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는 문화현상이며 사회적 구성물이다. 모든 유기체는 연대기적인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생물학적인 변화를 겪는다. 하지만 노화를 경험하는 존재는 오로지 인간밖에 없다. 노화의 경험과 인식, 노화 담론, 노화의 제도와 실천 등은 역사적인 상황과 사회문화적인 조건에 따라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인간이 경험한 노화의 실상을 제대로 살펴보려면 이와 같은 노화의 다양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중국 고대 노인의 정체성과 사회적 권위에 관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노인이 문화적 산물이라면 중국 고대의 상황은 어떠했을까. 이 글이 던진 물음은 다음과 같다. 중국 고대는 누구를 노인이라 불렀으며, 노인은 어떤 존재로 인식되었는가. 중국 고대의 노인이 지닌 사회적 지위에 대하여 어떤 서술이 가능할까. 만약 노인이 다른 연령층에 비하여 우월한 권위를 누리는 존재였다면 그렇...
고대 중국에는 왕이나 황제가 일정한 나이에 이른 선별된 노인들에게 구장을 하사하는 관행이 있었는데, 이를 왕장제(王杖制)라고 한다. 그런데 왜 하필 지팡이를 하사했으며, 또 왜 하필 비둘기 형상으로 장단을 장식했던 것이었을까? 본문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하고자 한다. 먼저 지팡이를 하사하는 이유에 답하기 위하여 여러 고대 문화권에서 나타나는 지팡이의 상징들을 살펴보았는데, 지팡이의 가장 뚜렷한 상징적 의미는 ‘권위’로서, 한어(漢語)로는 ‘권장(權杖)’이라는 말로 개괄한다. 전사(前史) 시대 중국의 여러 곳에서도 다양한 장두식과 권장들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 비둘기 모양의 장두식은 다수를 점한다. 다만 특정한 권위를 의미했던 권장이 곧바로 왕장의 전신이라고 할 수는 없다. 감숙성의 무위(武威) 일대에서 왕장과 관련된 한간(漢簡)들이 출토되면서 한대 왕...
본 논문은 불교 우화 <기로국>이 고대에서 현대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전승되는 과정을 비교·분석하여 전근대 한국의 노인차별주의의 양상을 밝히고자 한다. 조선시대에 유교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였기 때문에 효는 신성불가침의 가치였다. 효의 보편적인 영향 때문에 부모를 해치는 행위는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다만 폭력까지 일으킬 수 있는 세대 간의 갈등은 인간사회의 보편적 현상으로서 고려나 조선시대에도 존재했지만 (《고려사》나 《실록》에서 수많은 부모 살해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감정이 기록으로 남은 사례는 없었다. 한국의 경우와 반대로, 일본에서는 이런 감정을 조금 더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다. 노화된 신체가 부정(不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인은 사회에서 배제되었다. 이들은 특히 의례공간에 진입할 수 없었고, 심지어 노년출가를 통하여 가족...
일반적으로 도교는 노화를 부정하는 반로(反老)와 불로(不老)의 종교, 그리고 죽음을 기피하는 종교로 인식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과는 달리 도교의 불로와 장생은 단순히 육체의 노화를 막거나 수명을 끝없이 이어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노화와 장생을 바라보는 도교적 시각은 매우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다.
우선 도교에서 거부되는 늙음(aging)이란 단순히 나이 듦에 따라 발생하는 육체적, 정신적 노화가 아니라 오랜 세월 세속적 사고와 욕망에 길들여져 본래적인 생명력과 자연적 본성을 상실한 상태를 의미한다. 한편, 도교 전통 내에는 “노아불로(老兒不老)”로 상징되는, 노인의 긍정적 이미지도 존재한다. 이 경우 노인은 오랜 세월 수행을 통해 훌륭한 인격과 도술을 갖춘 득도자로서 그에게 늙어감이란 육체와 정신을 균형 있고 온전하게 유지하는 능력과 기술이 향상...
사람의 노년은 몸의 불가역적인 노화와 함께 다가오니, 노년은 기본적으로 몸의 현상이다. 노인이 실존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보면 노년의 문제는 외부의 사회적, 제도적 차원보다 우선 주관적, 체험적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의 유자(儒者)들이 몸의 노화 현상을 경험하면서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삶의 방향을 모색한 다양한 방식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특히 몸의 노화 현상이라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흰머리와 어두워진 눈, 빠진 이빨이 몸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기능이 다르므로 각각의 의미 부여와 대응 방식을 구분하였다.
우선, 인의(仁義)에 기초한 맹자(孟子)의 왕도정치(王道政治)에서 자발적인 공경과 돌봄의 대상을 나타내던 ‘백발(白髮)’은 자연의 공도(公道)로서 피할 수 없는 대표적인 노화 현상이었다. 조선의 유자들은 이러한 흰머리를 ...
이 논문은 두 가지 몸, 즉 인체와 정체의 늙음을 중심으로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의 한국에서 노년 관점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에는 한국에서 다양한 이데올로기가 등장했는데, 서양을 그대로 본받자는 근대주의, 조선 혼을 지켜 국체(國體)를 보존하자는 민족주의, 계급혁명을 통해 사회변혁을 꾀하려는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 그리고 내선일체를 고대하는 대동아공영주의 등이 있다. 모두 제각각의 특징을 지녔으며, 서로 다른 목표와 방식을 내걸었으나, 한 가지 점에서는 같았다. 바로 자신들이 수립하고자 하는 정체의 선봉 및 주축 세력으로 청년 집단을 내세웠으며, 청년이라는 메타포를 사용했다는 점이다. 청년이 언급되고 동원되는 만큼, 청년의 대립자인 노년은 그림자처럼 거론될 수밖에 없다. 청년이 새로운 시대를 짊어질 세대적 주체로 부각되는 동안, ...
본 논문은 ‘Covid-19’의 등장 초기에, 한국 사회에서 전염병에 대한 불안과 함께 등장했던 대대적인 ‘반-신천지 관념’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 ‘관념’의 가장 핵심을 차지하는 신천지의 ‘비윤리성’ 및 ‘비도덕성’에 대한 비판에 주목하여 프로이트를 재해석한 라캉에게서 비롯된 ‘정신분석의 윤리’의 관점에서 신천지 현상을, 그들의 ‘윤리’와 ‘도덕’의 문제를 새롭게 조명하고자 하였다. 이 논의는 국가적인 위기 상황마다 반복되고 있는 ‘반-개신교계 신종교적 태도’에 대한 비판적 고찰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지닌다.
‘이단 전문가’를 중심으로 한 기성교회적 시각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비윤리성’ 담론은 신천지를 비롯한 개신교계 신종교에 대한 한국 사회의 지배적 입장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진리’ 담론을 기반...
조선 개국 직후 한양 신도시의 역사(役事)에는 일반인 뿐 아니라 승려들[僧徒]도 동원되었다. 조선 초 승려들에게는 국가에서 도첩(度牒)을 발급하도록 되어 있었고, 도첩을 발급받기 위하여 승려는 자신의 평생 신역(身役) 즉 군역(軍役) 값에 해당하는 정전(丁錢)을 납부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도첩을 발급받은 승려들은 공도승(公度僧)으로 인정되어 그 신분이 국가로부터 불교 교단으로 이양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국가로부터 ‘승려’라고 불리는 이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부역(負役)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고, 정전의 납부를 대신하는 등의 명목으로 입역(入役)할 때에도 그의 승역(僧役)은 신역/군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양 신도시의 역사에 동원된 일반인의 사례를 볼 때, 여기에서 승려들에게 부과되었던 승역은 ...
조선 개국 직후 한양 신도시의 역사(役事)에는 일반인 뿐 아니라 승려들[僧徒]도 동원되었다. 조선 초 승려들에게는 국가에서 도첩(度牒)을 발급하도록 되어 있었고, 도첩을 발급받기 위하여 승려는 자신의 평생 신역(身役) 즉 군역(軍役) 값에 해당하는 정전(丁錢)을 납부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도첩을 발급받은 승려들은 공도승(公度僧)으로 인정되어 그 신분이 국가로부터 불교 교단으로 이양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국가로부터 ‘승려’라고 불리는 이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부역(負役)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고, 정전의 납부를 대신하는 등의 명목으로 입역(入役)할 때에도 그의 승역(僧役)은 신역/군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양 신도시의 역사에 동원된 일반인의 사례를 볼 때, 여기에서 승려들에게 부과되었던 승역은 ...
조선 개국 직후 한양 신도시의 역사(役事)에는 일반인 뿐 아니라 승려들[僧徒]도 동원되었다. 조선 초 승려들에게는 국가에서 도첩(度牒)을 발급하도록 되어 있었고, 도첩을 발급받기 위하여 승려는 자신의 평생 신역(身役) 즉 군역(軍役) 값에 해당하는 정전(丁錢)을 납부해야만 했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도첩을 발급받은 승려들은 공도승(公度僧)으로 인정되어 그 신분이 국가로부터 불교 교단으로 이양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국가로부터 ‘승려’라고 불리는 이들은 국가가 요구하는 부역(負役)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였고, 정전의 납부를 대신하는 등의 명목으로 입역(入役)할 때에도 그의 승역(僧役)은 신역/군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한양 신도시의 역사에 동원된 일반인의 사례를 볼 때, 여기에서 승려들에게 부과되었던 승역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