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과정한의시인 박용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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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문학교육론 -박용래
눈물과 정한의 시인 박용래
1. 시인의 생애
향토적인 정서를 시적 여과를 통해 간결하고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현대시의 한 갈래를 형성하였던 시인. 주요 작품으로 《엉겅퀴》, 《코스모스》 등이 있다. 현대시학사(現代詩學社) 제1회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충남 부여(扶餘) 출생한 박용래는 강경상업(江景商業)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조선은행원과 중고교 교사 등을 역임하였다. 1955년 《가을의 노래》로 박두진의 첫 추천을 받고, 1956년 《황토(黃土) 길》 《땅》 등이 《현대문학》에 추천되어 데뷔하였다. 그 후 《엉겅퀴》 《코스모스》 《소묘(素描)》 《저녁 눈》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여 1969년에 현대시학사(現代詩學社) 제1회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향토적인 정서를 시적 여과를 통해 간결하고 섬세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 현대시의 한 갈래를 형성하였다. 시집 《싸락눈》,《백발의 꽃대궁》과 공동시집 《청와집(靑蛙集)》, 시선집 《강아지풀》 등이 있다.
박용래(1925~1980) 시인은 과작의 시인이었다. 그는 우리말을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기워 시를 써냈다. 그의 시는 가난한 것과 세상이 거들떠보지 않는 작고 하찮은 것들을 세필(細筆)로 세세하게 그려내고 돌보았다.
박용래 시인은 술판에서 엉엉 잘 울던 마음 여린 시인이었다. 천진하게 잘 울어 눈물의 시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박용래 시인과 절친했던 소설가 이문구는 박용래 약전(略傳)이라는 글에서 박용래 시인의 잦은 눈물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언제나 그의 눈물을 불렀다. 갸륵한 것, 어여쁜 것, 소박한 것, 조촐한 것, 조용한 것, 알뜰한 것, 인간의 손을 안 탄 것, 문명의 때가 아니 묻은 것, 임자가 없는 것, 아무렇게나 버려진 것, 갓 태어난 것, 저절로 묵은 것…. 그는 누리의 온갖 생령(生靈)에서 천체의 흔적에 이르도록 사랑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며, 사랑스러운 것들을 만날 적마다 눈시울을 붉히지 않은 때가 없었다."
최동호는 박용래의 서정시가 김소월, 김영랑, 박목월로 이어지는 서정시의 계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을 끝없이 소거시켰다는 점, 그리고 정지용, 김광균의 모더니즘적 기법도 자기 나름의 독자적인 시작법으로 수용했다는 점에서 현대적인 면을 갖고 있는 서정시인이라고 평가했다.
최승호는 박용래가 근대에의 거부를 통해 궁핍의 미학과 제유의 수사학을 시작 방법으로 썼음을 밝히며 그런 염결의식으로 자존심을 지키고 근대와 타협하지 않으려는 것이 하나의 위대한 거부이자, 예술적 승리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그러나, 그것이 미약한 대안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제유의 수사학으로는 근대의 폭력에 적극적으로 맞설 수가 없으므로 뒷 시대인 1970년대의 민중적 서정시가 지니는 은유의 수사학에 길을 비켜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계를 명확히 밝혔다.
《싸락눈》(삼애사, 1969), 《강아지풀》(민음사, 1975), 《白髮의 꽃대궁》(문학예술사, 1979), 사후에 나온 시전집《먼 바다》(창작과비평사, 1984)
2. 시인의 특징들
1. 시인의 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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