gonji, coup, Baekga, potent influences, Guk-in
웅진기(熊津期) 백제(百濟)의 가야(加耶),왜(倭)와의 관계(關係) 변화(變化)
장수남 ( Su Nam Jang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5] 제53권 27~54페이지(총28페이지)
이 글은 백제가 웅진 천도 후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기 위해 선택한 백제 외교망의 운영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었는지를 고고자료와 문헌사료를 토대로 하여 살펴본 것이다. 백제인 모두의 관심은 고구려의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국왕과 지배층은 무너진 지배체제를 재건해고자 하였다. 여기서 그들이 우선적으로 선택한 것은 백제의 든든한 외교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특히 한성기부터 우호관계를 지속해 왔던 가야와 왜의 관계를 어떻게 운용하는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웅진기 백제와 가야와의 관계는 그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우호관계였던 가야는 백제가 위기를 겪고 있는 틈을 타 이전과 달리 서진하여 백제의 영역을 일시나마 점유하였다. 이것은 금강 상류, 섬진강 이서 지역으로 확산되는 가야 유물과 『일본서기』의 일부 기록을 통해 짐작해 볼 수 ...
TAG 백제 외교망, 가야의 서진, 우호관계, 왜계 고분, 왜인 활용, international circumstances, friendly relationship, western region, Japan`s tombs, diplomatic network, mobilized some of Japan`s people
연화문으로 본 능산리 동하총의 편년
조원창 ( Weon Chang Cho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5] 제53권 55~80페이지(총26페이지)
능산리 고분군은 동나성과 능산리사지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는 모두 7기의 무덤이 정비·복원 되어 있다. 사비천도 이후 축조된 것으로 터널식 및 고임식, 수평식의 횡혈식 석실분이 조성되어 있다. 동하총은 제1호분으로 현실 내부에는 사신도와 연꽃, 구름 문양 등이 채색되어 있다. 벽면과 천정 모두 판석을 사용하였고, 단면은 4각형을 이루고 있다. 백제 고분 형식 중 수평식으로 불리고 있다. 그런데 수평식은 일찍이 중국 한대의 공심전묘에서 그 사례를 살필 수 있고, 위진남북조시기의 조양 원대자 동진 벽화 무덤에서도 그 속성을 찾아볼 수 있다. 따라서 이 형식은 사비천도 후 중국 남북조의 영향을 받아 조영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하총 내부의 벽화는 고구려 진파리1호분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연자가 없는 판단첨형의 연...
TAG 백제, 능산리, 고분, 연화문, 벽화, Baekje, Neungsalli, tumulus, Lotus pattern, mural paintings
일본 속 백제 유물의 범위와 의미
김영심 ( Young Shim Kim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5] 제53권 81~100페이지(총20페이지)
4세기 후반 공식적인 외교관계를 맺은 이후 백제는 일본에 선진문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300년간 지속된 우호관계 속에서 인적 교류와 문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짐에 따라 백제와 왜의 관계를 보여주는 유물들이 일본에서 다수 확인되었다. 비교연구 자료가 증가한 만큼 그동안 백제유물, 백제문화라고 막연히 규정해왔던 것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과 범위 설정이 필요한 시점이다. 백제에서 전해졌다고 해서, 또 백제계 이주민과 그 후예가 만들었다고 해서, 또 백제적인 요소 내지 특징이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백제 유물로 규정할 수는 없다고 본다. 일단 ‘일본 속 백제 유물’을 일본에 남아있는 백제 제작의 유물과 함께 백제적 요소가 더 비중있게 나타나는 백계 계통 유물이라는 의미로 규정하고 몇 가지 사례를 검토하였다. 백제에서 왜에 보내준 칠지도는 백제의 문...
TAG 문물 교류, 백제계 이주민, 백제적 요소, 칠지도, 백제관음, 일본 문화, interchange of culture and civilization, immigrants from Baekje`s region, features of Baekje, Chiljido, seven branch sword, the Baekje Bodhisattva of Compassion, Japanese culture
후백제(後百濟)와 오월국(吳越國) 교류(交流)에서의 신지견(新知見)
이도학 ( Do Hack Lee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5] 제53권 101~116페이지(총16페이지)
후삼국시대의 후백제는 중원대륙의 오월국이나 후당 그리고 거란 뿐 아니라 일본열도와의 교류도 시도하였거니 교류가 이루어졌었다. 이 중 후백제가 가장 빈번하게 교류를 하였을 뿐 아니라 시종 후백제편을 들어주었던 국가가 오월국이었다. 그랬기에 935년에 후백제 내부에서 발생한 政變과 紛爭에서 패배한 金剛 계열 호족들이 대거 오월국으로 망명을 한 것으로 보인다. 오월국은 응당 이들을 비호해 주었다. 게다가 오월국은 신검 정권을 승인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격분한 신검은 오월국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멸망 직전인데다가 親高麗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後唐과의 교류를 추진한 所以로 판단된다. 천안 지역 사찰터에 남겨진 보협인석탑은 오월국왕 전홍숙이 955년에 鑄成되었던 阿育王 故事에 따라 8만4천 基의 小塔을 만들어 다른 나라에 나누어 준 그 실물이었다. 더구나 오월국 정권...
TAG 후삼국시대, 후백제, 오월국, 신검, 천안, 보협인석탑, 최행귀, the later three kingdoms period, Later Baekje, Kingdom of Wuyue, Shingum, Cheonan, Stone Dhatu-Karanda Stupa, Choi Hang-gui
한양도성 축조기법 연구 -백제 성곽과의 비교를 중심으로-
신희권 ( Hee Kweon Shin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5] 제53권 117~138페이지(총22페이지)
조선 태조 때 축조된 이래 조선 후기까지 지속적으로 수축되어 온 한양도성의 축조에는 우리나라 고대 성곽 축조에 이용된 다양한 기법들이 동원되었다. 한양도성은 구릉 및 능선부의 기저부 조성 방식에서 백제 석축산성의 축조기법이 관찰되고, 저지대의 기초를 강화하기 위한 말뚝기초는 서울의 풍납토성과 부여 나성 등지에서도 확인된다. 한양도성의 성벽은 지형에 따라 내외협축과 내탁으로 축조하였는데, 내탁법은 백제 산성의 축조에 주로 이용되는 중요한 축성법이며, 일부 구간에서 확인된 내측 성벽을 보호하기 위한 피복층도 풍납토성의 외벽에서 확인된 바 있다. 한양도성의 발굴조사에서는 태조연간, 세종연간, 숙종연간 등에 축조된 성벽이 두루 발굴되었고, 시대별로 다른 축조수법과 재료를 보이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특히 세종연간 이후의 축조기법은 백제 석축산성의 석재와 면석 처리 기...
TAG 한양도성, 축조기법, 백제, 석축산성, 내탁, 토축 속심, Seoul City Wall, construction methods, Baekje, stone fortress, naetak style, earth-built inner side
지형 및 GIS 분석에 따른 나주 오량동유적의 입지 특성
박지훈 ( Ji Hoon Park ) , 이찬희 ( Chan Hee Lee ) , 전용호 ( Yong Ho Jeon )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2015] 제53권 139~157페이지(총19페이지)
이 연구에서는 지형 및 GIS 분석을 이용하여 전남 나주 오량동유적(이하 오량동유적)의 고고과학적 입지환경을 검토하였다. 지형분석 결과, 오량동유적 주변은 하천환경(영산강), 해수환경(서해) 및 산지·구릉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오량동유적은 영산강 본류로부터 약 1km 떨어진 특정 구릉의 말단부에 입지하고 있다. 유적 스케일의 GIS 분석 결과, 오량동유적은 표고 9.9~18.1m, 경사도 9.1° 미만인 평탄지(또는 완경사지)에 입지하며, 유적이 분포하는 사면은 남향계열(남, 남동, 남서)이 52.1%로서 가장 넓게 나타났다. 유구 스케일의 GIS 분석 결과, 오량동유적 유구는 표고 10.3~15.8m(평균 13.3m), 경사도 1.7~6.9°(평균 3.9°)인 평탄지(또는 완경사지)에 입지하며, 유구의 사면은 남서향과 북...
TAG 입지환경, 지형분석, GIS분석, Location environment, Geomorphological analysis, GIS analy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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