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1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1
 2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2
 3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3
 4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4
 5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5
 6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6
 7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7
 8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8
 9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9
 10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10
※ 미리보기 이미지는 최대 20페이지까지만 지원합니다.
  • 분야
  • 등록일
  • 페이지/형식
  • 구매가격
  • 적립금
  • 레포트 > 독후감
  • 2016.03.06
  • 10페이지 / hwp
  • 1,300원
  • 39원 (구매자료 3% 적립)
자료 다운로드  네이버 로그인
소개글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2008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인터뷰
2008 광주비엔날레 - 오쿠이 엔위저 총감독 인터뷰
9월 5일부터 11월 9일까지 열린 제7회 광주비엔날레가 66일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폐막하였다.
이번 광주비엔날레는 오쿠이 엔위저를 총감독으로, 특정한 주제 없이 최근 1년 사이의 의미 있는 주요 전시를 모아 ‘연례보고(Annual Report)’라는 제목으로 진행되었다. 연례보고 아래에는 ▲길 위에서(On The Road) ▲제안(Position Papers) ▲끼워 넣기(Insertions) 등 3개의 전시 섹션을 두었다. 총 36개국에서 127명의 작가가 참여하여 550여점의 다양한 현대미술을 선보였다. 36만 여명(대인시장 3만명 포함)이 찾은 광주비엔날레의 관람객 수는 지난번 비엔날레(41만6천591명)보다 감소했지만, 단체 관람객의 비중이 축소되는 등 관람 형태가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9일 전시 폐막 후 오쿠이 엔위저 예술총감독을 만나 보았다.
오쿠이 엔위저 예술총감독은 1963년 나이지리아 출신으로, 뉴저지 주립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였다. 2002년 11회 카셀도큐멘타의 전시감독이 되며 그는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최초로 비유럽 출신의 책임자가 된 것과 함께 ‘초국가성, 초매체성, 세대극복’ 등의 메시지를 제시하여 정치적이고 사회참여적인 미술을 보여주었다. 당시 미술계에 수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한 그는 사회적 억압과 폭력, 저항 등에 관심을 보였고 ‘아프리카 문화의 대명사’로 불리 운다. 2005년 세비야 비엔날레 총감독과 제2회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 총감독을 역임하였고, 주요 기획으로는 런던 테이트모던 의 ‘센츄리시티’, 스웨덴 우메아미술관의 ‘거울의 경계’, 뉴욕 퀸즈 미술관과 미네아폴리스 워커아트센터의 ‘글로벌 개념주의’ 등이 있다. 피터 노튼 기획상, 독일 사진 출판상, 컬리지 아트어소시에이션의 ‘프랭크 저 윗 마서’ 비평상 등을 받았다. 현재는 샌프란시스코 미대 학장과 아프리카 현대미술저널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쿠이 엔위저 감독은 신정아씨와 함께 작년 7월 2008 광주비엔날레의 공동감독으로 선임됐으나, ‘신정아 가짜학위 파문’ 이후 8월부터 단독 감독 체제로 전시를 추진하였다.
명예광주시민증을 받은 것으로 공식일정을 마친 그는, 지쳐 있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안뇽하세요?”
개막 준비를 하며 네다섯 시간 정도 자면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이제 많이 잘 수 있겠다고 말하자, 금세 하얀 이를 드러냈다.
“전시는 준비과정이 재미있지요. 매우 흥미로운 경험입니다. 멋진 전시관들에서 좋은 작품들이 순조롭게 설치돼가는 걸 보면 기분이 좋고 행복하거든요. 유능한 재단의 전시스태프들과 의욕적인 큐레이터들과의 협업을 통해 특별한 어려움 없이 비엔날레를 준비했습니다. 또 비엔날레 준비를 하면서 창설 13주년을 맞은 재단의 역량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시 준비가 순조롭게 되셨다는 말씀을 들으니 그 비결이 궁금해지네요. 학교 예술제 때 작은 규모의 전시를 해 봤는데 쉽지 않았거든요. 전시팀과 호흡이 잘 맞았다고 하셨는데 좀 더 자세한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또 공동 감독 체제에서 단독 체제로 되면서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신정아씨 파문으로 2인 체제에서 1인 체제로 중간에 바뀐 어려움은 있었지만, 저는 비슷한 미술행사를 여러 번 치른 경험이 있습니다. 또 재단에도 전문 인력이 많았고요. 작은 혼란으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불행한 일이 일어났고 재단도 당황했지만,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교훈을 얻었다는 것이겠지요.
큐레이터 팀은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서로간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저와 큐레이터들은 작가 선정을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서울과 광주, 일본, 중국, 인도 등을 순회하며 12회에 걸쳐 국가별 리서치와 기획자 회의를 거쳤습니다. 작가 선정 후에는 전시 구성, 홍보 등 일정표에 따라 진행했고요. 팀 활동을 하면서 업무 배분이나 의사소통 등 크고 작은 불만과 갈등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점은 공동의 목표를 상기하고, 양보와 희생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지요.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잘 마친 데에는 팀웍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