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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기관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AND 간행물명 :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827 개 논문이 검색 되었습니다.
마한·백제권 고분과 합천 삼가고분군 다곽식고분의 비교 -전남지역 고총고분을 중심으로-
최영주 ( Young-joo Choi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5~30페이지(총26페이지)
본 논문은 마한·백제지역 가운데 전남지역의 고총고분 중 나주 복암리 3호분과 신촌리 9호분을 중심으로 합천 삼가고분군과의 고분의 축조 순서와 기술에 대해서 비교 검토하였다. 전남지역의 고총고분과 삼가고분군의 다곽식고분은 선행하는 매장시설을 인식하면서 다장을 통한 수직확장과 주구의 의례행위 등에서 공통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양 지역의 고분은 고분의 입지와 분형, 매장시설과 위치, 고총화 방식과 축조기술 등에서 차이를 보였다. 그중에서 고분의 고총화 과정에서 양 지역의 고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전남지역 고총고분은 선행분구 조정과 수직확장을 통한 고총화를 했기 때문에 이에 맞는 구축기술이 필요로 했다. 그러나 삼가고분군에서는 중 소형분이 경사면을 따라 위쪽으로 봉분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고총화를 했기 때문에 구축기술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합천 삼가고분군...
TAG 삼가고분군, 다곽식고분, 고총고분, 전남지역, 고총화 방식 Samga ancient tombs, Multi-chambered ancient tombs, High-mound tombs, Jeonnam Region, The method of high mound
6~7세기 백제의 대왜(對倭) 교섭에서 사신(使臣)의 파견과 역할
장미애 ( Mi-ae Jang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31~56페이지(총26페이지)
6~7세기 동아시아는 격변의 시기를 맞고 있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의 대립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에서는 수와 당이라는 統一帝國이 형성되었으며, 왜 역시 大化改新을 전후로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었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격렬한 변화는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백제에게도 대외 교섭의 중요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이 시기 백제의 대외 교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 이들 중 하나는 使臣이었다고 생각한다. 위덕왕 대 전반기에는 관산성 패전의 후유증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왜와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다. 그러나 이후 신라의 대왜 교섭이 본격화되고, 왜의 대외 정책 역시 다면외교로 전환되어 가자 백제 역시 왜와의 교섭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한편 642년과 643년에는 政變으로 추방된 翹岐의 渡倭 백제 국내에서 이루어졌던 정치적 문제로...
TAG 對外交涉, 對倭交涉, 使臣, 翹岐, 對外政策, Negotiation with foreign countries, Negotiation with Wae, , Envoy, Gyogi, Foreign policy
멸망기 백제 태자 기록의 상이성과 그 원인
김수미 ( Su-mi Kim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57~83페이지(총27페이지)
각종 국외 자료에서 7세기 백제의 마지막 태자는 융이라고 하였다. 우리 측 『삼국사기』에서는 융을 태자가 아닌 왕자로 기재하였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태종무열왕 7년의 백제 멸망과정 기사는 중국 측 기록에는 없는 신라의 전승 자료를 원전으로 하였다. 신라본기에서는 의자왕의 태자가 융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신라본기에서 융은 백제 왕자, 의자의 아들로 서술되어 의자왕의 수많은 아들 중 한 명이 되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 태종무열왕 7년조의 융 관련 기록들은 충돌하고 있다. 이 기록의 충돌은 나당연합군에게 좌평, 상좌평, 왕의 서자를 파견했던 백제 왕자가 중대한 국정을 결정하고 수행하는 것이 그 하나이다. 둘째, 사비성에서의 융의 항복과 신라 태자 법민이 융에게 침을 뱉고 모욕한 사건, 셋째 의자왕과 태자 효가 웅진성을 나와 항복한 이후의...
TAG 태자, , , 문사, 의자왕, 백제본기, 신라본기, Jung, Hyo, Munsa, KingUija, Baekjebongi, Sillabongi
고려·조선 초기 영암지역 역로망과 역원 - ‘영보월(永保)’명 기와 출토 유적과 관련하여 -
한정훈 ( Han Jeong-hun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85~114페이지(총30페이지)
고려·조선시대에 서해와 남해를 잇는 교통입지에 자리한 영암지역의 역로는 연근해 항로만큼 활용 가치가 높았다. 고려시대 영암 동북쪽에서 오림역(烏林驛)을 통과해 나주에 이르는 ‘오림역로’에 더해 조선 초기에는 신안역이 신설되면서 ‘신안역로’가 추가 개통되었다. 이렇게 15세기 전반기에 역원(驛院)의 확충이나 고갯길의 정비 등을 통해 역로망이 재편되었다. 세조 초기에는 영보역 중심의 ‘영보도(永保道)’라는 역도망도 짧게나마 운영되었다. 영암 영보역(永保驛)은 벽사도(碧沙道)·영보도·청암도(靑巖道)로 소속 역도가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인근 고을을 연결하는 중심 교통시설로 성장하였다. 위의 내용과 관련하여 영보역 터일 가능성이 제기된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유적에 관해서도 검토하였다. ‘영보역(永保驛)’명 기와편을 비롯한 여러 유물을 분석한 결과, 해당 유적은 영...
TAG 영보역, 역로망, 영보도, 역원, 驛院, 보현원, Yeongbo post, post road network, Yeongbo road, yeonkwon, Bohyeonwon, 普賢院
조선전기 치도형(治盜刑)과 난장(亂杖)의 유래와 운영
차인배 ( Cha In-bae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115~140페이지(총26페이지)
본 연구는 조선시대 도적을 다스리기 위해 사용한 난장의 유래를 고찰하였다. 난장은 죄수의 自服을 받기 위해 그의 발바닥과 발가락을 때리는 형벌로 그 기원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난장은 조선초부터 1777년(영조 46년)까지 약 340여 년 동안 도적을 단속하는 형벌로 존속했다. 난장은 도적·강도 등 절도죄수의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고안된 이른바 治盜刑이었다. 따라서 일반 형사사건에 대한 사용이 엄격히 제한되었다. 訊杖과 난장은 서로 형태가 다르지만, 죄수의 자백을 받아낸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신장이 합법적으로 공인된 고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난장은 신장의 변형된 고문이었다. 난장의 체벌이 발바닥과 발가락에 집중된 것은 그 곳이 고통의 강도가 높았고 상대적으로 고문의 흔적이 심하지 않다는 장점도 있었지만, 신체 중 처벌 부위가 ...
TAG 審問, 拷問, 亂杖, 訊杖, 盜賊, 治盜刑, Interrogation, Torture, Nanjang, Sinjang, Bandit, Punish for theft
만주국의 국경분쟁과 대소련(對蘇聯) 인식 - 식민지 조선의 신문 보도를 중심으로 -
윤휘탁 ( Yoon Hwy-tak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141~188페이지(총48페이지)
일본이 무력으로 만주를 점령해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수립하자, 만주에 기득권을 지닌 소련은 반발했다. 이로 인해 국경을 마주한 만주국과 소련 및 몽골 사이에는 국경분쟁이 빈발했으며, 만주국을 식민통치한 일본과 소련의 관계도 점점 악화되었다. 게다가 청조와 러시아의 조약 내용이 불명확하고 국경 표식도 없어졌기 때문에, 만주국, 소련, 몽골 사이의 국경분쟁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일본은 만주국을 포함시켜 소련과 국경협상을 추구했지만, 소련은 만주국을 배제하고 몽골을 참여시켜 국경협상을 하려고 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몽골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여겨 몽골의 참여를 반대했다. 결국 만주국과 몽골은 외교 교섭권을 각각 일본과 소련에게 위임했다. 그런데 일본과 소련은 상대방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거나 불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경분쟁을 해결하지 못했...
TAG 만주국, 일본, 소련, 몽골, 국경분쟁, 장고봉사건, 할힌골전투, 정전협정, Manchukuo, Japan, the Soviet Union, Mongolia, border disputes, Janggo Volunteer Incident, Halhingol battle, armistice agreement
부산항만을 중심으로 본 일제 말기와 미군정기의 하역노동과 하역노동자
임송자 ( Yim Song Ja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189~222페이지(총34페이지)
일제의 노동정책과 노동문제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서는 항만하역노동이나 하역노동자의 실상에도 초점을 맞춰 연구영역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일제 말기 항만하역노동과 조선인 노동자의 실상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또한 해방 후 일제의 전시통제체제가 무너지면서 항만하역노동은 어떠한 변화를 겪었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부산항을 중심으로 하역노동자 실태, 전평과 대한노총의 대결 양상 등을 살펴보았다. 하역노동자로 구성된 노동조합은 일반적 의미의 노동조합이 아니라 노무공급을 목적으로 결성되기도 했지만 노동조합 본연의 임무를 수행한 노동조합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후자는 일제의 극악한 탄압으로 조직운동을 전개하지 못한 채 세력기반을 잃어갔으며, 전자는 국가총동원법 실시 이래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침략전쟁 확대에 따라 화물이 급증하고 하역노동자 부족현상이...
TAG 항만하역, 하역노동자, 부두노조, 노무동원, 항만정신대, Port Labor, Longshoreman, Port Labor Union, Labor Mobilization, Port Dedication Corps
해방 전후 전쟁기(1937~1953년) 사무직(White-collar) 여성의 형성과 사회진출, 젠더 인식 - 조선식산은행 여자행원 사례를 중심으로 -
이송순 ( Lee Song Soon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223~271페이지(총49페이지)
본 연구는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로부터의 해방,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전쟁기(1937~1953년) 한국의 새로운 여성 주체 중 사무직 여성의 대표적 사례인 조선식산은행 여자행원을 중심으로 이들의 사회적 진출과 존재 양상, 젠더 인식을 살펴보았다. 조선식산은행 여자직원은 고원으로 채용되기 시작했고, 1937년 중일전쟁 이후 일본인 남자행원의 징병〔입영〕으로 인한 인력 부족에 대응하는 방법으로 여자직원의 대폭 증원이 이루어졌다. 1943년 6월 1일 ‘여자행원’ 직급이 새로 만들어졌고, 여자행원의 신규 채용도 늘어났다. 여자행원 직급은 해방 이후에도 존속되다가 1991년에 폐지되었다. ‘여자’라는 생물학적 성차(sex)가 사회적 성적 차별(gender)의 기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식산은행 여자행원은 중등학력 이상의 고학력 ‘엘리트’...
TAG 사무직여성, 신여성, 조선식산은행, 고원, 여자행원, 재조일본인, 현모양처, 중일전쟁, 한국전쟁, 젠더, 민족, 차별, White collar women, new women, Joseon Shiksan Bank, Gowon, female clerk, Japanese residents in Korea, wise and diligent housemaker, Sino-Japanese War, Korean War, gender, ethnicity, discrimination
한국전쟁 전후 이승만의 사적통치기반 형성과 변화
유상수 ( Ryu Sangsoo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273~300페이지(총28페이지)
이 논문은 한국전쟁을 전후하여 이승만의 사적통치기반의 형성과 변화를 살펴본 것이다. 첫째 장에서는 이승만이 사적통치기반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추적하였다. 이승만은 집권초기 불안정한 상태로 출발해야 했다. 초대 내각에서 한민당을 배제하면서 정치적으로 반대파를 형성하게 했으며, 군과 경찰 같은 공적기구에 대한 통제력도 약했다. 이승만은 이런 상황을 사적통치기반을 통해 돌파하려 하였다. 이승만은 대한청년단으로 청년단체를 통합하면서 총재로 추대되고 단장을 임명하면서 기존의 청년단체를 핵심 통치기반의 하나로 확보할 수 있었다. 더구나 대한청년단의 출범부터 자신에게 충성을 할 수 있는 신성모를 단장으로 임명함으로써 통제력을 강화해 갈 수 있었다. 두 번째 장에서는 사적통치기반이 확대되는 과정을 살펴보았다. 이승만은 공적기구로 명시되어 있는 예비 병력인 호국군을 해체하고 ...
TAG 이승만, 사적통치기반, 한국전쟁, 대한청년단, 호국군, 청년방위대, 국민방위군, Syngman Rhee, Private Governing base, Korean War, the Korean Youth, DaeHanCheongNyeon-dan, National Protection Army, HoGuk-gun, Youth Defense Corps, CheongNyeonBangWi-dae, Korean Territorial Army, GukMinBangWi-gun
8세기 전반 일본 불교계의 동향과 천평기(天平期) 견당사의 파견 - 감진(鑑眞) 청래(請來)의 배경과 관련하여 -
강은영 ( Kang Eun-young )  호남사학회(구 전남사학회),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2021] 제82권 301~336페이지(총36페이지)
인도에서 성립한 불교는 동아시아 각국에서 각각의 고유 신앙을 상대화할 수 있는 외래신앙으로서의 공통성을 지니고, 보편적인 세계종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동아시아 각국의 불교를 숭상하는 군주는 군주 자신의 개인적 신앙 문제에만 머물지 않고 국가정책에 직접 반영하여 국내의 군주권 강화에 불교를 이용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경우, 왕법을 지탱하는 예교(禮敎)와 출세간(出世間)을 주창하는 불교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 각국에서도 불교가 수용되어 가는 과정은 평판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경우, 수계제의 도입은 불교가 일본사회에 수용되는 과정과 동시에 일본불교의 특수성을 보여줄 것이다. 율령국가 성립 후, 일본에서는 중국과 같은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 사원의 건립 주체인 국가와 왕권이 불교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함으로써 불교...
TAG 교키, 行基, 후지와라노 후히토, 藤原不比等, 율령불교, 律令佛敎, 승강, 僧綱, 나가야왕, 長屋王, 쇼무천황, 聖武天皇, 간진, 鑑眞, 수계, 受戒, Gyoki, Fujiwara no Fuhito, the Ritsuryo Buddhism, Office of Monastic Affairs, Prince Nagaya, Emperor Shomu, Ganjin, the Buddhist ordination ceremo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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