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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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무크타르 마이의 고백
무크타르 마이(33)는 문맹이다. 단칸방에서 가족들과 사는 파키스탄의 가난한 이혼녀다. 그녀가 파키스탄 여성운동, 인권운동의 상징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적어도 2002년 6월 그가 사는 파키스탄 펀자브 주 남부의 미르왈라에서 부족회의가 열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부족회의 안건은 소몰이꾼 마을 구자르 출신인 그녀의 남동생이 구자르보다 계급이 높은 마스토이 부족의 소녀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사건의 처리문제였다. 부족회의는 그 죄를 가족인 무크타르에게 물었다. 평결은 윤간. 그녀의 나이 서른 살 때였다.
그녀는 피가 묻고 찢긴 옷으로 군중의 차가운 모멸 속에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런 평결을 받은 여성들이 그렇듯 그녀 역시 자살을 생각했으나 그녀는 다른 선택을 했다. 그녀는 강간범들을 고소했다.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그녀의 행동은 뉴스와 다양한 매체를 타고 방송되었고 파키스탄을 뒤흔들었다. 2002년 8월, 13명의 강간연루자 중 6명은 파키스탄 반테러법정에서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2005년 3월 8일, 6명 중 한 명은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고 나머지 5명은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됐다. 그래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3년 동안 이어져 오던 재판은 2005년 6월, 대법원이 강간범과 연루자 13명을 모두 수감하는 판결을 내림으로써 그녀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녀는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억압받는 여성에게 용기의 이름이 되었고 미 여성전문 잡지인 글래머지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이 되었다.
▼ 무크타르마이의 연보
1972년
파키스탄 펀자브 타틀라 부족에서 가난한 노동계급의 딸로 태어남.
2002년 6월
미르왈라 부족회의에서 남동생의 잘못을 대신해 윤간 처벌을 당한 후 강간범 4명 등 13명을 고소.
7월
영국 BBC가 사건을 보도하며 서방세계에 알려짐.
8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