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우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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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영우의 생애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1. 한영우(韓永愚)의 생애
1938년 7월 12일 충남 서산 출생.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문학박사)을 졸업했다. 1967년부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하버드 대학 객원교수, 서울대 한국문화연구소장, 한국사연구회장, 서울대 규장각 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재위원, 국사편찬위원, 서울특별시사 편찬위원 등을 맡고 있다.
2. 한영우의 연구성과 : 사상사 연구와 사학사 정리
역사는 과거의 조상과 현재의 우리가 만나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곳이다. 그 대화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쯤 와 있는가, 그리고 내가 지금 할 일이 무엇인가를 더욱 확실하게 알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지혜의 스승이요, 용기의 벗이며, 마음의 고향이다. 역사를 보기 위해서 그는 과거 사학사의 대화를 시작한다. 역사와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 다른 많은 분야가 있었겠지만, 그는『미래를 위한 역사의식』중 하나의 에세이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 한학적 소양을 많이 쌓을 수 있었고, 서당교육을 받으면서 자란 자신에게 사상사와 사학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일지 모른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한영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대한 사상사 연구를 하였고 이에 대한 많은 양의 자료를 정리하고 의견을 내세웠다. 수많은 사료의 복원과 균형 잡힌 자료 제시의 노력은 그의 연구에서 특이할 만한 성과라고 볼 수 있을 듯 하다. 한영우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사관에 대해서 정리하는 논문과 글들을 많이 남겼다. 과거의 사관을 정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역사책과 인물들에 대한 기록과 사상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필요하고, 그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 법이다. 따라서 고려조선사에 대한 정밀한 해석을 하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었다.
(1) 고려시대의 연구
한영우는 고려시대에 대하여 삼국사기 뿐 아니라, 삼국유사, 제왕운기(이승휴), 동명왕편 등 많은 인물과 서적에 대하여 분석을 시도하였다. 먼저 그는 삼국시대가 신화적종교적 역사서술에서 유교적교훈적 역사서술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면, 고려시대는 후자가 정형화 하면서 정착된 시대라고 보고 있다. 한영우, 한국의 역사가와 역사학(상),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4, 16쪽.
그는 사서를 봄에 있어서 시대적인 여러 요건들과 인물 자체의 이해가 선행한 후 자료에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인다. 삼국사기 에 있어서 그는 고려 초의 삼국사라는 역사서술과 비교를 시작하며 글을 시작한다.
「고려는 건국 초, 삼국사라는 자주적인 역사서를 썼는데, 국가의 초였기 때문에 삼국사에 비하여 비해 삼국사기는 묘청 등의 고구려계승정신, 즉 무모한 대외팽창노선과 칭제노선을 억누르고 신흥하는 금과 평화공존을 이루면서 안으로 문벌귀족정치를 개혁하여 국왕 중심의 도덕적 관료정치를 안정시키려는 의도에서 편찬된 것이었다. 삼국사기가 고려보다 신라를 윗자리에 놓고 고대사를 정리한 것은 국제적 평화공존을 이루거나 도덕 정치를 편 전통이 신라에 많다고 믿은 까닭이었다. 그러나 신라를 포함한 고대 전반에 대하여 도덕 정치 기준에 위배되는 사실은 철저하게 비판함으로써 역사의 교훈성과 실용성을 극대화하였다. 즉, 무징불신과 술이불작의 유교적 합리정신이 극대화된 저서가 삼국사기이다.」
물론 삼국유사에 대한 기록도 다루고 있다. 그는 삼국유사를 일연이 경상도 지방의 승려였기 때문에 교종의 관점으로만 이야기 하고 있다는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민족의식의 고취와 단군의 인식 등에서 의의를 찾고 있다. 민족의식의 문제에 있어서 이승휴의 제왕운기나 이규보의 동명왕편에서도 역시 의의를 찾고 있다. 특히 기자조선을 통한 인식문제를 다룸에 있어서 기자조선은 고구려시대에 중국에서 바라보던 눈은 달랐는데, 당대에 와서 이를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철저한 문헌 고증을 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띤다. 이것은 뒤에 도덕적 신민족주의를 계승하려는 그의 의지와 실사구시적인 학문 태도를 견지한 부분과 이어진다.
(2) 조선시대의 연구
1) 조선 전기
조선 전기에 대한 한영우의 연구는 조선의 사학사나 사상사 정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듯 하다. 특히 그는 조선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갖는 것처럼 보인다. 조선 전기의 사상으로 그는 주자학을 꼽고 있다. 주자학을 토대로 조선 초기의 사상구조는 사대부를 중심층으로 하여 각계각층의 사유방식이 합류되었고 철학적으로 관념론과 합리정신을 바탕으로하여 경험론과 물질적 공리관념이 조화를 이루었고, 정치사상적으로 왕도정치를 상위로 하되, 패도 정치가 절충된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영우, 조선전기사학사연구, 서울: 지식산업사, 1983, 276-277쪽.
이것은 고려후기에 이어 주자학을 수용한 정도전 같은 이가 정권을 잡았으며, 고려사와 고려절요, 동국통감의 비료, 그리고 16세기 사림의 등장의 시기까지 연구하여 나온 결론이며, 그들의 자료를 면밀히 살핀 결과이다. 여기서 그는 사관과 사료의 관계를 사료에 대한 정밀한 고찰로 접근하고, 그 후 그 사료 속에 묻어나 있는 역사서술과 역사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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