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문학사 토니 모리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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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미국 문학사 토니 모리슨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소설에서빌러비드는 하나이자 여럿의 영혼을 가진 인물이 된다.빌러비드는 쎄드(Sethe)가 살해한 딸,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끌려온 아프리카 여성, 백인남성에게 감금당한 후 도망 친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 “대서양 중앙항로”를 통해 미국으로 오는 도중에 사망한 수많은 아프리카인이 되기도 한다.
모리슨은빌러비드의 상처와 말, 행동, 기억 등을 통해 독자들이빌러비드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을 내릴 수 있게 하며, 소설 구석구석에 걸쳐 이를 뒷받침하는 내용을 포진시키고 있다. 『빌러비드』에서빌러비드는 아프리카에서부터 이 소설의 현재가 되는 18734)년 이후까지의 아프리카계 미국 역사를 흔적이 되고 있다. 이 소설에서빌러비드는 원혼의 존재에서, 육화된 존재로 다시 나타나, 폴 디와 성관계를 가진 후 임신을 하게 된다. 그 후 124번지 부근의 신시내티 공동체의 여성들이 쎄드를 구하고 와서 기도를 한 후 소리를 지르고, 노래를 하자 강가에 발자국만 남긴 채 사라져 버린다.
『빌러비드』는 아프리카와 미국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첫 출발선을 거슬러 올라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빌러비드의 기억을 통해서 제시되는 끔찍한 노예선의 경험은, 자유를 향한 바다 속으로의 투신 자살, 참혹한 노예선상의 현실, 노예선상에서 가해진 성적인 학대 등을 재기입하며,빌러비드의 경험이 “6천 만 명 이상” 가운데 한 명의 경험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해악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이 소설에는그리고 오리를 자신의 아이로 착각하고 그 오리를 안고 도망가다가 도망노예로 몰려 처형을 당하는 이름 없는 아프리카계 여성의 상흔이 마치 소설을 만들어내는 씨줄과 날줄같이 작용하여 아프리카계 미국 역사를 수정하고, 교차시키며, 복원시키는데 동원되고 있다. 이런 등장인물들의 경험은 그들의 조상들이 대서양 중앙항로를 통해 끌려오는 도중에 죽어서 바다에 버려져 적당한 장례의 예우도 받지 못한 것처럼6),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의 해악 속에서 미국에서 온당한 장례절차 없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복원시킴과 동시에, 살아있되 절망적인 삶을 사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상흔을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
모리슨은빌러비드를 통해 그들의 한을 투영시키고 있다. 또한 신시내티 공동체 구성원들이 이빌러비드와 대면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과거와 대면하게 하며 “재기억”의 과정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 상흔의 뿌리를 찾고 이를 치유하게 한다. 신시내티 공동체는 쎄드의 유아살해와 탈출에 성공한 쎄드를 축하하기 위해 베이비 석스가 마련한 잔치에서 “오만함”을 느낀 후 쎄드를 잡으러 온 백인들에 대해 미리 정보를 알려주지 않아서 비극적인 살인을 방관하였다.
모리슨은 베이비 석스가 “공터”에서 가진 예배7)와 124번지에 대한 설명에서 이 두 공간을 노예제도하에서 상처를 입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치유하는 공간으로, 적극적인 현실 개입의 공간으로 묘사한다. 이 공간들은 전복적인 힘이 싹트는 공간이 됨과 동시에 생존을 위한 자양분을 공급하고 생존전략을 파급시키는 역할을 한다.
“촉매”(쿨리쉬, Koolish, 171)와 같은 역할을 하는빌러비드를 통해 쎄드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생각을 하고, 폴 디는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상흔을 치유 받게 되고, 덴버는 자신의 어머니를 통째로 삼키는 듯한 빌러비드에게서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124번지를 떠나서 공동체를 향해 걸어 나간다.빌러비드는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 있어서 치유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파괴자의 역할을 한다. 이는빌러비드그 자체의 상흔을 나타내기도 하며 더 넓게는 자신의 파괴적인 행위를 통해 순환되는 역사의 고리를 끊으려는빌러비드의 의지를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빌러비드는 과거와 화해하지 못한 등장인물들에게 끊임없이 과거를 상기시키고, 그들이 받은 상흔을 재기억하게 한다.빌러비드의 지나친 행동은 결국 덴버로 하여금 공동체에 도움을 청하게 하고,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과거에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보상하려는 듯이 124번지 앞으로 몰려와 한 바탕 “정화의식”을 치른다. 이 장면은빌러비드가 촉매가 되어 124번지와 신시내티 공동체가 화해를 이루어내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리슨은『빌러비드』에서 다양한 등장인물과빌러비드의 상흔을 다루며 미국역사에서 소외되고 삭제된 역사들을 복원시키면서, 되풀이되는 역사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제시한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신시내티 공동체의 아프리카계 미국 여성들이 마치 살풀이를 하듯 124번지 앞에서 고함을 지며 울부짖는 장면과, 현관에 서있는 임신으로 배가 부른빌러비드와 초췌한 쎄드의 대조적인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제시된다. 살풀이를 하는 것 같은 이 장면은 한편으로는빌러비드라는 육화된 원혼을 물리치는 여성들의 살풀이로 해석될 수 있지만, 집단적인 통곡으로 아프리카계 미국 조상에 대해 애도하는 장면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모리슨은 이같은 통곡을 통한 치유를 통해 이름 없이, 장례식도, 무덤도 없이 죽어간 “6천만 이상”의 조상들에게 그들이 받아야 할 온당한 대가를 받게 하고 있다.
같은 시간 보드윈(Bodwin)이 덴버를 일하는 곳에 데려다주기 위해 마차로 오게 된다. 모리슨은 쎄드가빌러비드를 살해했을 때와 비슷한 장면을 연출한다. 하지만 쎄드는 “차이를 통한 반복”을 이루어 내며, 자신의 딸을 죽이는 대신에 얼음 송곳을 들고 자신과 딸을 잡으러 온 농장주인이라고 생각한 보드윈, 즉 정확한 억압자를 향해 비상한다. 이 같은 쎄드의 행동은 자신을 짓누르던 상흔에서부터 해방되는 것을 상징한다. 또한 이를 목격한 “빌러비드는 웃고 있다”(264). 그 후빌러비드는 홀연히 사라져 강가의 발자국으로 남는다. 그 발자국은 나이에 상관없이 누군가가 발을 가져다 놓으면 그 사람의 발에 들어맞는다. 모리슨은 이 발자국을 통해빌러비드가 계속 현재에 개입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