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존재의 변화와 사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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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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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사람들 - 존재의 변화와 사건들
과거라는 확정되고 닫혀진 - 그것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생물학적 요인일 수도 있고, 이미 굳어져버려 바뀔 수 없는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요인일 수도 있다 - 조건들은 우리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강제성과 종속성에 따라갈 수 밖에 없었던 학생들에게 키딩 선생은 자기 존재의 결정 - 자기존재의 결정을 보아야 하는 시점, 이것이 지금이다. 나의 지금, 이 현재는 타인의 지금, 그 현재가 아니다. 그 누구도 나의 현재를 대신해줄 수가 없다. 이 현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며 학생들에게 말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의 변화와 사건들이 전개된다.
1. 클럽 활동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말은 우리 모두에게 본질적인 자유의 정신과 태도, 그러니까 자기의 고유한 삶의 창조력을 잃어버린 사람, 그저 타인의 삶을 자신의 삶의 거울로 삼아 추종적 일상을 사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를 빗대어 쓴 표현이다. 그들의 존재환경인 학교는 곧 모든 것들이 경직된 상태로 굳어져버려 더 이상의 창조적 공간과 시도를 허용하지 않을뿐더러, 그 안의 모든 것이 죽거나 죽어가고 있음에도 그조차 알아차리지 못하는 고인 물의 늪이다. 그래서 그들의 학교는 죽은 시인의 사회인 셈이다. 키딩은 시인으로서 배의 항로를 가리키고 지시하는 선장이다. 자기 존재와 그 성격에 대해 키팅은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의식을 통해 어린 학생들을 진정한 시인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긴다.
시를 쓴다는 것은 곧 자신의 존재를 창조하는 일이다. 라는 물음은 곧 각자가 창조하는 삶이 어떤 모습의 삶이 될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고 , 나아가 그 삶이 시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인은 사태의 본질을 포착하고 의미를 창조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시인은 겉보기에 눈길을 돌리지 않으며, 진실에 주목한다.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고, 이 진실을 생활의 영역에서 실행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시인은 언제나 독립적이며 창조적인 정신의 소유자로서 삶의 본질인 생명성과 자유를 상징하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개체로서의 인간은 누구든 근본적으로 시인이며, 시인이어야 한다.
학생들은 키팅으로부터 받은 자극으로 ‘죽은 시인의 사회 활동’ 을 통해 시인의 사회에 대해 점차 자각하게 되고, 스스로 시인이 되고자 모색의 시행착오를 거듭한다.
2. 녹스의 사랑
첫눈에 반한 녹스의 사랑, 평상시라면 어떤 것이든, 그것을 자신이 하고 싶다는, 즉 원한다는 한 가지 이유로 무작정 할 수는 없다는 것을 녹스는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거듭 번민하고 망설임을 그치지 못한다. 한편 녹스는 자기 존재의 결정에 자신의 진실한 바람과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제 깨닫고 있다. 키팅 선생의 가르침, 을 깊이 들이마셔 가슴에 저며 둔 셈이다. 자신의 사랑, 크리스를 소재로 삼은 시는 학급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지만 그러나 존재의 충일에 사랑보다 더 소중하고 절실한 것은 없다. 사랑이야말로 소통의 진정한 완성이기 때문이다.
3. 찰리의 반항
명문대학교의 진학을 지상목표로 학생들의 생활은 전적으로 이런 목표에 따라 설정되어 있다는 점과 학부모들 또한 학생들을 진학을 위한 공부 기계 정도로 생각한다는 점 그리고 바로 이런 학창생활만이 장래의 좋은 훌륭한 삶을 보장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학생들의 생활환경이자 세계이다. 찰리는 이런 평범한 일상적인 것들을 거부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지 .... 인생을 독특하게 살아라.” 키팅의 가르침이지만 찰리의 반항은 역동적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 대다수는 자신의 존재특성과 그 고유함 그리고 그것들의 본질적 의미를 문제 삼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 대다수는 세태의 흐름에 대한 거부와 역행의 태도에 심지어 도덕적, 사회적 과오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타인들, 세인들이 보여주는 삶의 태도와 방식이 나의 일상을 지배한다. 나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그들의 사고방식과 태도에 합치시키지 않을 때, 나는 국외자가 되고 이방인이 되어 현실 세계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될 것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길을 가려 할 때, 그들은 나를 우려의 눈길로 바라보거나, 심지어 비정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도 한다.
4. 닐의 연극과 죽음
닐의 아버지는 새로운 변화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결코 허용하지 않는 권위주의적 획일성과 절대 부서질 수 없는 강력한 경직성을 상징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인간 존재의 터전이 확정된 궤도이며, 삶은 전적으로 그 궤도 위에서 결정되어야 한다고 확신하는 강고한 고정관념의 덫이다. 닐은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더구나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무엇인가를 추구하고 실현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 강고한 고정관념의 덫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개체로서의 인간존재는 한 발을 결정론의 영역에, 다른 한 발을 비결정론의 영역에 딛고 있다. 비결정 상태에 있는 미래라는 열려진 조건들은 우리에게 스스로 사태를 확정지을 것을 요구한다. 나와 관련된 사태의 확정은 그것이 어떤 양상의 것이든 곧 자기 존재의 결정이. 자기 존재의 결정은 삶이란 말과 전적으로 같은 뜻의 표현이다. 나의 삶은 내가 결정지어야 할 하나의 과제인 셈이다. 우리는 어떤 경우든 이 과제로부터 등을 돌리거나 피해갈 수없다. 그 과제는 결정지어지기를 기다리며 언제나 그렇게 있으며, 우리의 결단과 행위를 촉구한다. 우리가 그것을 외면하거나 우회하려고 할 때부터, 그 과제는 자라나기 시작한다. 그것은 점점 더 커지고 점점 더 무거워진 상태로 우리를 한꺼번에 엄습한다. 그래서 결국 닐은 자살이라는 방법을 택한다. 아버지의 극심한 압력에도 불구하고 능동적으로 대항하고 자기의 삶을 스스로 개척하고 조절해나갈 수 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결단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닐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있어서 진정한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소통, 즉 나가 너와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나의 존재영역을 벗어나 너으 존재영역으로 들어가야 한다. 너가 나아의 진정한 만남을 이루고자 한다면, 너는 너의 고유한 존재영역을 벗어나 나의 존재영역우로 들어와야 한다. 이렇게 너의 존재영역으로 다가가는 나와 나의 존재영역으로 다가오는 너의 만남에서 그리고 그 길에서 소통이 형성된다. 이런 것을 이해라고 한다. 진정한 소통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건너가는 교통을 뜻하며, 이것을 우리는 이해라고 부른다. 이해는 달리 표현하면 나의 생각과 느낌을 이동시켜 나와 너 사이에 벌어진 간격과 거리를 메우고 마침내 너의 존재영역 안에 들어가 너의 생각ㄱ과 느낌에 일치 시키려는 행위이다.
5. 거부할 수 없는
토드는 삶의 의미와 진실에 대한 키팅의 가르침을 마침내 행위로서, 즉 자기 존재의 결정이라는 의미에서 실존적 결단으로 이끌어낸다. 토드가 태생적으로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이 심한 내성적인 아이라는 것, 그의 성장 과정에서 가족을 비롯한 주변의 환경적 요인들에 의해 매우 위축된 사회적 정체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것 앞의 두 가지가 모두 복합적 상승효과를 낸 결과로 지금처럼 내성적 성격의 소년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는 자연적, 즉 생물학적 또는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어느 사이엔가 자신의 의식세계를 떠받히고 있는 자연의 힘, 즉 욕구와 충동의 동력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야성이 상실된 우리의 존재는 반편일 뿐이다, 또한 정신이 없는 우리의 존재도 역시 반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네 자기존재의 창조와 완성은 마치 시작(詩作)이 그런 것처럼 이 두 존재요소의 동행과 결합 그리고 통일을 요구하는 것이다.
토드의 내면의 소리가 말하기 시작할 때, 토드가 그 목소리를 되찾았다는 것은 이 장면에서 그에게 존재의 변화가 일어났으며, 마침내 존재의 왜곡을 교정하고 자기존재의 본래의 모습을 회복할 힘을 되찾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바로 그 힘이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토드를 책상 위에 올라서도록 하고 놀란 교장 선생님의 강력한 제지와 협박에도 불구하고 교실을 떠나가는 키팅 선생을 향해 이라고 외칠 수 있도록 토드를 추동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의 치유이며, 결국 자기존재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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