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사육신과 의리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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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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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사육신
(1) 계유정난
(2) 단종복위 운동
2. 사육신 인물열전

(1) 성삼문
(2) 박팽년
(3) 하위지
(4) 이개(李塏)
(5) 유성원
(6) 유응부
(7) 김문기
3. 의리정신과 절사정신
4. 조선왕조실록과 추강집의 오류
본문내용
사육신의거와 의리정신

1. 사육신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 개, 유응부, 유성원, 김문기 등을 말한다. 이들은 전에 집현전 학사로서 세종의 신임을 받고, 문종으로부터는 나이 어린 세자 (단종)를 잘 보필하여 달라는 고명(顧命)을 받은 사람들로서,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 이 1453년(단종 1)의 계유정난(癸酉靖難)을 통하여 안평대군(安平大君)과 황보인(皇 甫仁) ·김종서(金宗瑞) 등 3공(公)을 숙청하여 권력을 독차지한 끝에 1455년에 단 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동조자를 규합하여 단종을 다시 왕위에 앉힐 것을 결의하고 그 기회를 살펴 단종 복위의 난을 일으킨 신하이다.

(1) 계유정난

세종이 죽고 문종(재위 : 1450~1452)이 보위를 잇는데 그는 몸이 매우 약하였다. 게다가 세종의 다른 아들들 중에 문종 바로 아래인 수양대군은 야망과 수완이 비범하여 언제나 왕권에 위협이 될 소지가 있는 인물이었다. 그래서 세종은 자신이 세상을 떠나면 보위를 놓고 형제들 간의 다툼이 있을 것을 염려하여 죽기 전에 황보인 · 김종서 등에게 어린 세손(단종)을 보살펴 줄 것을 유언하였다. 그리고 문종이 등극하는데 그는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자리에 눕고 만다.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문종은 세종이 그랬던 것처럼 그때 겨우 12세였던 세자, 즉 단종(재위 : 1452~1455)의 안위를 황보인과 김종서를 비롯하여 성삼문 · 신숙주 · 박팽년 등에게 부탁하고 세상을 떠난다. 12살의 어린나이로 즉위한 단종이 친정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김종서, 황보인등이 의정부에서 대신자리에 임명할 만한 자에게 노란 점을 찍어 단종에게 추천하여 결재하게 하였는데 이것을 황표정사라 하여 수양대군으로 하여금 김종서와 황보인 중심의 세력이 조정을 장악할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집현전 학사 권남과 신숙주 그리고 희대의 모사꾼인 한명회를 끌어 들여 세력을 키운 수양대군은 1453년 10월 쿠데타를 일으킨다. 먼저 김종서를 피살하고 입궐하여 제거 대상자들을 궁궐로 불러 들여 황보인을 비롯한 조정 대신들을 궁궐의 제2문에서 철여의라는 쇠뭉치로 때려죽인다. 그리고는 단종에게 김종서 등이 안평대군(세종의 셋째 아들로 수양대군의 동생이자 경쟁자)과 역모를 획책하여 그들을 제거했다고 고한다. 안평대군은 강화도로 유배를 보냈다가 교동으로 옮겨 사사하고 수양대군은 이 사건으로 반대세력을 완전히 제거하고 조정의 1인자가 된다. 이것은 계유년(1453년)에 일어난 사건이라 하여 계유정난이라 부른다.
참고문헌

충의공 김문기 사육신 현창 김형승저 (상록출판사)
박팽년의 절의정신과 후대인의 평가 한기범저 (대전동구문화원)
조선왕조 충의열전 최완수저. (돌베개)
한국사이야기 8권 이이화저 (한길사)
한국 반란사 박한실저 (큰바위)
한국사 26권 - 조선초기의 문화 I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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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 ․ 생육신 홈페이지 http://www.chunghyo.net/yuksin/index.jsp
하고 싶은 말
발표 준비한 거에요
의리정신은 교수님이 쓰신 논문 중심으로 했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