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의식의 성장 이규보의 문학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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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비평 의식의 성장 이규보의 문학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문학이 성장하면서 문학을 하는 자세와 방법에 대한 검토를 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추세였다. 그러나 본격적인 비평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 비로소 나타났으면, 이인로(李仁老)의 (破閑集)을 그 첫 예로 들 수 있다.
은 시화를 모은 책이다. 일정한 체계를 갖추지 않고서 생각나는 대로 써모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문학관을 나타내는 데는 오히려 유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는 서문 없이 대뜸 일화를 하나 들었다. 이름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정여령이라는 사람이 자기 고향을 그린 그림이 당대 명사들을 탄복하게 했다는 일화는 문학의 재능이란 겉보기로 평가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또한, 뛰어난 작품을 남긴 문인들이 그만큼 자랑스럽다고 한 것은 자기들의 처지를 곁들여서 한 말이다. 영달해서 뜻을 이루지 못했지만 자기들이야말로 나라의 정기를 온통 나타낸다는 자부심을 전할 같은 책이 있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중국에서까지 재주를 자랑한 문인의 예로는 최치원(崔致遠)과 박인량을 들고, 그런 인재가 남긴 작품이 묻혀버린대서야 말이 아니라고 했다.
책이름을 이라고 붙인 의도는 이세황의 발문에 나타나 있다. 한가로움을 깨뜨린다고 하는 단순한 뜻은 아니다. 벼슬을 한 적이 있거나 산림에 자취를 감추었거나, 마음이 바깥의 일을 사모하지 않는 경지에 이르러야 비로소 한가하다고 할 수 있으며, 한가함을 온전하게 해야 그것을 깨뜨릴 수도 있다고 했다. 바깥의 일이란 명리나 지위 같은 것들이며, 마음을 가다듬는 데 방해가 된다고 보았다. 마음을 가다듬어야 준수한 문학을 할 수 있고, 그런 경지에 이른 사람이라야 한가함을 깨뜨리고 진출할 만하다는 주장이 그렇게 말한 데 숨어 있다.
좀더 깊이 생각해본다면, 이인로가 을 쓴 근본적인 이유는 문학이 위기에 몰렸던데 있다. 즉, 무신란이 일어나자 그동안의 조화가 결정적으로 파괴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절대적인 가치가 창작을 하는 사람의 마음 속에 간직하는 신념이라고 하지 않고 누구나 부정할 수 없는 객관적인 실체라고 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인로가 그렇게 말한 데는 옛사람을 본받아야 한다는 방향으로 문학론이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는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 그는 표현의 공교로움을 전수하기 위해 복고주의와 형식주의를 택했다.
그러나 이인로가 고인을 본뜨는 것이 훌륭하다는 주장을 앞세운 것은 아니다. 고인이 이르지 못한 데서 신의(新意)를 창출해 묘한 경지에 이르는 것이 최고의 목표라고 했다. 그러나 그것이 실제로는 불가능하므로, 실현할 수 있는 차선책을 택해, 용사(用事)를 정묘(精妙)하게 해 고인의 표현을 가져와서 새로운 효과가 나게 활용하자고 했다.
에 실린 시문에서는, 말로 나타내고 시로 구현하는 표현이야말로 아들하기만 한 것을 분명하게 하는데 결정적인 구실을 한다는 논리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형식주의를 다시 옹호했다.
6.2.2. 이규보의 문학론
이규보(李奎報)는 시화집인 (白雲小說)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이 원래 순수한 시화집만이었겠는가 하는 의심과 이규보가 스스로 그런 책을 지었던가 확실하지 않기에 유래가 확실한 문집을 기본자료로 삼아서 이규보의 비평을 다루는 것이 온당한 태도이다.
이규보는 문학이 무엇이며 어떤 구실을 해야 하는가를 두고 스스로 고민하고 깨달은 바를 설득력있게 풀어 밝히고, 극복해야 할 장애라고 생각되는 것은 서슴지 않고 비판하고자 했으니, 비평을 하는 자세부터 이인로와는 달랐다. 그러므로, 우선 시화의 범위를 넘어선 비평의 다양한 방식을 개척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
이규보는 널리 규범이 되는 명문을 본떠서 자기 것으로 삼으려고 하는 태도가 부당하다고 다른 글에서도 거듭 밝히고, 문학 창작이란 자기대로 삶의 결단을 나타내는 독창적인 작업이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복고주의와 형식주의를 아울러 비판했으며, 기종의 표현에 매이지 않고 현실을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소중하다고 생각해서 생삽한 말이 도리어 아름답다고 하기까지 이르렀다. 문학의 지평을 얼마든지 다시 열 수 있다는 역사적 전환을 절감했기에 가치 평가기준이 달라졌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규보가 표현 문제 때문에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詩癖)에서, 그는 시를 쓰기 어렵다는 것은 나타내야 할 것을 살리고 시의 마땅한 구실을 온전하게 하는데 스스로의 자세가 미흡하다는 것을 아울러 지적한 말이다. 그래서 구시마문(驅詩魔文)이라는 말로 제목의 서두를 삼은 아주 기발한 글을 내놓았다. 시를 쓰게 하는 마귀인 시마는 죄상을 따져서 물리쳐야 한다 하고, 그 죄상을 첫째, 시는 사람을 들뜨게 한다 했고, 둘째로 시는 숨은 비밀을 캐낸다고 했다. 셋째, 시는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고 했으며, 넷째로 시는 비판을 한다고 했다. 마직막으로 시는 상심을 하게 한다고 했다. 또, (狂辯)이라는 글에서는 세상사람들이 자기를 미쳤다고 하는 데 대한 항변을 또다시 기발한 풍자문으로 늘어놓았다. 이구보는 이처럼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글을 통해서 새로운 문학관의 핵심을 특히 잘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