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리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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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장성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만리장성
만리장성
1. 역사
장성의 기원은 춘추시대의 제(齊)에서 비롯되어 전국시대(戰國時代)에는 연(燕) 조(趙) 위(魏) 초(楚) 등 여러 나라가 장성을 구축하였다. BC 221년 진(秦)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하자, BC 214년에 그때까지 연 조 등이 북변에 구축했던 성을 10여년 동안 증축 개축하여, 서쪽의 간쑤성[甘肅省] 남부 민현[岷縣]에서 황하강[黃河] 서쪽을 북상하여 인산[陰山] 산맥을 따라 동쪽으로 뻗어 랴오둥[遼東]의 랴오양[遼陽]에 이르는 장성을 구축함으로써 흉노(匈奴)에 대한 방어선을 이룩하였다.
한대(漢代)에 이르러 무제(武帝)는 BC 2세기 말에 화서회낭(河西回廊)을 흉노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장성을 란저우(蘭州) 북방에서 영토의 서쪽 끝인 둔황[敦煌] 바깥쪽의 옥문관[玉門關]까지 장성을 연장하였다.
진 한 시대의 장성은 현재의 장성보다 훨씬 북쪽에 뻗어 있었는데, 그것이 현재의 위치로 남하한 것은 거란(契丹) 돌궐(突厥) 등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즉, 북위(北魏)는 5세기 초에 장성을 보강하고, 중엽에는 수도 평성(平城) 부근에 또다른 성벽을 구축하였다. 또, 북제(北齊)는 6세기 중엽에 오늘날의 다퉁[大同] 북서쪽에서 거용관[居庸關] 산해관에 이르는 장성을 축조하고 다시 뒤이어 현재의 네이창청[內長城]에 해당하는 곳에 중성(重城)을 구축하였다. 한편, 오늘날의 허난성[河南省] 산시성[山西省] 경계 북부를 타이항 산맥[太行山脈]을 따라 남하하는 장성도 북주(北周) 방어대책으로 그 무렵에 축조된 것인 듯하다.
수(隋)나라는 돌궐 거란 방비를 위하여 오르도스[鄂爾多斯] 남변에 장성을 구축했고, 당대(唐代)에 들어와서는 장성의 훨씬 북쪽까지 그 판도를 넓혔기 때문에 방어선으로서의 장성이 필요하지 않았으며, 또 오대(五代) 이후에는 장성지대가 북방민족의 점령하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방치되었다.
장성이 산해관에서 자위관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를 갖춘 것은 명대(明代)에 들어와서였는데 몽골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이다. 영락연간(永樂年間:1403~1424)부터 보강이 시작되어, 정통연간(正統年間:1436~1449)에 내장성이, 성화연간(成化年間:1465~1487)에 오르도스 남변의 장성이 수축(修築)되고, 다시 가정연간(嘉靖年間:1522~1566)에는 동쪽 일대의 장성이, 15세기 중엽~16세기 초엽에는 오르도스 서쪽 끝에서 란저우[蘭州]를 거쳐 자위관에 이르는 장성이 완성되었다. 명(明)나라는 이 장성지대를 9개의 군관구(軍管區)로 나누어 구변진(九邊鎭)을 두고, 장성을 통과하는 교통요지, 즉 안문관[雁門關] 거용관고북구[古北口] 장가구[張家口] 등지에는 견고한 관성(關城)을 설치하였다. 오늘날 관광 대상이 되고 있는 바다링〔八達嶺〕 근처의 장성은 높이 8.5m, 두께는 밑부분 6.5m, 윗부분 5.7m이며, 위에는 높이 1.7m의 연속된 철자형(凸字形) 담인 성가퀴(城堞)를 만들고 총안(銃眼)을 냈고, 120m 간격으로 돈대(墩臺)를 만들어 군사의 주둔과 감시에 이용하였다.
청대(淸代) 이후에는 군사적 의의를 상실하고, 단지 중국 본토와 둥베이[東北:만주] 몽골 지역을 나누는 정치 행정적인 경계선에 불과하게 되었다.
2. 규모와 재료 그리고 축성법
1) 규모
동쪽 발해 만 연안의 천하제일관 - 산해관(山海關)부터 중국 본토 북변을 서쪽으로 향하여 베이징(北京)과 다퉁(大同)의 북방을 경유하고, 남쪽으로 흐르는 황하강(黃河)을 건너며, 산시 성(陝西省)의 북단을 남서로 뚫고 나와 다시 황허 강을 건너고, 실크로드 전구간의 북측을 북서쪽으로 뻗어 서쪽 감숙성의 가욕관(嘉關)에 다다른다.
진한시대의 1리는 400m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1만 리라고 하면 약 4000㎞에 해당되는 거리다. 그런데 현재의 만리장성을 지도에서 측정해보면 2700㎞에 이른다. 이는 전부 평지로 계산한 것인데, 실제로 만리장성은 산악지대를 지나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 기복도 계산에 넣어야 한다. 또 이중으로 된 곳과 삼중으로 된 곳도 있어서 그런 것까지 계산하면 5000㎞에 이른다고 한다.
만리장성의 위치나 규모는 지역에 따라 다르다. 원래 축조 목적이 군사적인데 있었으므로 평지나 산지를 가릴 것 없이 건설해야 했고, 그러다 보니 백두산보다 높은 해발 3천 5백 미터가 넘는 곳에 세워진 것도 있다. 베이징의 북서쪽 바다링(八達嶺) 부근부터 거용관(居庸關)을 경유하여 다퉁의 남쪽 안문관(雁門關)에 이르는 부분은 2중으로 축성되어 있는데, 2,700㎞가 전부 같은 구조로 되어 있지는 않다. 팔달령 부근 성벽의 높이는 거의 9m, 폭도 기층부가 있는 곳은 똑같이 9m나 된다. 윗부분의 폭은 4~5m로 넓은 곳은 6m나 되는 곳도 있어서 연락용 통로로 사용되었다. 36척마다 돈대(墩臺)가 설치되었는데 이것은 둥근 성채 보루와 같은 모양으로 성의 수비를 맡은 병사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적의 공격대를 발견하면 봉화를 올렸고, 이 봉화를 본 후방 기지의 본부 거용관에서는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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