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리팩스와 로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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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리팩스와 로크
영국의 명예혁명이 성사될 수 있던 것은, 제임스 2세의 카톨리시즘에 저항하던 당대 영국의 프로테스탄티즘의 경향이 하나의 역사적 배경이기도 하지만, 왕위의 권한이 의회에 통제되는 것으로 사회가 변했다는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당대의 정부형태는 계급정부의 형태를 띠었으며 최악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여전히 그 형태는 대의적이고 자유주의적이었다. 이러한 영국의 역사적 정부형태는 핼리팩스, 조지 세빌, 존 로크 세 사람에 의해 집약되어있다. 대의제의 정착으로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시작될 수 있었으며 이후의 나타나는 종교에 따른 차별도 이전 시기의 박해와는 거리가 있었다. 이를테면 로크는 보편적인 종교에 대한 관용과 함께 교화와 국가 간의 실제적 분리의 이론으로 전환되었으며 이는 영국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핼리팩스와 로크 두 사람은 매우 세속적이었다. 종교의 문제를 정치이론에 거의 대입시키지 않아 자유로웠다. 한편으로는 두 인물 모두 보수적인 입장을 가졌으며, 새로운 입장은 기정사실이라고 생각되어지는 부분에 한해서 받아들여졌다. 이는 지나친 일반화를 경계하고 때로는 이를 뒤집을 통찰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핼리팩스는 경험주의자요 회의론자였다. 로크는 이와 반대되는데, 그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상식의 자명한 원칙들에 대해 긍정을 가진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상식에 대립되는 철학적 입장을 종합하기는 힘들었다. 이는 영국이 18세기에 접어들자, 이상과 실제 간의 불충분함을 은폐하는데까지 나아간다.
I. 핼리팩스
핼리팩스는 좋은 정부를 위한 보편적인 원리가 거의 있을 수 없으며, 이는 개인적 혹은 당파적 이득을 추구하기 위한 위장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렇기에 인간의 모든 제도는 변화하고 정부의 근본원리도 변화할 것이라는 점에서 효과적일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법률은 시행하는 사람들의 의미에 따라서 지녀지게 된다. 결국 법과 정부는 누가 지휘하는지, 그리고 그 사람의 지성과 선의에 따라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핼리팩스가 상상하는 정부는 학식이 있고 공공선을 추구하는 지배계급의 직무였다. 그 정부는 변천하는 정세에 적응하고, 평화를 유지하면서도 억압을 회피할 만큼 자유주의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단, 실제는 정부가 마음대로 스스로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못했다. 정부의 필요조건으로서 인민의 행복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민을 구제하는 정의를 실현시킬 수 있어야 했다. 그에 반해 인민의 자기발전을 위한 힘은 억제될 수도 없고, 억제되어서도 안되는 것이었다. 이에 부응하는 능력이 없다면 정부조직이나 강제력이 오래 지탱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핼리팩스는 대의제를 하나의 방법으로서만 간주했다.
핼리팩스의 영국에 대한 평가를 하며, 새로운 정치체제의 가능성으로 크게 세 가지 - 절대군주제, 공화정, 혼합군주정이었다. 여기서 절대군주제는 ‘자유주의’에 위배하기에 불가능했고, 공화정은 실제 역사가 군사독재로 끝장이 났다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핼리팩스는 혼합군주정을 통해 권력형태와 자유 행사가 절충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핼리팩스는 새로운 정부에서 대신이 국왕이 아닌 의회에 종속되는 권력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했다. 이는 그가 정당이 개인의 자유와 배치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들어 강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핼리팩스는 거의 아무런 정치이론을 가지지도 않았으며 정치이론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17세기에서의 절대적 권리와 절대적 의무 간 나타나는 흑백논리 가운데에서 완충이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핼리팩스의 완충적 성격은 이후 존 로크, 데이비드 흄, 공리주의에 영향을 주는 사회철학으로 자리 잡는다.
II. 로크 : 개인과 공동체
존 로크의 정치철학은 혁명을 옹호하기 위해서 쓰여졌으며, 이를 위해 후커의 영향을 받으면서 중세 정치사상의 전통에도 함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배자들의 책임, 법률에 대한 정부의 종속 등이 공리로서 자리 잡아 이후 명예혁명의 입헌주의적 성격에 영향을 준다. 후커의 사상의 지속적 요인을 결합시키고, 실제와 엮어 사상들을 재천명한 것이다. 이를 일관적으로 추진했던 인물은 홉스였기 때문에, 홉스는 로크가 반박하지 않으면 안되었으나, 로크는 이를 회피하고 홉스의 영향을 받은 필머를 공격대상으로 벌였는데 이는 왕당파가 홉스를 배척하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로크는 대중적인 철학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로크의 정치철학의 쟁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부는 인민과 공동체에 책임을 지고, 정부의 권력은 도덕률과 왕국의 역사에 고유한 입헌주의의 전통 및 관습들에 의해 제약을 받는다는 입장인 것이다. 바꿔 말하면, 정부는 필수불가결하고 정부의 권리를 파기할 수는 없으나, 그 정부는 국민의 복지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홉스는 이와는 다르게 공동체를 분석한다. 공동체는 순수한 허구이며,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협동 형태 속에서 주권이라는 것이 발생하고, 비로소 하나의 공동체로 형성된다는 것이다. 홉스의 개념에서는 국가 내에서는 타당성을 가지지만 국가를 위해서는 타당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와 같은 두 개의 관점 간의 논리적 대립은 극단적인데, 하나는 기능적인 관점에서 개개인과 제도들이 인민의 선을 위해서 정부에 의해 규제받으며, 집단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드는 법의 골격 내에서 사회적으로 가치있는 활동을 행한다고 간주한다. 다른 하나는 개개인의 자기 만족을 위해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이기적 동기에 따라 사회가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로크는 이런 대립에도 불구하고 두 가지 관점을 모두 채택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는 결국 원칙들의 검토와 고도의 종합화를 수반할 수 밖에 없었다. 이는 로크의 능력에서 벗어나며, 이미 후커와 핼리팩스의 노선에 입각하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정치적 진화가 요청하는 정부의 변화를 거치면서도 계속 유지되고, 통치자들이 반드시 준수해야할 도덕적 기준을 마련해주는 사회적 집단을 형성한다고 가정한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한편으로는 로크의 자연법은 개개인의 파기할 수 없는 권리요구라고 해석하였기 때문에, 이기적 관점을 버리기 어려웠다. 권리는 정부와 사회의 권위를 보존하기 위한 하나의 제약이다. 로크의 이론의 한 부분에는 개인과 개인의 권리가 궁극적인 원리들로 나타나며 다른 부분에서는 사회 자체가 이러한 구실을 담당한다. 그러나 이것이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있는가를 설명한 인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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