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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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의 이해에 대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남한산성에 대하여
남한산성은 인조대에 원성을 수축한 이후 봉암성, 한봉성, 신남성, 옹성 등이 시설물 별로 개별적인 축조 시기와 수법을 가지고 증축되어 조선시대 성곽 축조법의 편이 될 수 있는 현황을 가지고 있으며, 병자호란 이후 무기의 변화에 따른 방어체계를 보여주는 성곽이다. 원성의 체성(體체城성)에 사용된 면석의 성석은 편마암과 화강암으로 대별되는데, 이 두 가지 성돌은 형태 및 가공정도에 있어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쌓기법은 두 가지를 조화롭게 혼합하여 축성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치성(雉치城성)은 인조 4년 축성된 것과 그 이후에 축성된 것의 평면형태와 가공법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문헌기록과 주변 사례를 검토한 결과, 면석에 사용된 화강암 성석의 대다수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용된 것을 인조2년(1624)에 재활용하여 수축한 것으로 추정된다. 여장(女여墻장 )은 인조 4년 재축 때에 축조된 초기 여장의 형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원성의 초기 여장은 근총안이 체성에까지 내려와 현안식으로 설치된 형태이고, 미석을 사용하였으며, 근총안 하부에 면석을 세로로 설치한 특징이 있다. 추정 근거로는, 초기근총안 하부의 측석 간격(초기 여장의 길이)과 현존하는 여장 길이의 차이가 문헌상의 기록(장유의 남한산성기와 홍경모의 중정남한지 )과 일치하는 것이 주된 근거이다.
봉암성의 여장은 사람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은 이유로 과거의 여장 형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는데, 옥개부를 기와로 축조하였고 쌓기몰탈을 많이 사용한 흔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여장이 변화하는 시기 추정이 기준이 되었으며, 이 기준을 근거로 옥개부 기와의 설치시기와 형태를 추정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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