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南과 북北의 갈등葛藤과협력協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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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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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남(南)과 북(北)의 갈등(葛藤)과 협력(協力)
I. 서 론
Ⅱ. 이 슈 1
- 정치적 갈등과 협력 : 핵위기를 중심으로
Ⅲ. 이 슈 2
- 경제적 갈등과 협력 : 남북경협을 중심으로
Ⅳ. 이 슈 3
- 사회문화적 갈등과 협력 : 남북문화교류를 중심으로
Ⅴ. 결 론
- 통일에 관한 방안
Ⅰ. 서 론
남과 북이 서로 나뉘게 된 지 58년이 지났다. 일본의 항복과 더불어 한반도에 진주한 미국과 소련의 잠정적 경계선인 38선은 반세기가 넘게 약간의 변동만 있었을 뿐, 여전히 남과 북을 나누고 있다. 이후 남과 북은 서로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자신들을 중심으로 통일을 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했다. 적어도 자신들의 체제가 상대로 인해 위협을 받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다. 5,60년대는 북한 주도의 통일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한국전쟁은 북한의 주도로 통일을 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이후 북한은 남한보다 우세한 경제력을 발판으로 끊임없이 남한을 위협했다. 6,70년대 남한의 개발은 북한에 비해 뒤떨어진 남한의 경제를 향상시키기 위해 등장한 노력이었다. 이에 따라 70년대 중반, 남한은 북한보다 경제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되었다. 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국제 정세는 빠르게 바뀌어갔다.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소련은 붕괴되어 러시아와 14개의 공화국으로 분리되었고, 중국은 79년부터 사회주의에 자본주의를 결합한 개방정책을 펼쳤다. 소련의 위성국가들이었던 동부 유럽도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도입하고, 서유럽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에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될 수밖에 없었고, 더더욱 자신들의 체제 유지에 힘쓰기 시작했다.
13년 전, 미국과 소련의 주도로 나라가 분열되었던 동독과 서독이 통일이 되자 한국에서는 부러움과 희망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전쟁 당사국으로 분단된 독일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분단된 한국은 통일에 대한 열망이 다를 수밖에 없었고, 독일의 통일은 통일의 열망이 훨씬 강한 한국민들에게 기대와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1990년 10월 통독이 되던 시기에 남북 고위급 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남북 합의서’가 채택되면서 남과 북의 통일은 점점 더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94년 남한의 김영삼 대통령과 북한의 김일성 주석의 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통일의 열망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러나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함께 남북 정상회담은 무산되었고, 2000년에 가서야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간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남과 북은 여전히 첨예한 대립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93년 1차 핵위기와 ‘서울 불바다’ 발언이 있었고, 98년에는 대포동 미사일 발사 실험이, 99년에는 연평해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0년 6.15 남북공동합의서 발표 이후에도 남북은 서해교전이나 이번 핵보유 발언 등 여전히 정치적으로 갈등을 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정치적으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경제적으로는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다. 2000년 남북한간의 경제 교류, 협력을 정부차원에서 주도하기 위해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의를 발족했고, 그보다 앞서 고(故) 정주영 현대 회장이 소 500마리를 이끌고 방북하여 다양한 경제적 협력을 약속 받고 왔다. 이런 발판아래 지난 8월에는 개성공단이 착공식을 가지는 등 남북의 경제 교류는 협력이 잘되고 있는 형편이다.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지만 그것은 정치적 사안과 연관된 갈등일 뿐이다.
사회문화면에서 역시 남북은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1991년 일본 지바현에서 열린 탁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으로 참가, 단체전에서 우승을 했고, 같은해 청소년 축구대회에도 단일팀으로 참가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때 남북 공동 입장을 했고, 지난 부산 아시안게임때 역시 북한은 선수단을 파견하고 공동입장을 했다. 이산가족 문제 역시 1985년 적십자사의 노력으로 첫 상봉을 이루었고 예술공연단도 상호 방문을 해서 문화적 교류의 첫 시작을 알렸다. 이후 이산가족 문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으로 현재 8차까지 진행 중이고, 대중가수들이 출연하는 방송프로그램도 평양을 방문하는 수준에 도달했다.

[갈등사례]
연 도
주 요 내 용
1950
한국전쟁 도발(6.2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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