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    
발행기관
간행물  
발행연도  
발행기관 :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AND 간행물명 : 경남문화연구325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임진왜란의 문명사적 맥락: 조선의 문화주의와 일본의 군사주의
허남인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7~30페이지(총24페이지)
일본 야마나시현산리현(山梨縣)에 남아 있는 출병의 기억
笹本正治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31~46페이지(총16페이지)
근세, 근대 일본한시문에 나타나는 임진(壬辰)전쟁(戰爭)
合山林太郞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47~63페이지(총17페이지)
메이지(명치) 시대에 있어서『임진왜란』
石田徹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65~80페이지(총16페이지)
중국(中國)과 조선(朝鮮)의 사료(史料)에 나타난 양호(楊鎬)의 두 가지 형상
손위국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81~118페이지(총38페이지)
만력(萬曆) 24년 일본 부사(副使) 심유경(沈惟敬)의 일본행적 고찰
정결서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119~143페이지(총25페이지)
만력 24(1596) 9월, 명나라가 임명한 일본 부사 심유경 일행이 오사카에 입성하여 일본의 통치자 풍신수길을 “일본국왕”으로 책봉하였다. 심유경 일행의 외교활동은 예상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유경 일행의 일본 기행실록, 특히 당시 책봉의 상황으로 볼 때, 풍신수길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인 것은 기꺼이 명나라의 하위에 속하는 방식으로 명나라와의 우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니, 이는 곧 명나라와의 사대(事大) 체재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풍신수길은 조선이 왕자를 파견하여 축하 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통신사 일행의 접견을 거부하였으며, 부산에 체류하고 있던 침략군을 철회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속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심유경 일행은 누차 중간에서 중재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동아시아 평화 건설 활동은 결국 실...
TAG 심유경, 풍신수길, 책봉, 동아시아 평화 건설
임진왜란과 전쟁문학 -오다 마코토, 『소설 임진왜란(민암태합기(民岩太閤記)』을 중심으로
최영호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145~186페이지(총42페이지)
만력 24(1596) 9월, 명나라가 임명한 일본 부사 심유경 일행이 오사카에 입성하여 일본의 통치자 풍신수길을 “일본국왕”으로 책봉하였다. 심유경 일행의 외교활동은 예상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유경 일행의 일본 기행실록, 특히 당시 책봉의 상황으로 볼 때, 풍신수길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인 것은 기꺼이 명나라의 하위에 속하는 방식으로 명나라와의 우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니, 이는 곧 명나라와의 사대(事大) 체재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풍신수길은 조선이 왕자를 파견하여 축하 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통신사 일행의 접견을 거부하였으며, 부산에 체류하고 있던 침략군을 철회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속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심유경 일행은 누차 중간에서 중재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동아시아 평화 건설 활동은 결국 실...
중국 현대 소설에 나타난 임진왜란의 한 단면 ? 이호백(李浩白)의 『항일원조(抗日援朝) 1592』을 중심으로
전병철 , 김지영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187~202페이지(총16페이지)
만력 24(1596) 9월, 명나라가 임명한 일본 부사 심유경 일행이 오사카에 입성하여 일본의 통치자 풍신수길을 “일본국왕”으로 책봉하였다. 심유경 일행의 외교활동은 예상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유경 일행의 일본 기행실록, 특히 당시 책봉의 상황으로 볼 때, 풍신수길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인 것은 기꺼이 명나라의 하위에 속하는 방식으로 명나라와의 우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니, 이는 곧 명나라와의 사대(事大) 체재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풍신수길은 조선이 왕자를 파견하여 축하 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통신사 일행의 접견을 거부하였으며, 부산에 체류하고 있던 침략군을 철회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속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심유경 일행은 누차 중간에서 중재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동아시아 평화 건설 활동은 결국 실...
혜산(惠山) 이상규(李祥奎)의 『역대(歷代)천자문(千字文)』 간행 연구
이정희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205~233페이지(총29페이지)
만력 24(1596) 9월, 명나라가 임명한 일본 부사 심유경 일행이 오사카에 입성하여 일본의 통치자 풍신수길을 “일본국왕”으로 책봉하였다. 심유경 일행의 외교활동은 예상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유경 일행의 일본 기행실록, 특히 당시 책봉의 상황으로 볼 때, 풍신수길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인 것은 기꺼이 명나라의 하위에 속하는 방식으로 명나라와의 우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니, 이는 곧 명나라와의 사대(事大) 체재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풍신수길은 조선이 왕자를 파견하여 축하 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통신사 일행의 접견을 거부하였으며, 부산에 체류하고 있던 침략군을 철회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속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심유경 일행은 누차 중간에서 중재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동아시아 평화 건설 활동은 결국 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경남지역(慶南地域) 한적(漢籍) 간행(刊行)의 분포(分布)와 특징(特徵)
전병철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경남문화연구 [2012] 제33권 235~270페이지(총36페이지)
만력 24(1596) 9월, 명나라가 임명한 일본 부사 심유경 일행이 오사카에 입성하여 일본의 통치자 풍신수길을 “일본국왕”으로 책봉하였다. 심유경 일행의 외교활동은 예상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유경 일행의 일본 기행실록, 특히 당시 책봉의 상황으로 볼 때, 풍신수길이 명나라의 책봉을 받아들인 것은 기꺼이 명나라의 하위에 속하는 방식으로 명나라와의 우의적인 관계를 유지하고자 한 것이니, 이는 곧 명나라와의 사대(事大) 체재를 이룬 것이다. 그러나 풍신수길은 조선이 왕자를 파견하여 축하 오지 않았다는 핑계로 통신사 일행의 접견을 거부하였으며, 부산에 체류하고 있던 침략군을 철회하려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계속적으로 조선을 침략하고자 하였다. 심유경 일행은 누차 중간에서 중재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고, 동아시아 평화 건설 활동은 결국 실...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