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가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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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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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향가의 작품세계
향가: 발생과 변화
삼국사기 신라 본기 유리왕 5년의 기록에 이해에 민속이 환강하여 비로소 도솔가를 지었는데 이것이 가악의 처음이다. 라고 하였다 도솔가가 최초의 향가라고 추측되지만 오늘날까지 전해지지는 않는다. 향가는 고려 예종의 도이장가와 정서가 지은 정과정(곡)을 향가 계통으로 본다면 12세기까지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향가는 신라에서 한자를 이용하여 우리말을 표기하는 향찰이 창안되면서 창작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전해지는 최초의 향가 작품은 진평왕(제 26대) 때인 6세기 말에 서동이 지은 ‘서동요(薯童謠)’이며, 고려 광종(제 4대 왕) 때인 10세기 말에 지어진 ‘보현십원가(普賢十願歌)’가 마지막 작품이다. 향가를 집대성 한 『삼대목』★이 진성여왕 2년인 9세기 말에 간행된 것으로 보아 이 때 향가가 상당히 융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향가: 특징
①개념: 한자의 소리와 뜻을 빌려 사용하는 향찰로 표기된 기록의 서정문학
향찰(鄕札)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순 우리말을 국어 어순대로 적은 것
이두(吏讀) :일반적으로 한자를 빌린 우리말 표기법을 총칭하나, 좁은 의미로는 우리말을 활용한 보조용 한문어를 지칭함.
구결(口訣) :한문 해독의 편의상 달았던 이두식 토(吐)
② 형식
4 구체 : 향가의 초기 형태. 민요나 동요가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8 구체 : 4구체에서 발전된 형태로 4구체에서 10구체로 발전해 가는 과도기적 형태를 보인다.
10 구체 : 가장 정제되고 세련된 형태로 ‘4구+4구+2구’의 3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2구인 낙구의 첫머리에는 반드시 감탄사 ‘아으’를 두었는데, 이 ‘아의’는 후대 시조 형식에 영향을 주었다. 현전하는 대부분의 향가는 10구체이다.
③ 내용 : 민요, 동요, 토속 신앙에 대한 것, 임금을 그리워하는 노래, 나라를 다스리는 노래 등 다양하나, 불교적 기원과 신앙심을 노래한 것이 가장 많다.
④ 전승상 특징 : 각각의 향가 작품은 배경 설화와 함께 전승되는데, 향찰로 표기된 노래말의 앞이나 뒤에 그 노래와 관련된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설화적 성격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나 노래가 창작될 당시의 역사적 사실이 기술되기도 한다.
⑤ 작가 : 주로 승려, 화랑 등 귀족 계층이 중심을 이루었다.
⑥ 수록문헌 : 『삼국유사』(14수), 『균여전』(11수), 『삼대목』(전하지 않음)
향가집 『삼대목』 : 진성여왕 2년에 각간(角干) 위홍과 대구화상(大矩和尙)이 편찬하였으나 전하지 않는다. 이 책은 신라 향가를 집대성한 최초의 사화집(詞華集)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향가: 문학사적 가치와 의의
국문학사상 최초로 정형화된 서정시로서 고대 문학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향가의 가사와 표기 형식은 신라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된다.
소박하면서도 깊이 있는 수사로 원만하고 차원 높은 신라인의 정신세계를 잘 반영하였다.
표기법은 외래문화를 주체적으로 수용·발전시킨 좋은 예이다.
우리 문학의 주체성을 보여 주면서 민족 정신과 정서를 바탕으로 하여 꽃피운 민족 문화의 유산이다.
4구체
서동요
+설화
풍요
+설화
헌화가
+설화
도솔가
+설화
서동요
善化公主主隱(선화공주주은)
他密只嫁良置古(타밀지가량치고)
薯童房乙(서동방을)
夜矣卯乙抱遣去如(야의묘을포견거여)
선화 공주님은
남 몰래 사귀어(정을 통해) 두고,
맛둥(서동) 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출전: 삼국유사 권2, 무왕
연대: 신라 진평왕 때(599년 이전)
형식: 4구체 향가
성격: 참요(讒謠: 있지도 않은 사실을 날조하여 헐뜯는 노래)이면서 장차 그러한 일이 있을 것이다라는 걸 암시했기 때문에 참요(讖謠: 예언하는 노래)이기도 하다.
내용: 선화 공주를 아내로 맞기 위한 노래.
아내로 맞기 위하여 선화 공주의 비행을 거짓으로 지어 헐뜯음.
주제
1) 선화 공주의 은밀한 사랑
2) 선화 공주를 꾀어내기 위한 참요
3) 선화 공주에 대한 연모의 정
* 의의
① 현전 최고(最古)의 향가 작품
② 배경설화에 신화적인 요소가 있다
③ 향가 중 민요체를 대표하는 작품
④ 동요가 향가 형태로 정착된 작품
1. 배경 설화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여 무왕의 이야기로 보는 견해
*백제 무왕(武王, ?~641)
백제 제 30대 왕. 재위 600-641년. 이름은 장(璋). 신라의 변경을 자주 공략했고, 고구려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수와 그 다음의 당에 조공(朝貢)하였으며 만년에는 궁성 남쪽에 연못을 파고 유흥지로 삼는 등 사치와 유흥을 일삼았다.
백제 무왕의 어릴 때 이름은 “말자(末子, 막둥)"였다. 무왕을 “말통대왕(末通大王)"이라고 한 근거도 그의 아명이 “막둥(맛둥)"이었기 때문이다.
2. 서동을 백제 동성왕의 이름으로 보고, 그가 신라와 통혼한 사실을 근거로 동성왕의 이야기를 극화한 것으로 보는 견해
3. 백제의 익산 미륵사의 연기설화(緣起說話)에도 서동설화와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백제가 망할 무렵 왕실의 원찰이었던 미륵사를 신라의 군졸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백제와 신라가 과거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음을 꾸미기 위해 퍼뜨린 것으로 보는 견해
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이며 동요로 정착된 향가
*향가의 민요성
통일 신라 이전의 향가로는 현재 ‘서동요, ‘풍요, ‘혜성가만이 그 원사가 전한다. 이들 노래는 모두가 4구체로서 율격이나 내용이 대단히 단순하다. 이는 대체로 전래 민요가 후대에 와서 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노래 ‘서동요도 전래 민요가 정착된 것으로, 에 전하는 배경 설화는 전래 민요로서의 ‘서동요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결부된 후대의 이야기일 것이다. 또, 배경설화와는 달리 실존한 특정 인물이 아닌 가공적 인물, 또는 설화상의 주인공이 역사화 된 인물로 바뀐 것으로 보기도 하며, 사찰의 연기 설화로 파악하여 백제가 망할 무렵 왕실의 원찰이었던 미륵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백제와 신라가 과거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3. 백제의 익산 미륵사의 연기설화(緣起說話)에도 서동설화와 비슷한 것이 있다는 것을 근거로, 백제가 망할 무렵 왕실의 원찰이었던 미륵사를 신라의 군졸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백제와 신라가 과거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음을 꾸미기 위해 퍼뜨린 것으로 보는 견해
4.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향가이며 동요로 정착된 향가
*향가의 민요성
통일 신라 이전의 향가로는 현재 ‘서동요, ‘풍요, ‘혜성가만이 그 원사가 전한다. 이들 노래는 모두가 4구체로서 율격이나 내용이 대단히 단순하다. 이는 대체로 전래 민요가 후대에 와서 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이 노래 ‘서동요도 전래 민요가 정착된 것으로, 에 전하는 배경 설화는 전래 민요로서의 ‘서동요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결부된 후대의 이야기일 것이다. 또, 배경설화와는 달리 실존한 특정 인물이 아닌 가공적 인물, 또는 설화상의 주인공이 역사화 된 인물로 바뀐 것으로 보기도 하며, 사찰의 연기 설화로 파악하여 백제가 망할 무렵 왕실의 원찰이었던 미륵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백제와 신라가 과거부터 깊은 관계가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서동요 배경설화
백제의 제30대 무왕의 이름은 장(璋)이다. 그 모친이 남편을 여의고 과부가 되어 백제의 서울 남쪽 못가에 살면서, 연못의 용과 정을 통하여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은 재주와 도량이 커서 장차 큰 일을 할 바탕을 갖추고 있었는데 항상 마(薯)를 캐어 팔아서 생계를 꾸려 갔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서동이라 불렀다. 그는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기 그지 없다는 소문을 듣고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머리를 깎아 중의 형색을 하고 신라의 서울로 들어갔다. 서울 근방의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 주면서 그들과 친해져 그를 따르게 되자 자신이 지은 동요를 부르게 하였다. 이 노래가 인 것이다.
이 동요의 내용이 대궐에까지 알려져 공주는 먼 곳으로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귀양길에 오르는 공주의 애처로운 모습에 왕후는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고, 공주가 귀양처로 가는 도중에 서동이 나타나 맞이하며 시위(侍衛)하여 가고자 하였다. 공주는 그가 어디서 온 지는 모르나 외로운 귀양길에 친구가 되리라 생각하고 그를 따르게 되었다. 공주는 서동이 믿음직스럽고 좋아 그와 결혼했는데, 그 후에야 서동의 이름을 알고, 동요의 영험함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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