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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케 August Hermann Francke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프랑케
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
독일에서 17세기 후반에 경건주의(Pietism)라고 불린 종교운동이 일어났다. 이는 독일의 종교사상과 문화가 프랑스에 지배받고 있는 데 대한 반발과 함께 루터의 신교개혁이 원래의 신앙심을 잃어가면서 형식화되어 가는 데 대한 반성이었다. 이들은 교회의 세속화가 학교의 세속화를 가속화시킨다고 생각했다. 이는 비도덕적, 의식적, 주지주의적 교육에 대한 반성으로 종교적 실학주의교육으로 명명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 운동은 형식적 학교교육을 국가의 사업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교육적 공헌은 교육기관의 설립에 있다. 초기 교육기관은 무지와 빈곤 속에 있는 아동들을 돕기 위한 종교적 동기에 의해 시작되었다. 중기의 교육기관은 중산층을 위한 라틴학교로서 김나지움으로 발전되었다. 여기에 덧붙여 교사양성을 위한 사범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는 최초의 사범교육기관으로 간주될 수 있다.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프랑케가 도달하고자 한 것은 ‘개인의 변화를 통한 사회의 변혁’이었다. 결국 그의 경건주의 운동은 인간의 전인적인 구원을 목표로 삼은 것이다.
1. 생애
슈페너의 후계자로 독일의 경건주의를 이끌어간 프랑케는 1663년 Lubeck에서 법학박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고타고등학교(Gothaer Gymnasium)을 졸업하고 16세에 에어푸르트(Erfurt)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별로 만족을 얻지 못하고 키일 대학교(Universitat Kiel)로 옮겼다. 소년 때부터 종교적이었으나 대학을 졸업하면서 종교에 무관심하게 되었고 깊은 종교적 고민과 갈등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회심사건을 통해 프랑케는 사변적인 신앙에서 체험적인 신앙인으로 변하게 되었다. 키일 대학교를 그만두고 히브리어를 배운 후, 재정적인 어려움으로 학생에게 히브리어를 개인교수하기 위해 1684년 라이프치히에 갔다. 그곳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하여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철학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성서연구모임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경건주의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아져 라이프치히 대학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스승인 슈페너는 브란덴부르그 선제후에게 부탁하여 프랑케를 할레(Halle) 대학에 초청하게 했다. 1692년 프랑케는 무보수로 강의를 시작하였는데 후에 희랍어와 동양어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10여 년 동안 할레대학에서 우수한 업적을 이룩했다.
2. 사상적 배경
경건주의는 라틴어 piety로부터 유래되었으며 하나님의 가족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애정을 가리키며 영어로 piety는 불쌍히 여김(pity)와 동정(comparission)을 의미한다. 그리고 독일어 fromm은 ‘경건하고 독실한’을 의미한다. 스페너가 등장하여 경건주의를 출범시킨 17세기 유럽의 개신교회는 형식적인 교회 출석과 열심과 실천이 없는 신앙생활과 삶과 동떨어진 교리적이며 신학적인 문제들에 관한 집착 등으로 경건하지 못하고, 비 신앙적이며 영적인 활력이 없는 교회로 전락되어 있었다. 경건주의는 이러한 교회와 신앙의 갱신 운동으로서 개신교적 현상이었다. 경건주의는 교회와 신학뿐 아니라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정통주의가 교리적 정통성에 중점을 둔 교육에 반하여 프랑케는 주로 마음의 변화와 함께 생활의 순결성과 종교적 경건생활에 중점을 두고 신앙의 조문보다 성경 자체를 존중했다. 그는 개인의 인격변화를 통한 세계변화를 강조했다. 프랑케는 실용적인 실물교육을 자신의 학교에서 구현하였다.
3. 핵심적 교육관
사상가이며 외교관 그리고 목회자인 슈페너에 비하여 프랑케는 폭넓은 의미로 교육가로서 경건주의의 조직자요 실행가였다. 경건주의자로서 프랑케는 인간생활의 목적을 신을 존경하는 자세에서 구했다. 이를 위해 신성과 지혜를 추구할 것을 주장한 점에서 대부분의 기독교 교육학자의 견해와 일치한다. 특히 신성을 좋은 행동, 의식, 지식의 문제로서보다 심정과 의지의 문제로 파악하며 경건한 태도를 중시했다. 그의 종교교육은 현대의 성격교육과 매우 유사하며 교사의 예시, 교리문답, 성서읽기 등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프랑케에게 있어서 지식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적용이 이루어질 때에야 비로소 가치를 가지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프랑케의 교육사상은 결코 실제적인 구원의 길에 제한되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이들을 경건성과 지혜, 특히 자기 자신의 성령의 은사 및 시간과 돈 등과의 합리적인 교제로 이끄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프랑케의 주요관심은 언제나 종교적이었으나 그의 종교적 관심은 필연적으로 가난과 비참을 제거하는 사회봉사의 결과를 낳았다. 프랑케의 관심사는 단지 빈민자 양육과 자선행위 단체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아니다. 도리어 고아원은 인류의 삶의 질서 일반의 형태변화에 있어서 중심점이었다.
프랑케는 인간으로 하여금 기독교적인 참된 구원을 각성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이세상적인 삶에 대하여 사실적이며 합리적으로 판단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4. 실천사례
참고문헌
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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