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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한일민족문제학회331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1945년 전후 사할린 거주 한국인들의 민족적,문화적 정체성 형성에 있어서의 다양성 연구-이회성의 『백년동안의 나그네』 분석을 중심으로-
민병은 ( Byung Eun Min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6] 제30권 161~196페이지(총36페이지)
재일코리안(한국인·조선인)의 탄생은 조선인이 일본의 피식민지배자였을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으로의 이주는 일본의 식민통치 이전에도 존재하였지만, ``재일``이라는 용어는 식민지 통치 중, 그 결과로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과 그 자손들을 일컫는다. 현재 재일코리안은 최대 이민7세대까지 이르렀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재일 소설가 이회성의 장편소설 『백년동안의 나그네』를 통하여, 1세대와 2세대 재일코리안의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의 다양함을 면밀히 해석하고자 한다. 2장에서 필자는 재일 코리안의 탄생에 영향을 준 역사적 시점과 상황을 간략하게 열거한다. 물론 일본, 미국 그리고 둘로 나뉜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요인들이 그러한 역사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였다. 3장에서는 소설을 면밀히 해석함으로써 사할린 한인들 사이에 존재했던 격차들에 대해서 다룬다. 이러한 ...
TAG 사할린 한인(Koreans in Sakhalin), 재일코리안(Koreans in Japan), 자이니치(Zainichi), 정체성 형성(identity formation), 이회성(Lee Hoeseong), 백년동안의 나그네(Baeknyeon donganui nageune/Hyakunenno tabibitotachi)
식민지향수의 역설-「나쓰카시이 조선」담론을 통한 "식민자 의식"의 부정-
신호 ( Ho Shin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6] 제30권 197~223페이지(총27페이지)
재일코리안(한국인·조선인)의 탄생은 조선인이 일본의 피식민지배자였을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일본으로의 이주는 일본의 식민통치 이전에도 존재하였지만, ``재일``이라는 용어는 식민지 통치 중, 그 결과로 일본으로 이주한 이들과 그 자손들을 일컫는다. 현재 재일코리안은 최대 이민7세대까지 이르렀다. 본 논문에서 필자는 재일 소설가 이회성의 장편소설 『백년동안의 나그네』를 통하여, 1세대와 2세대 재일코리안의 민족적·문화적 정체성의 다양함을 면밀히 해석하고자 한다. 2장에서 필자는 재일 코리안의 탄생에 영향을 준 역사적 시점과 상황을 간략하게 열거한다. 물론 일본, 미국 그리고 둘로 나뉜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요인들이 그러한 역사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였다. 3장에서는 소설을 면밀히 해석함으로써 사할린 한인들 사이에 존재했던 격차들에 대해서 다룬다. 이러한 ...
TAG 재조일본인2세(Second Generation Japanese Settlers in Colonial Korea), "나쓰카시이 조선"("Nostalgia Chosen"), 식민자 의식(colonial consciousness),  향수(nostalgia), 연속성(continuity), 단절(discontinuity), 역설(The paradox)
조선인 강제동원 연구의 현황과 과제
히구치유이치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6] 제30권 225~251페이지(총27페이지)
이 글은 전후 70년을 맞이하는 2015년 현재, 조선인 강제동원 연구의 성과와 과제를 정리한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지역사회 시민들의 노력으로 수많은 강제동원의 사실과 역사를 밝혀왔다. 한국에서는 한국강제동원조사위원회의 출범으로 한반도를 비롯하여 일본, 사할린, 남양군도, 중국 등 포괄적인 조사가 가능하였다. 아울러 한일민족문제학회에서 동 분야에 대한 연구를 지속적으로 발표함으로써 큰 진척이 있었다. 그렇지만 강제동원 사실 규명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 조선인 동원자 총수, 기업별 희생자수, 일본 내 작업장 등 밝혀야 할 내용들이 많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반도내 노동동원, ``만주``·타이완을 포함한 중국, 남양을 포함한 일본 침략지역 등에 대한 연구도 미해결된 부분이 많다. 새로운 사실을 규명하는 작업 못지않게 학계에서의 자리매김도 중요하다. ...
메이지(明治)후기 일본인으로서의 척식교육론
오쿠마토모유키 ( Tomoyuki Ohkuma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5] 제29권 5~37페이지(총33페이지)
본고는 메이지후기에 일본인론으로서 전개되었던 ‘척식교육’론의 특징을 밝힌 것이다. ‘척식교육’은 출이민의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한다. 1900년경의 종합잡지 지면의 논의와 러일전쟁후의 대표적인 논자인 타케코시 요사부로(竹越與三郞)·시가 시게타카(志賀重昻)의 척식교육론을 검토했다. 그 결과 밝힌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1900년경의 종합잡지의 논의를 검토한 결과, 척식교육론의 출처의 하나가 < 일본인론으로서의 식민론 >이란 것이 확인되었다. 그 논의의 특징은 식민사업의 주체를 국민·민족으로 한다는 것과, 이주지가 정치적 지배하에 있는지 여부를 불문하고, ‘식민’으로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당시 북미의 배일운동(排日運動)을 배경으로 일본인의 식민적 자질에 불안을 표명하고, 서양의 식민국을 본받아 국민성을 개량해야 한다고...
TAG 메이지후기, 明治後期, Late Meiji, 일본인론, 日本人論, Nihonjinron, 척식교육론, 拓殖敎育論, Emigrant education, 타케코시 요사부로, Yosaburo Takekoshi, 竹越與三郞, 시가 시게타카, 志賀重昻, Shigetaka Shiga
일본의 전쟁 인식화 -동학농민전쟁,청일전쟁 시기를 중심으로-
강효숙 ( Hyo Suk Kang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5] 제29권 39~70페이지(총32페이지)
근대이행기, 일본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한 전쟁은 국내 통일을 목적으로 한 홋카이도 점령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등 해외침략전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해외침략전쟁의 배경에는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에도(江戶) 막부 말 구로부네(黑船)의 충격은 일본 지식인에게 서구문명에 대해 환상을 갖게 하였고, 이는 메이지(明治)정부 성립 이후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한국”, “征韓論”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당시일본이 마주한 “절실한 문명(=자주적 국가, 독립)”이라는 한정 속에서 전쟁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일본정부는 제임스 로리마의 ‘문명국’을 향해 조약개정 노력에 진력하였다. 선진 식민제국과 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국제법을 만든 문명국 대열에 들어간...
TAG 일본, Japan, 전쟁, War, 인식, Recognition, 동학농민전쟁, Donghak Peasant War, 청일전쟁, Sino-Japanese War, 후쿠자와유키치, Fukuzawa Yukichi, 야마모토 아리토모, Yamagata Aritomo, 탈아론, Leaving Asia, 정한론, Seikanron, Korea conquest theory, 러일전쟁, Russo-Japanese wars, 국제법, International law,
일제 말기 관동군(關東軍)의 한인(韓人) 동원과 피해 실태
조건 ( Gun Cho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5] 제29권 71~106페이지(총36페이지)
근대이행기, 일본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한 전쟁은 국내 통일을 목적으로 한 홋카이도 점령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등 해외침략전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해외침략전쟁의 배경에는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에도(江戶) 막부 말 구로부네(黑船)의 충격은 일본 지식인에게 서구문명에 대해 환상을 갖게 하였고, 이는 메이지(明治)정부 성립 이후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한국”, “征韓論”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당시일본이 마주한 “절실한 문명(=자주적 국가, 독립)”이라는 한정 속에서 전쟁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일본정부는 제임스 로리마의 ‘문명국’을 향해 조약개정 노력에 진력하였다. 선진 식민제국과 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국제법을 만든 문명국 대열에 들어간...
TAG 관동군, 關東軍, Kwantung Army, 한인 강제동원, 韓人强制動員, forced mobilization of Koreans, 아시아태평양전쟁, アジア太平洋戰爭, Asia-Pacific War, 중국 동북지역, 中國東北地域, Northeast China 관동군특종연습, 關東軍特種演習, Kwantung Army Special Practice, 남방전용, 南方轉用, moved to southern front, 시베리아 억류, シベリア抑留, Siberi
學術論文 : 日本大衆文化とナショナリズム -プロレスラ一力道山を中心として-
朴順愛 ( Soon Ae Park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5] 제29권 107~137페이지(총31페이지)
근대이행기, 일본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한 전쟁은 국내 통일을 목적으로 한 홋카이도 점령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등 해외침략전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해외침략전쟁의 배경에는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에도(江戶) 막부 말 구로부네(黑船)의 충격은 일본 지식인에게 서구문명에 대해 환상을 갖게 하였고, 이는 메이지(明治)정부 성립 이후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한국”, “征韓論”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당시일본이 마주한 “절실한 문명(=자주적 국가, 독립)”이라는 한정 속에서 전쟁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일본정부는 제임스 로리마의 ‘문명국’을 향해 조약개정 노력에 진력하였다. 선진 식민제국과 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국제법을 만든 문명국 대열에 들어간...
TAG 大衆文化, popular culture, プロレス, pro-wrestling, 力道山, Yeokdosan, 對米ナショナリズム, anti-American nationalism, 對韓ナショナリズム, anti-Korean nationalism
"평화선"피해 일본인 어민에 관한 영상자료
최영호 ( Young Ho Choi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5] 제29권 139~175페이지(총37페이지)
근대이행기, 일본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한 전쟁은 국내 통일을 목적으로 한 홋카이도 점령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등 해외침략전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해외침략전쟁의 배경에는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에도(江戶) 막부 말 구로부네(黑船)의 충격은 일본 지식인에게 서구문명에 대해 환상을 갖게 하였고, 이는 메이지(明治)정부 성립 이후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한국”, “征韓論”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당시일본이 마주한 “절실한 문명(=자주적 국가, 독립)”이라는 한정 속에서 전쟁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일본정부는 제임스 로리마의 ‘문명국’을 향해 조약개정 노력에 진력하였다. 선진 식민제국과 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국제법을 만든 문명국 대열에 들어간...
TAG 어업협정, fisheries agreement, 일본인어민, Japanese fishermen, 영상자료, video resources, 평화선, Peace Line, 이승만 라인, Rhee Syngman Line, RKB 마이니치 방송국, RKB Mainichi Broadcasting Company, 영화, cinema, 뉴스영화, newsreel, TV프로그램, television program
해외 한국민주화운동 -“민주민족통일해외한국인연합”을 중심으로-
조기은 ( Ki Eun Cho )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5] 제29권 177~219페이지(총43페이지)
근대이행기, 일본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한 전쟁은 국내 통일을 목적으로 한 홋카이도 점령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등 해외침략전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해외침략전쟁의 배경에는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에도(江戶) 막부 말 구로부네(黑船)의 충격은 일본 지식인에게 서구문명에 대해 환상을 갖게 하였고, 이는 메이지(明治)정부 성립 이후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한국”, “征韓論”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당시일본이 마주한 “절실한 문명(=자주적 국가, 독립)”이라는 한정 속에서 전쟁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일본정부는 제임스 로리마의 ‘문명국’을 향해 조약개정 노력에 진력하였다. 선진 식민제국과 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국제법을 만든 문명국 대열에 들어간...
TAG 한국민주화운동, Movement for Democratization of Koreans Abroad, 민주민족통일해외한국인연합, Overseas Korean Union for Democratic National Reunification, 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 일본본부, Korean Congress for Democracy and Unification, 한국기독자민주동지회, International Christian Network for Democr
21세기 동북아 역사대화와 한국사회의 시선 -1960,70년대 서독의 경험을 참조한 비판적 검토-
신주백  한일민족문제학회, 한일민족문제연구 [2015] 제29권 221~255페이지(총35페이지)
근대이행기, 일본 메이지(明治)정부에 의한 전쟁은 국내 통일을 목적으로 한 홋카이도 점령부터 시작하여 점차 동학농민전쟁, 청일전쟁등 해외침략전쟁으로 확대되어 갔다. 특히 해외침략전쟁의 배경에는 서구문명에 대한 환상이 진하게 깔려 있었다. 에도(江戶) 막부 말 구로부네(黑船)의 충격은 일본 지식인에게 서구문명에 대해 환상을 갖게 하였고, 이는 메이지(明治)정부 성립 이후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론”과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有朋)의 “일본의 이익선으로서의 한국”, “征韓論”을 탄생시켰다. 이것은 당시일본이 마주한 “절실한 문명(=자주적 국가, 독립)”이라는 한정 속에서 전쟁을 긍정하게 만들었다. 동시에 일본정부는 제임스 로리마의 ‘문명국’을 향해 조약개정 노력에 진력하였다. 선진 식민제국과 평등조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국제법을 만든 문명국 대열에 들어간...
TAG 역사대화, 歷史對話, 역사갈등, 歷史葛藤, 권고안, 勸告案, 분단, 分斷, 통일, 統一, 다자질서, 多者秩序, 긴장완화, 緊張緩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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