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인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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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중인 묘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이중인 묘

1. 이중인에 대하여
2. 시대적 상황
3. 이중인 묘의 특징
1. 이중인에 대하여
이중인(고려 충숙왕 2년(1315)~?)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두문동(杜門洞) 72현 중의 1인이다. 태사삼한벽상공신(太師三韓壁上功臣) 이길권(李吉券) 고려 전기 용인 출신의 개국공신이자 용인이씨의 시조. 왕건의 누이를 아내로 맞이하여 고려조의 첫 부마(附馬)가 되었다.
의 후손. 충숙왕 2년 개성의 일청재(一淸齋)에서 부친 광시(光時)와 부부인(府夫人) 기씨(奇氏)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당시 명망이 높았던 이백겸(李伯謙)이 그를 보고 말하기를 “중인(仲人)의 흉중에는 진초(秦楚)의 위엄이 숨어있다”라고 하였음으로 그의 호를 “진초”라 하였다.
일찍이 큰 포부를 안고 학문에 정진하는 한편 덕량(德量)을 길러 일대종장(一代宗匠:경서에 능하고 글을 잘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 되어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이 어려서부터 그의 문하(門下)에서 글을 배웠으며 당시에 팔현(八賢)이라 일컫던 이조년(李兆年), 이숭인(李崇仁), 김주(金澍), 이양중(李養中) 등과 더불어 스승이 되고 벗이 되는 등 교분이 두터웠다. 벼슬은 고려 충혜왕 고려의 28대 왕.
때 문과 급제 후 봉선고 판관, 홍복 도감 판관, 중서 문하성 평장사, 판도평의사사 및 문하 시중을 지냈고 충정왕 때 구성백의 봉호를 받았다. 관위는 통덕랑홍부도감판관(通德郞弘副都監判官)에 이르렀을 때 여말에 정치가 혼란한 것을 복 개탄한 나머지 관직을 떠나 은거하였다. 이때 이태조(李太祖)가 조선을 건국하고 그의 충절을 흠모한 나머지 추성병의동덕찬화보리공신 벽상삼한삼중대광구성부원군(推誠秉同德贊化輔理功臣 壁上三韓三重大匡駒城府院君)을 봉하고 나라를 위하는 정성과 두 마음을 먹지 않는 의리(義理)를 겸하였음을 중히 여겨 “나를 도와 서신(庶臣)을 이끌어 달라”고 당부하였으나 “나는 전조(前朝)의 사람인지라 받아들일 수 없다”하고 말하기를 “고요하고 소박한 결심이 어찌 변하리요”하고 고려말의 절신들과 함께 개성 광덕산 서쪽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니 세상에서 이들을 두문동 72현(顯)이라 부르고 있다.
*두문동 72현(顯)
조선의 개창에 반대해 두문동에서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바치며 지조를 지킨 72명의 고려 유신(遺臣)을 이르는 말로서 72명의 이름은 현재 모두 밝혀지지는 않았고, 신규(申珪)·신혼(申琿)·신우(申祐)·조의생(曺義生)·임선미(林先味)·이경(李瓊)·맹호성(孟好誠)·고천상(高天祥)·서중보(徐仲輔)·성사제(成思齊)·박문수(朴門壽)·민안부(閔安富)·김충한(金沖漢)·이의(李倚)·배문우(裵文祐)·이중인 (李中仁) 등의 이름이 밝혀져 있다.
두문동은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光德面) 광덕산 서쪽 기슭에 있던 옛 지명으로, 칠십이현이 모두 이곳에 들어와 마을의 동·서쪽에 모두 문을 세우고는 빗장을 걸어놓고 밖으로 나가지 않은 것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후세에 절의의 표상으로 숭앙되었고, 1783년(정조 7)에는 왕명으로 개성의 성균관(成均館)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배향하게 하였다.
2. 시대적 상황
14세기 말 당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던 나라 고려는, 안으로는 기존의 귀족 세력인 권문세족과 그에 반발하는 신진 사대부들이 대립하여 정치가 혼란하였고, 밖으로는 홍건적과 왜구의 약탈과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이어지는 원명교체기의 혼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무렵 고려의 북방에서 이성계는 이민족의 침입을 여러 차례 물리치고 명성을 얻어 중앙 정계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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