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으로 본 한국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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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함석헌의 고대에 대한 역사 인식을 간단하게 정리하여 이야기 해 보자면, 단군조선 시대는 만주 벌판에서 조선반도에까지 영역을 넓혔던 씨족사회에서 부족국가로 약 1,200년간의 발전한 민족역사의 발아기로, 열국시대는 장차의 사명을 다할 수 있는 자격자를 기르기 위한 양육기로,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정립시대는 민족통일을 위한 역량과 이상을 연단하는 연단기라고 정리 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정립시기의 이 연단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첫째 민족적 자아의식으로써 낙랑군을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정신적도덕적으로 불충분한 조선 고유의 종교와 일상 생활의 상부건축을 지지하는 데 그치는 유교와는 달리, 사생(死生)의 피안(彼岸)에서 도덕의 근거를 구하는 참 종교인 불교의 수입이었다.
또한 함석헌은 신라의 삼국통일은 민족통일의 대사업의 실패로 규정한다. 함석헌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당을 끌어들인 것을 자아를 팔았다고 표현하며 2천년간 기대해 오던 통일의 이상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본다. 즉, 신라의 삼국통일은 통일이 아니라 분할인 것이다. 왜냐하면 민족의 자아를 팔아서 얻은 것이니 민족의식이 훼손되었기 때문이요, 또 그렇게 해서 겨우 얻은 땅이 청천강 이남에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신라의 통일과 고구려의 패망을 함석헌은 한국역사의 비극이 시작되고 한국민족은 고난의 연옥을 걷게 되어, 압박과 치욕이 퍼붓고 비탄과 신음이 입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통일신라의 문화 역시 삼국시대의 이상으로 볼 수 없고, 또 신라 불교에 고원한 이상, 위대한 신앙이 있었으나 곧 사원(寺院)은 음사의 소굴이 되고 국력소모의 장소가 되었고, 화랑도(花郞徒)로써 조선 고유의 사상이 꽃피려던 정신문화도 중국 모방이라는 독충에 잘려 먹힌 바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 한다.
신라의 통일모습은 작은 것을 탐하여서(통일) 외세의 힘을 빌리지만, 결국 큰 것(가능성과, 찬란한 문화) 잃게 되는 민족의 역사 속 아쉬움을 남기는 순간으로 보는 것이다.
고려시대 역사 이해 역시 마찬가지 이다. 삼국시대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였으나, 그것은 실패하였기 때문에 오히려 더 기회도 생기는 것이다. 궁예와 태조 왕건에 의한 북벌사상의 대두, 숙종에 이어 예종대의 윤관(尹瓘)의 북벌, 우왕대의 최영(崔瑩)의 북벌 등의 기회가 있기도 했지만 그러나 결국 고려는 또 실패했다. 실패의 가장 근본적 원인은 삼국시대를 실패하게 했던 그 병, 즉 자아를 잃고 찾지 못한 데 있었다고 본다.
왜 중국제도는 고상한 것이고 조선의 것은 속된 것인가. … …고려 실패의 원인은, 고려뿐 아니라 조선역사가 고난의 역사가 된 원인은, 나를 잊고 허위에 취하였던 데 있다
함석헌은 이러한 실패의 근본 원인을 사대주의와 현상유지, 그리고 모화사상, 즉 자아를 잊고 허위에 취한 데에 있다고 말한다.
함석헌은 조선조 5백년의 역사를 수레의 중축(中軸)이 부러진 역사라고 표현한다. 그 까닭은 인류의 역사에서 이상에 살려는 정신과 가치에 살려는 기개를 제하면, 남는 것은 축(軸)이 부러진 수레와 동량(棟梁)이 꺾인 집뿐인데, 이성계는 그것(이상과 가치) 없이 건국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레의 중축이 부러진 상황 속에서 세종을 평가하기를, 그가 받은 사명은 새 문화의 기초를 닦는 것이었는데 그 사명이 모래밭과 같은 곳에 쌓는 우를 범하는 등, 철저하지 못하였으므로 왕의 대(代)를 황금시대라고 하나 그것은 그 후의 역사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렇게 돋보일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조선 후기를 말할 때에는 망국의 모습 앞에 거의 채념한다.임오군란갑신정변갑오경장경술합방의 세세한 이야기를 다 하지 않는다. 대원군은 무식했거니 민비는 음사(陰邪)했거니 누구의 일은 통한하니 누구의 일은 그 고기를 씹고 싶으니 하는 말을 할 필요도 없다.…… 5백년의 수난도 오히려 부족하여, 돌아오려던 회복의 기운도 사라지고, 다시 수난의 언덕을 굴러 내려가는 그 뒷모양을 보며, 아니 우리 자신이 그 길을 굴고 있음을 인식하면서 이글을 마치기로 한다.
함석헌은, 이러한 한민족의 좌절의 역사의 근본원인을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훨씬 더 멀리 고구려의 멸망에서 찾는다. 당쟁의 근본원인을 캐자면 삼국시대까지 소급해야 한다. 원래 크던 조선사람의 생활이 그때부터 적어졌고, 원래 넓던 조선심이 그때부터 좁아졌고, 원래 높던 민족의 기개가 그때부터 낮아졌으니 발병의 원인도 여기 있다 함석헌의 고대, 삼국, 고려, 조선건국에 대한 그의 역사인식을 명확히 이해 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닐까? 요약 정리 해보자면, 함석헌에게 있어 삼국시대의 역사가 실패되던 날의 그날은 단순히 신라가 외세의 힘을 엎고 민족을 통일한 날이 아니라, 분열이요, 자아의 상실인 것이며 이러한 근원이 바로 조선조까지 이르는 백병백폐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많은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함석헌의 평가 중 인상적인 것은 충무공 이순신에 관한 것이었다. 충무공에 대하여 함석헌은,
그는 하나님이 보낸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다.…… 더구나 그의 최후를 보고 그가 하나님이 세운 사람임을 더욱 알게 된다. 왜 개선장군이 못 되고 비장한 최후를 마쳐야 했나. 왜 공을 세우기만 하고 영예를 거두지는 못했나. 영원히 승자가 되기 위해, 영원히 산 사람이 되기 위해, 영원히 산 조선사람의 대표자가 되기 위해서다.…… 당시의 조선은 저 같은 숭고한 혼의 소유자가 부끄럼 없이 영예의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도 누추한 사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